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파는’ 트럼프… 낙태 반대하더니 갑자기 지지?

강창욱 2024. 8. 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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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정부, 여성과 생식권에 ‘그레이트’”
“온건파로 보이려는 시도”… 보수층 분노
“구멍에 빠졌을 땐 땅 파는 거 멈춰야”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P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 소셜’에 올린 문제의 발언. 해당 게시물 캡처


“나의 행정부는 여성과 그들의 생식권에 훌륭할 것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 소셜’에 올린 이 한마디가 보수층 사이에서 좌절과 분노를 일으킨 것으로 전해졌다.

‘생명옹호론자’를 자처하며 줄곧 낙태 반대를 주장해온 트럼프가 갑자기 ‘낙태 권리 지지’로 태세를 전환한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훌륭’한 정부가 될 것인지 설명하지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여성의 생식권에 큰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인 만큼 기존 입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의 약속이 지지자들을 분노하게 했다”며 “트럼프는 민주당이 흔히 사용하는 언어(생식권)를 사용했고, 낙태 반대론자들은 곧바로 그의 어조 변화에 주목했다”고 24일 전했다.

이 매체는 트럼프가 올린 글에 대해 “낙태 문제에서 더 중도적인 입장을 제시하고자 하는 그의 캠페인의 다급한 시도를 반영한다”며 “이 문제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2022년 뒤집힌 이후 공화당이 선거에서 어려움을 겪게 만든 핵심 이슈였다”고 해설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 권리를 보장한 사건이다. 이 판결은 2022년 6월 다른 사건에서 ‘헌법은 낙태권 보장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기됐다. 이 결정을 내린 재판부는 트럼프가 대통령 시절 임명한 판사들이었다.

이후 낙태권 보장 문제는 각 주로 넘어가 첨예한 정치적 갈등 거리로 부상했다. 그동안 약 22개 주가 임신의 다양한 단계에서 낙태를 금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CBS 인터뷰에서 연방 낙태 보호법을 종식한 대법원 판사들을 임명한 데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22일 민주당 전당대회(DNC)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트럼프가 보수 성향 대법관을 임명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는 정신 나간 일을 했다”며 “대통령이 되면 연방 차원에서 여성의 자유와 선택권을 보장하는 법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코스프레’ 도움 안 될 것”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AFP연합뉴스

민주당은 ‘생식권’이라는 문구를 낙태를 대신하는 말로 주로 사용한다. 출산 조절이나 시험관 수정처럼 출산과 관련된 다양한 의료 행위를 광범위하게 지칭하기도 하지만 민주당이 주장할 때 생식권에 대한 지지는 거의 항상 낙태 접근성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고 폴리티코는 설명했다.

이 매체는 “반면 공화당은 그런 식으로 낙태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며 “낙태 반대론자들은 트럼프의 어조 변화를 금세 알아차렸다”고 전했다.

낙태 반대 단체 ‘라이브 액션’ 창립자 릴라 로즈는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트럼프가 낙태 찬성론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이 표현을 사용했다며 “원칙이 없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 캠프가 지금 민주당원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학생들을 위한 라이프 액션’의 크리스탄 호킨스 회장은 엑스(X)에서 트럼프의 발언을 겨냥해 “당연히 프로라이프(생명 옹호) 운동 내부의 많은 사람을 화나게 했다”고 말했다. 미 보수 매체 ‘내셔널 리뷰’ 편집인 필립 클라인은 “트럼프가 반대편에 가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사용한 ‘생식권’은 임신 중절 권리 옹호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며 “이는 임신 중절 권리를 본질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바꾸고 오는 11월 자신에게 해로울 수 있는 문제(낙태)에 대해 정치적으로 온건한 사람으로 보이려는 노력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더 강경한 낙태 반대를 원했던 미 비영리단체 가정연구위원회 토니 퍼킨스 회장은 “내 조언은 구멍에 빠졌을 땐 파는 걸 멈추라는 것”이라며 트럼프의 발언을 비판했다. 위험한 상황이라고 무리하게 발버둥 치다가는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이번 주 DNC가 낙태 문제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며 “그(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지지를 약화할 뿐 아니라 100% 생명권 옹호자인 공화당 후보 대부분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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