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부식∙후식 112종, 뷔페야? 요즘 전투식량, 감탄사 터진다 [이철재의 밀담]

이철재 2024. 8.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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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의무를 마친 대한민국 남성이 군 생활을 떠올릴 때 빠지지 않는 게 있다. 전투식량이다.

이번에 국방부로부터 받은 전투식량 L형(신형 전투식량) 중 함수형 12개 식단과 특전식량 10개 식단 등 모두 22개 식단. 1개 식단을 촬영 전에 맛 봐 21개가 보인다. 동영상 캡처


야전훈련 중 전우들과 함께 까먹은 전투식량에 대한 추억이 방울방울 맺힐 것이다. 하지만 전투식량의 맛…. 배고픔마저 잊을 정도로 형편없었다고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맛있게 먹은 이들도 있었겠지만. 누군가는 전투식량을 “말 그대로 전투 중에 정신없이 먹어줘야 하는 음식”으로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투식량은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고열량의 음식을 야전에서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식량이다. 그래서 맛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방부가 달라졌다. 2022년 신형 전투식량인 ‘전투식량 L형’을 내놨다. 올 4월부터 야전에 보급하고 있는 신형 전투식량은 우선 메뉴가 다양해졌다. 주식은 34종, 부식은 62종, 후식은 16종이다. 골라 먹는 재미가 생겼다.

그리고 맛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국방부는 강조했다. 사실 전투식량도 가급적 맛있게 만드는 게 최근 세계적 추세다. 장병의 생존은 기본이고, 심리적 안정은 전투력을 끌어올린다는 생각 때문이다.


신형 전투식량 112종 골라 먹는 재미

지난해 기자는 중앙일보의 유료 콘텐트인 ‘더중앙플러스’에서 ‘전투식량을 부탁해’를 연재했다. 당시 한국군을 비롯해 미군ㆍ프랑스군ㆍ스페인군의 전투식량을 직접 맛보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군 신형 전투식량을 입수한 뒤 후기를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전투식량 L형을 기자(가운데)와 함께 시식할 김민수 대표(왼쪽)와 태상호 기자. 전투식량 느낌을 살리려 야외에서 촬영했다. 덕분에 무더위가 심해 다들 땀을 많이 흘렸다. 기자는 얼굴이 익었다. 동영상 캡처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 국방부의 협조를 받아 전투식량 L형 중 함수형 12개 식단과 특전식량 10개 식단 등 모두 22개 식단을 입수했다.

전투식량 L형은 크게 3종류로 나뉜다. 발열체에 물을 넣어 가열해 먹는 함수형, 동결건조한 식량에 물을 넣은 뒤 가열하는 재수화형, 그리고 특수전 부대가 은신처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특전형이다. (※기사 앞머리에 붙인 동영상에선 함수형과 재수화형에 대한 설명이 틀렸다.) 이번에 입수하지 못한 재수화형도 12개 식단이 마련됐다. 전체 34개 식단이다.

그런데 장병들이 함수형과 재수화형의 의미를 잘 모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와 지난해 3월 이름을 각각 ‘발열형’과 ‘복원형’으로 바꿨다. 그리고 특전형의 맛을 더 개선했다. 이번에 받은 전투식량은 개명과 개선 이전에 생산한 것들이었다.


전투식량 한 끼가 하루 열량의 절반

전투식량을 함께 먹을 전우 2명을 섭외했다.

굴소스 카레 비빔밥의 내용물. 동영상 캡처


우선 ‘전투식량을 부탁해’를 함께 진행한 김민수 대표를 다시 불렀다. 그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이자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다. 취미로 서바이벌 게임을 즐긴다. 또 한 명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태상호 기자다.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을 직접 취재한 경력이 있고, 군ㆍ경찰에 근접전투 기술을 가르치는 전문가다.

두 사람은 매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 총포 박람회인 ‘샷쇼(SHOT Show)’에 가 최신형 총기를 직접 만지고 쏘는 애호가다. 경력이 그야말로 ‘택티컬’하다. 그래서 전투식량 리뷰어로 손색없다고 판단했다.

위장무늬 포장의 겉모습은 기존 전투식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름과 내용물 설명이 쓰인 하얀색 스티커로 붙인 게 기존과 달랐다. 하얀색 스티커는 눈에 잘 띄니 실전에선 뗄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생각한다.

발열형(함수형)은 기존보다 무게와 부피를 줄였지만, 복원형(재수화형)과 특전형은 각각 발열체 추가와 식감 개선 때문에 조금 더 무거워지고 커졌다. 가격은 각각 발열형·복원형이 1만761원, 특전식량이 7553원이다. 유통기한은 3년, 열량은 1100㎉ 이상이다. 참고로 성인 남성의 하루 권장 섭취량이 2500㎉다.

발열형(함수형) 주식을 데우는 내용물. 물을 부으면 가열체가 열을 낸다. 동영상 캡처


기자 포함 셋이 전투식량을 하나씩 골랐다. 기자는 특전식량 중 시나몬 케이크(이하 주식 기준)를 골랐다. 김민수 대표의 픽은 새우 볶음밥이었고, 태상호 기자는 굴소스 카레 비빔밥을 집었다.


