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면 부산이나 서울까지 가야 해요"…복합쇼핑몰 고민하는 도시들[노잼도시]
<3>쉽지 않은 '노잼' 탈출
③쇼핑+식사+문화체험…현지인엔 쇼핑몰이 관광지
인기 팝업스토어 즐기고 쇼핑관광
지자체가 쇼핑몰 유치에 매달리는 이유
편집자주
재미없는 도시, 이른바 '노잼도시'를 아시나요? 놀거리·볼거리·즐길거리가 부족해 현지인은 심심하고 타지역에서는 방문하지 않는 도시를 말합니다. 2019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러 도시를 두고 노잼도시라는 호칭을 붙였는데요. 재미로 시작된 일종의 '밈'이 대전, 울산, 광주, 청주 등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꿀잼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로 이어질 정도입니다. '노잼' 오명을 쓴 도시는 정말 재미없고 따분한 곳일까요? 도시를 재미있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와 공간에 대해 고민을 해보고자 합니다.
# 지난달 20일 낮 12시 현대백화점 울산점 지하 1층에는 대구 유명베이커리 '마망카페'의 팝업스토어 대기줄이 에스컬레이터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시그니처 상품인 소금 붕어빵을 사기 위해 줄은 선 김민서씨(36)는 인스타그램에서 팝업스토어 공지를 보자마자 달려왔다고 했다. 뒤편에 줄 서 있던 김유연씨(27)는 "울산에는 팝업스토어가 거의 없어 부산까지 넘어간다"며 긴 대기줄의 이유를 설명했다.
# 지난달 23일 '이케아'의 팝업스토어가 열린 대전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케아가 충청권에서 처음 선보인 팝업스토어라 지역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케아 매장은 부산 기장군에 있는 동부산점을 제외하면 3곳 모두 수도권(고양점·광명점·기흥점)에 있다.
쇼핑센터와 영화관, 놀이공원 등 문화시설이 모여있는 복합쇼핑몰은 도시를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지역 관광지 상위권 명단에 쇼핑몰과 백화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지가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의 최근 1년간(2023년 8월~2024년 7월) 17개 광역시·도 지역별 인기 관광지 3400곳을 분석했다. 현지인들이 내비게이션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관광지 상위권은 백화점·쇼핑몰이 싹쓸이하고 있었다. 2022년 이후 '꿀잼도시 만들기 프로젝트'에 나선 대전·울산·광주광역시 모두 기차역·버스터미널 등을 제외하면 백화점·쇼핑몰이 1위다.
현지인뿐 아니라 외지인도 백화점·쇼핑몰을 즐겨 찾는다. 대전은 현대프리미엄아울렛대전점과 신세계백화점대전신세계아트앤사이언스가 외지인이 많이 찾는 장소 2·3위에 올랐는데, 지역 출입 관문인 교통시설(대전역)을 제외하면 쇼핑 시설이 사실상 1위인 셈이다. 광주의 경우 현지인·외지인 모두가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영화관, 대형 서점 등이 밀집해 있는 유스퀘어광주종합버스터미널이 꼽혔다. 울산은 해맞이 명소로 유명한 간절곶에 이어 현대백화점울산점이 3위에 올랐다.
취재진이 대전·울산·광주·청주 등 4개 도시 지역민들에게 주말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냐고 묻자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각 지역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답이 많았다. 대전 동구 둔산동에서 소품 숍을 운영하는 20대 육영채씨는 "복합쇼핑몰에서의 팝업스토어나 전시회 등 인프라가 풍부해지면 우리 지역도 '노잼도시'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복합쇼핑몰은 주변 도시 인구를 끌어들이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청주에서 만난 시민들은 입을 모아 오프라인 쇼핑을 하고 싶을 땐 대전 혹은 서울까지 '쇼핑 관광'을 떠난다고 했다. 청주 오송역에서 KTX를 타면 50분 만에 서울 용산역에 도착한다. 청주 성안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염소연씨(39)는 "청주엔 쇼핑몰이나 영화관도 하나밖에 없고 현대백화점도 딱 하나 있다. 조용해서 살기 좋다고 하지만 시내에 정말 아무것도 없는 수준"이라며 "필요하면 대전이나 서울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 꿀잼 위해 복합쇼핑몰 유치에 '눈독'광주는 복합쇼핑몰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다. 광주는 인구 141만명이 사는 광역시지만 대형 복합쇼핑몰이 아직 없다. '꿀잼도시 광주'를 만들겠다고 밝힌 강기정 광주시장은 도시 이용인구 3000만명 시대를 열겠다며 복합쇼핑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광주에서는 현재 복합문화공간인 유스퀘어가 복합쇼핑몰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유스퀘어에는 종합버스터미널과 유스퀘어문화관(현재는 폐관), 신세계백화점이 연결돼 있는데, 카페·베이커리·음식점·대형 문구점·서점 등이 밀집해 있다. 기자가 지난달 30일 방문한 유스퀘어는 평일 오후였음에도 인파가 가득해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한 곳에서만 여가를 즐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광주 시민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본인을 '광주 토박이'라고 밝힌 70대 택시 기사는 "(복합쇼핑몰) 하나 해놓으면 제주나 전북에서 서울까지 안 가고 광주로 놀러 오지 않겠냐"며 "그렇게 해야 광주도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유스퀘어 내 영화관을 방문한 김모씨(67)는 "큰 복합쇼핑몰이 없어 그동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며 "복합쇼핑몰이 곧 들어온다고 해서 시민들이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동명동 카페거리에서 만난 조선대 학생 정모씨(23)도 "광주는 서울과 비교해 놀 곳이 정말 없었다"며 시의 복합쇼핑몰 유치 시도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쇼핑몰이 '꿀잼도시' 흥행 보증수표?이처럼 물건을 구매하는 장소에 불과했던 쇼핑몰은 현재 쇼핑뿐 아니라 식사, 게임, 영화 등 다양한 문화체험까지 동시에 즐기는 '몰링(mall-ing) 문화'의 중심이 됐다. 복합쇼핑몰이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이 되면서 도시를 재미있게 만드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방문객을 끌어모으고 지역 내 소비·일자리 창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복합쇼핑몰과 백화점만으로 노잼도시를 꿀잼도시로 탈바꿈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백화점과 쇼핑몰 입점 브랜드가 어느 도시든 비슷하다 보니 오히려 도시의 고유 개성을 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종린 연세대 교수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은 뻔하지만 골목상권 동네 가게들은 변화무쌍하고 개성이 있다"며 "지속 가능한 꿀잼은 골목상권인데 지자체들이 복합쇼핑몰같이 단기 성과를 보일 수 있는 큰 사업만 선호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광주 유스퀘어에서 만난 박송미씨(39)는 "광주에 복합쇼핑몰이 들어서면 볼거리가 많아지겠지만 오히려 주변 상권이 죽을까 봐 걱정된다"며 "사실상 서울에서 유행하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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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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