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렇게 마셔요?" K-드라마 즐겨보는 미국인이 물었다
[장소영 기자]
"한국 드라마는 여기(미국) 드라마에 비하면 순한 맛이지."
내가 사는 미국 뉴욕 맨해튼 근교의 주거 지역에는 한국 드라마를 챙겨보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이곳의 이웃들은 한국 드라마를 '순한 맛'이라고 칭한다. 장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국 드라마 대부분은 가족과 함께 보기 좋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아이들과 함께 시청한다는 사람도 여럿이다.
그런데 종종 한국 드라마 속 '어떤 장면'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고 했다. 내게는 익숙한 장면을 무섭게 느끼는 이도 있었다. 이들은 한국 드라마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주변 이웃들에게 물었다.
▲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 픽사베이 |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는 A씨는 이제 막 십 대에 들어선 어린 자녀들이 있다. 총보다 트럭을 무섭게 느끼는 이유를 물으니 '미국의 현실'을 언급했다. 사실 미국에서 총기 사고는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대도시 일부 지역 외에서 직접 위협적인 총기사고를 겪는 경우는 드물다. 대중교통보다 자신의 차로 운전해 이동하는 경우가 많기에 트럭 등 대형 운송차를 흔히 본다. 그렇기에 트럭을 보면, 교통사고를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를 찾아보며, 한국어를 익힌다는 청년들은 한국식 '음주 문화'를 언급했다.
뉴욕에서는 편의점에서 맥주 한 병을 사더라도 가지고 나올 때는 종이봉투나 가방에 넣어 타인에게 주류 병이나 캔을 노출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편의점 앞에서 맥주 한잔을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만, 미국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편의점 대다수가 주유소에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동네의 편의점 앞에 테이블이 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또 거리에서 술을 마실 수도 없고 마시게 되면, 경우에 따라 법적 제재를 받는다.
경찰의 검문으로 음주 측정에서 이상이 없었다 하더라도, 운전자에게 술 냄새가 나거나 술병이 열린 채 차 안에서 발견되면 처벌 할 수도 있다. 동네마다 펍(pub)이 있지만 역시 야외 테이블은 드물다. 사전에 허가를 받아 집 앞 골목 양쪽을 막고 사적인 거리 파티를 즐기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규정이 있다. 음주와 미성년 참여 여부, 소음 문제와 관련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
펍이나 레스토랑 앞의 발코니 테이블에서 식사와 곁들여 술을 마시더라도, 주류 캔이나 병을 그대로 보이지 않고 컵이나 잔을 이용한다. 공원들도 해가 지면 문을 닫는다. 그렇기에 드라마 속 '한국의 밤거리', 즉 술을 마시는 장면을 보면, 한국이 자유롭고 안전한 사회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 동시에 미국과 음주와 관련해 인식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속 장면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 tvN |
대학 2학년인 B씨는 여러 한국 드라마를 통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술자리' 장면을 접했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의 대학들도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의 전통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그러나 B씨는 이때의 분위기는 강압적인 술자리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의 법정 드라마를 통해 한국의 음주 후 처벌이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생각했다. 술은 놀이가 아닌데도 벌칙을 술로 받거나, 폭탄주 제조 장면처럼 술을 재미로 다루는 장면에도 불편함을 느꼈다.
그에게 미국은 어떠냐고 물었다. B씨는 "가족이 술을 잘 하지는 않는다. 친구들과 펍이나 파티에 가면 아버지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뚜껑 있는 컵을 이용하고 술잔을 잘 챙겨라, 밥(Bob)을 미리 정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술잔을 손으로 항상 덮고 있으라는 건 누군가 술에 약물을 탈 수도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그리고 밥(Bob)을 정하라는 말은 친구 중 한 명을 지정 운전자 혹은 보호자(Designated Driver)로 정해서 다른 사람들을 챙기라는 뜻이다. 동네마다 사용하는 별명이 조금씩 다르지만 '밥(Bob)'의 역할을 하는 친구는 운전 외에도 친구들이 주량을 넘기면 즉각 주의를 주는 역할도 맡는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에는 종종 공공장소나 편의점 앞과 같은 열린 장소에서 음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에게 사랑 고백을 할 때도 이런 장면은 등장한다. 회사 사람들이 모여서 "한번 마셔보자"고 외치고 이후 만취한 사람들이 헤어지기 아쉬워 편의점 테이블에서 2차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주도'가 술자리의 흥을 돋우고 만취로 이어지는 것처럼 오해를 살 수 있는 장면들이다.
▲ 드라마 '굿파트너' 속 장면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 SBS |
최근 네이처 그룹이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 최신호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해외에서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들은 드라마 속 음주 횟수와 음주량에 영향을 받았다. 이 연구는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경험이 있는 성인 638명(인도네시아인 255명, 이스라엘인 255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장기간에 걸쳐 다수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사람일수록 드라마에 등장했던 소주를 마시거나, 3개월 이상 음주와 폭음을 경험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물론 편의점 앞에서 피곤한 하루를 녹이는 맥주 한 캔이나 야경을 바라보며 한강 변에서 마시는 소주 한 잔의 낭만도 있다. 다만, 한국 드라마에 술을 중심으로 한 관계나 놀이 문화가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해야 하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한국 드라마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과정이기에 더 그렇다. 꼭 음주 장면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흥을 담을 방법은 많지 않을까. 폭력과 자극에 지친 미국의 시청자 중 한국 드라마와 영상이 '순한 맛'이라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음주가 아닌 한국의 다른 매력을 선보이는 건 어떨까.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배우 간미연의 도전 "포기 많던 지난날… 이젠 그렇게 안 살래요"
- '파친코' 이민호-김민하가 말하는 자이니치의 비극적 삶
- 무엇 하나 안 빠지는 범죄 드라마, 그런데 왜 허망할까
- 집에서 차로 6시간, 드디어 아이유를 만났습니다
- "대단한 아이들"... 교토국제고 우승, 일본 언론은 이걸 주목했다
- 환하게 웃은 전두환, '미완성'으로 끝난 심판
- "20명이 매달 1만 원씩 모으면 '제2의 오상욱' 키운다"
- '유퀴즈' 나와 유명해진 '운사모', 이 사람이 만들었다
- 양세찬 인생 캐릭터 '모지리', 유튜브에서 흥할까
- 전화 한 통이 마지막, 아들의 행방을 찾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