입 짧은 아이를 둔 부모님은 꼭 보세요
[한성은 기자]
▲ 피오르라인 페리 사람들은 설레기 위해 여행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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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카가 커다란 페리에 실렸다. 막상 해보면 어려운 일은 하나도 없다.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거니까. 그래도 처음은 언제나 두렵고, 그 두려움에 비례하여 설레는 마음도 커진다. 캠핑카에서 자는 것도 처음이지만, 페리에서 잠을 자는 것도 다들 처음이었다.
배 안은 신기한 것 투성이
주차를 마친 후 16시간의 항해 동안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선내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낯선 장소를 좋아하지 않으신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예상 불가능한 장소가 주는 설렘보다 휠체어가 움직일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까 봐 더 두렵기 때문이다.
캠핑카는 DECK 3에 실렸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DECK 4부터 운행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이런 건 곤란한 상황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자식들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업힐 때마다 자식들이 힘들까 봐 마음이 무거웠고, 자식들은 아버지를 업을 때마다 너무 가벼워서 마음이 무거웠다.
▲ 아버지는 자식이 힘들까 봐 마음이 무거웠고, 자식은 아버지가 가벼워서 마음이 무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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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한 선실의 위치와 가까운 엘리베이터 위치를 확인한 후 페리 투어에 나섰다. 나는 몇 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부모님은 배를 돌아보며 눈이 휘둥그레지셨다.
▲ 페리 내부 리셉션부터 놀이터까지 불편함이 없었던 피오르라인 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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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말씀 "이 큰 배에 휠체어 탄 사람이 나밖에 없네. 출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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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 30분 만에 지옥행 캠핑카에서 천국행 페리로 바꿔 탄 것이다. 무엇보다 날씨가 좋았다. 여행의 8할은 날씨다. 저녁 8시가 넘었지만, 백야 기간이라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갑판에서 멀어지는 덴마크 땅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행복, 사랑하는 사람들, 음식
배가 출항하자 다른 승객들은 저녁 뷔페로 가거나 스낵 코너에서 핫도그와 피자를 먹기 시작했다. 얇은 피자 한 판이 200DKK(약 4만 원) 정도로 비싼 것도 문제였지만, 우리 가족은 피자와 핫도로 저녁 식사를 해결할 정도로 세련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선실로 돌아가 엄마가 캠핑카에서 미리 챙겨 온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비닐봉지에 든 찬밥 덩어리와 김치, 콩잎, 멸치볶음은 1,000km를 달려온 피로를 모두 날려버리는 최고의 만찬이었다.
여행 내내 즐거웠지만, 페리의 저녁 식사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행복학 권위자인 연세대학교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이 무엇인지 한 줄로 요약했다.
▲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자주 먹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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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해 위의 Bar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고생한 동생과 조촐한 축하 파티를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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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을 마친 페리는 다시 북해를 따라 북쪽으로, 북쪽으로 더 올라갔다.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서쪽 해안선은 절경의 연속이다. 사실 노르웨이 여행은 서쪽 해안의 피오르(Fjord)를 두 눈에 가득 담는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투명하게 깨끗한 바닷바람이 눈에 보일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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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남부 지역 바닷가 마을의 보편적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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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하루 전에 피요르라인 페리에 오르며 이정도면 크루즈라며 환호성을 질렀는데, 크루즈의 발코니에 앉아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관광객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다 있는 우리 배인 줄 알았는데, 크루즈를 보고 나니 우리 배에는 야외 수영장도 없고 비치베드도 없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이런 때에 쓰는 말일 것이다.
아이다 프리마호를 검색하니 일본 미츠비시 중공업이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했단다. 약간 복잡미묘한 애국심이 갑자기 솟았다. 에잇, '크루즈를 안 본 눈 삽니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리고 캠핑카 여행을 마치던 날 부모님과 나는 크루즈 여행 관련 유튜브를 하루 종일 들여다 보았다. 우리 눈은 이미 크루즈를 본 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 견물생심 크루즈 안 본 눈 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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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겐은 노르웨이 여행의 중심이기 때문에 사시사철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특히나 여름 휴가철에는 도로에 일반 승용차보다 캠핑카가 더 많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러니 노르웨이 남부지역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일정을 고려해 반드시 출발 전에 캠핑장을 예약해야 한다.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캠핑장은 Grimen Camping(주소 Hardangervegen 265, 5226 Nesttun)이었다. 도착하기 1주일 전을 기준으로 베르겐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곳 중에서 예약이 가능한 유일한 캠핑장이었다. 베르겐 시내도 둘러보고, 베르겐(Bergen)에서 플롬(Flåm)을 배와 기차로 오가는 송네 피오르(Sognefjord) 투어도 해야 했기에 베이스캠프가 될 캠핑장은 반드시 가까워야 했다.
캠핑장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출발한 지 2박 3일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차려 먹는 식사를 했다. 어딜 가나 캠핑의 백미는 숯불을 피워서 연기를 풀풀 풍기며 굽는 두툼한 고기다.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곁들여 먹는 이 진수성찬 앞에서는 평소 입이 짧아 쌀밥 보기를 돌같이 하시는 고래 양의 수저도 바쁘게 만들었다.
▲ 캠핑의 기적 고래 양의 수저가 바쁘게 움직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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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건너편 작은 산에서는 산등성이를 따라 맑은 물이 흘러 내렸다. 누군가에게 노르웨이는 피오르의 나라이고, 트래킹의 나라지만, 10년 전 나의 기억 속에 있는 노르웨이는 폭포의 나라였다.
▲ Grimen Camping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오는 물줄기가 흥취를 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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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시간 밤11시59분 백야의 밤은 한 폭의 산수화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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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https://ninesteps.tistory.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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