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배출한 '여성 대통령'…美 첫 여성 정상 탄생할까

정현진 2024. 8. 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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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정상,1960년 이후 87개국 174명 등장
스리랑카·인도·이스라엘서 먼저 배출
마거릿 대처 등 G7 국가선 비교적 늦게 나와

"카멀라 해리스는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 천장(대통령직)에 균열을 가하고 있다. 균열 사이로 (미 대통령으로서) 선서를 하는 해리스가 보인다.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할 때다." - 지난 19일(현지시간),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오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맞서 해리스 후보가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것인지를 놓고 전 세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정치인이었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를 비롯해 여성 최초 연임에 성공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 여성의 정치권 진출이 서서히 이뤄지고 있지만, 여성이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가·정부 수장으로 등장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韓 등 45개국은 1명만 배출…1960년 스리랑카서 세계 첫 여성 총리"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유엔여성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193개 유엔 회원국의 여성 국가 원수나 정부 수반을 분석, "세계 20대 경제 대국 중 미국은 아직 여성이 국가 원수나 정부 수반에 오르지 못한 7개국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1960년 이후 전 세계에서 여성이 국가 또는 정부 수반이 된 경우는 현재까지 87개국에서 174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여성이 최소 여섯차례 국가 또는 정부 수반을 맡은 국가는 페루, 산마리노, 스위스 등 세 곳이었다. 이 중 산마리노는 여성이 국가·정부 수장을 20차례나 맡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여성 수반을 배출해낸 국가로 기록됐다. 핀란드와 아이슬란드, 리투아니아, 몰도바 등 4개국은 여성 수반이 네차례 등장한 국가였다.

그 외에도 인도, 뉴질랜드, 영국 등 9개국에서는 여성이 세 차례,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26개국에서는 여성이 두차례 국가·정부를 대표하는 자리에 올랐다. 한국(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45개국은 여성이 딱 한 번 대통령 또는 총리직에 오른 국가로 분류됐다.

세계 최초 여성 총리는 스리랑카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였다. 그는 1956년 총리직에 오른 남편이 1959년 암살당하자 1년 뒤인 1960년 총리를 맡게 됐다. 2000년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까지 세 차례 18년을 국가의 수장으로 활동했고 그 외 기간에도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처음 총리에 취임했을 당시 한 기자가 여성이 세계의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두고 보면 알 것"이라고 답한 일화도 전해진다.

6년 뒤인 1966년에는 인도에서 첫 여성 총리인 인디라 간디가 총리에 올랐다. 집권 초기에만 해도 '멍청한 인형'이라는 멸칭까지 받았으나 이후 16년 가까이 정부 수반으로 활동하며 인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총리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고 WP는 설명했다. 뒤이어 1969년에는 이스라엘 정치인 골다 메이어가 총리를 맡으며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G7 중 3곳 女 정상 역사 없어…"대통령제서 권력 얻기 어려워"

주요 7개국(G7)에서는 비교적 여성 국가 정상 또는 정부 수반이 늦게 등장했다. 1979년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영국 총선에서 승리하며 영국 역사상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펼친 여성 정치인으로 지금까지 평가받고 있다. 영국을 비롯해 G7 국가 중 여성 국가 정상 또는 정부 수반이 등장한 곳은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등 4곳이다. 현재 첫 여성 대통령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의회 의원 중에서도 여성 비중이 28%에 불과하다.

WP는 민주주의 운영 방식인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여성이 대통령직에 오르기 더욱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권한이 총리에 일부 분산한 준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국가에서는 2020년 이후 여성 국가 정상이 27명 배출됐지만,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에서는 온두라스와 멕시코 등 단 두 곳에서만 여성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줄리 발링턴 유엔여성기구 정책 고문은 의원내각제의 경우 여성이 정당 내에서 서서히 입지를 구축하며 위로 올라갈 수 있지만, 최상단에서 직접 마주하는 형태인 대통령제는 구조적으로 장벽을 더해 여성이 권력을 얻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당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전 대통령·왼쪽)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현 부통령)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어려운 구조 속에서 등장한 여성 국가 정상이나 정부 수반들은 수십년간 성별을 이유로 공격받아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치 능력에 대한 평가보다 옷차림이나 외모가 주목받는 일이 벌어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후보에서 사퇴하며 해리스 부통령이 전면에 나서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 외모가 해리스보다 낫다"며 인신공격에 나서기도 했다. 사석에서 여성비하 발언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유세에 속도를 내는 해리스 부통령은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부각하지 않고 있다.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먼저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남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해 세력을 결집한 적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가벼운 태도로 최초라는 수식어를 대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도하는 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스(NYT)는 "민주당 여성 당원들이 2016년 클린턴의 백악관 입성 실패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고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여성 혐오와 성차별에 맞섰던 당시 유세와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져 여성이 실제 대통령이 되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민주당 내 여성 당원들의 인식을 전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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