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시발레단 창단공연…감각적인 미장센과 안무, 하지만 ‘과유불급’
서울시발레단의 창단공연 ‘한여름 밤의 꿈’(8월 23~2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서울시발레단은 국립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에 이어 48년 만에 창단한 국내 세 번째 공공 발레단이자 한국 최초 공공 컨템포러리 발레단이다. 무용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무대에 오른 ‘한여름 밤의 꿈’은 재미 안무가 주재만이 안무와 연출을 맡았다.
주재만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미국 컴플렉션즈 컨템포러리 발레단의 전임 안무가 겸 발레 마스터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그는 와이즈발레단에서 2018년 ‘인터메조’(Intermezzo)를 국내에 처음 이름을 알린 뒤 2021년 ‘비타’(VITA)로 큰 주목을 받았다. ‘비타’는 환경 문제가 심각한 요즘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담은 작품이다. ‘인터메조’가 약 20분 정도의 소품이었다면 60분의 장편인 ‘비타’는 화려한 영상과 무대연출 그리고 다채로운 움직임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지난해 광주시립발레단의 ‘디바인’(DIVINE)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의 분노, 고통, 희생, 용서, 치유의 과정을 75분간 미니멀한 무대 위에 강렬한 움직임으로 그려냈다. ‘비타’와 ‘디바인’이 컨템포러리 발레로 드물게 반향을 일으킨 만큼 서울시발레단 창단공연의 안무가 주재만에게 맡겨진 것은 당연했다.
서울시발레단의 ‘한여름 밤의 꿈’은 진실한 사랑을 찾는 연인들이 벌이는 한바탕 유쾌한 소동을 그린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하지만 원작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인간에게 소중한 ‘사랑’과 ‘꿈’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준다. 원작에서 사랑을 이어주는 장난꾸러기 요정 퍽은 이번 작품에선 현자처럼 관찰하는 입장이다.
주재만은 2막 7장으로 구성한 이번 작품에서 욕망, 고통, 슬픔, 분노, 기쁨, 희망, 용기 등 사랑과 연관된 다채로운 감정을 여러 형태의 솔로, 듀엣, 트리오, 군무로 표현했다. 앞서 원작 희곡을 발레로 만든 안무가들이 멘델스존의 관현악곡 ‘한여름 밤의 꿈’을 사용했지만, 주재만은 슈만의 가곡과 피아노곡으로 무대를 채웠다. 여기에 미국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필립 다니엘이 이번 작품을 위해 두 곡을 작곡하는 한편 2막 엔딩의 군무 장면에선 직접 피아노 라이브 연주를 펼쳤다.
오디션을 통해 뽑힌 약 30명의 무용수는 주재만의 격렬한 안무를 열심히 소화했다. 다만 개막을 앞두고 무용수들의 부상으로 조안무 애디슨 엑터가 대타로 나오는가 하면 한 장면은 아예 삭제했다. 특히 공연 둘째 날 퍽 역의 무용수가 부상을 당하면서 작품의 중심이 되어야 할 퍽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이번 작품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대극장 무대를 가득 채운 감각적인 미장센이다. 앞서 ‘비타’와 ‘디바인’이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호평받았지만, 이번 작품에선 그 비중이 더 크다. 다채로운 무대 조명과 함께 공연 내내 영상을 활용한 것이 눈에 띈다. 무대 배경막에 클로즈업된 무용수들의 몸, 쏟아지는 빗줄기와 거대한 보름달, 바다와 숲 등 다양한 영상이 등장한다. 여기에 구름 또는 날개를 연상시키는 대형 오브제, 계단이 보이는 사각의 구조물, 심장 모양의 빨간 나무 등의 오브제가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어우러져 강렬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일부 장면에선 오브제나 영상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무용수의 움직임에서 시선을 뺏기도 한다. 하지만 무대가 너무 넓어서 발레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채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을 것이다.
관객을 사로잡는 감각적 미장센에도 불구하고 ‘한여름 밤의 꿈’은 전체적으로 ‘과유불급’이란 단어가 어울려 보인다. 서울시발레단 창단공연이라는 무게감 때문인지 너무나 많은 것을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비타’나 ‘디바인’이 명징한 주제를 가졌던 것과 달리 이번 작품이 단순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사랑을 다룬 탓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인터미션 20분을 포함해 2시간15분이라는 공연 시간은 컨템포러리 발레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겐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추상적인 컨템포러리 발레의 경우 장면들이 축적되면서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가 드러나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 장면이 지나치게 나열식이다. 게다가 무대에 라이브 카메라를 올려 무용수들의 몸을 비추는 장면은 전체 흐름에서도 튈 뿐만 아니라 이것만을 위해 라이브 카메라를 사용한 것이 매우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 장면의 연결을 좀 더 압축적이고 미니멀하게 했으면 관객을 보다 몰입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은 세련된 미장센과 안무로 컨템포러리 발레에 대한 관객의 감각을 깨운다. 한국 발레가 이제 클래식 발레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온 만큼 무궁무진하게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컨템포러리 발레로의 진입이 필요한 시점에서 서울시발레단 창단은 시의적절했다. 앞으로 서울시발레단의 비전을 제시하는 예술감독 선임과 함께 발레 제작 노하우가 있는 운영팀 보강은 세종문화회관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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