물 부으면 물티슈로 부풀어

새우 볶음밥은 햄소시지 볶음, 볶음김치, 쥐치포(간장맛), 브라우니, 분말커피와 함께 들어있다. 또 발열팩, 종이도시락, 스푼, 휴지, 계량용기, 잔량 보관용 스티커 등 부속품이 있다. 굴소스 카레 비빔밥은 소고기 완자 조림, 볶음김치, 명태포(간장맛), 치즈 케이크, 분말주스(딸기맛)가 달려 있다. 부속품은 새우 볶음밥과 같았다. 시나몬 케이크의 구성은 현미 크런키 초코바, 조미 쥐치포, 볶은 콩, 분말주스(레몬맛)이었다.

주식인 굴소스 카레 비빔밥은 발열백에 넣은 뒤 물을 부어 덮혀 먹는다. 동영상 캡처


포장을 뜯어 내용물을 꺼냈다. 비닐 계량용기의 눈금대로 물을 발열백에 주식을 넣은 뒤 기다렸다.

그동안 부속품을 살펴봤다. 주식과 부식을 덜어 먹는 종이도시락과 스포크(스푼+포크) 스푼은 기존과 같았다. 계량용기과 잔량 보관용 스티커, 휴지는 이번에 새로 들어갔다. 특히 휴지는 동글게 말아 납작하게 누른 모양이다. 얼핏 발포 비타민처럼 보였다. 물을 부어 부풀려 물티슈로 쓴다. 국방부가 이런 디테일도 챙기다니, 헐~.


탱글탱글 식감 살린 햄소시지

(※아래 리뷰는 개인 취향이 아주 많이 들어 갔으니 감안해서 읽어주길 바란다.)

새우 볶음밥과 굴소스 카레 비빔밥을 한 숟갈씩 맛봤다. 셋 다 모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기존 전투식량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부하는 맛과 전혀 달랐다.

종이 도시락에 새우 볶음밥과 볶음김치, 쥐치포를 함께 넣은 모습. 야전에선 이렇게들 취식할 것이다. 동영상 캡처


새우 볶음밥은 흰새우살이 아니라 건새우가 들어갔다. 고급 중식당 음식이 아니니 그려려니 했다. 그래도 새우맛과 향이 났다. 반면 굴소스 카레 비빔밥은 굴소스 향과 맛이 적었다. 그렇지만 카레 비빔밥이라면 훌륭했다.

다만 새우 볶음밥과 굴소스 카레 비빔밥 모두 엉겨 붙어 식감이 좀 떨어졌다. 발열백에 데워 먹는 야전 전투식량이니 어쩔 수 없는 한계이리라.

볶음김치는 이번에도 치트키였다. 적절히 짜고 매웠다. 무엇보다 어떤 주식과도 잘 어울렸다. 특히 볶음김치 국물은 떡진 밥을 촉촉하게 적셔줘 풍미를 더했다.

햄소시지 볶음은 천지개벽이었다. 기존 전투식량의 양념 소시지는 탱글탱글한 식감을 잃어 씹는 맛이 덜했다. 그런데 햄소시지 볶음은 식감을 잘 보존하면서도 적절한 양념으로 간이 됐다. 밥도둑으로 예약해도 될 정도였다.

굴소스 카레 비빔밥 한 숫가락을 먹고 있는 태상호 기자. 맛 없는 표정은 아니다. 동영상 캡처


간장 소스로 버무린 쥐치포와 명태포 모두 그런대로 괜찮았다. 기자는 쥐치포를 더 좋아하지만, 명태포도 반찬으론 곁들일 만 했다.


달달한 디저트에도 신경 써

특전형의 시나몬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10점 만점에 7점 이상을 주고 싶을 정도다. 오래 보관하려고 수분을 줄여 약간 푸석푸석한 점만 감점 요인이다. 국방부가 맛에 신경을 많이 섰다고 자부하더니 시나몬 케이크를 먹어 보니 그 말을 인정하게 된다.

새우 볶음밥 포장을 택티컬하게 이빨로 뜯는 김민수 대표. 동영상 캡처


새우 볶음밥의 후식인 브라우니는 심심한 맛이었다. 시나몬 케이크의 충격이 너무 컸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야전에서 단 게 당길 땐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현미 크런키 초코바는 미군의 에너지바인 후아바를 떠올렸다. 개인적으론 후아바보다 현미 크런키 초코바에 더 손이 간다. 조미 쥐치포는 간이 조금 돼 있었다. 볶은 콩은 술안주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몬맛분말주스와 딸기맛분말주스도 합격점 이상이었다. 분말커피는 세계 최고의 인스턴트 커피로 꼽히는 한국의 커피믹스만큼은 아니지만 익숙한 달달함을 주는 데 손색없었다.

세 사람 모두 3개 식단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아쉬운 점이라면. 잔량 보관용 스티커는 취지는 알겠는데 별 필요 없어 보였다. 특전형의 경우 지퍼형으로 만들면 남은 음식을 보관하는 데 더 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인구가 줄면서 병력도 줄고 군대도 주는 추세다. 한 명의 장병이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다. 이들이 최상의 전투력으로 싸우려면 전투식량도 신경 써야 하는 세상이 됐다.

부속품으로 들어간 휴지. 평소엔 동글게 만 뒤 납작하게 누른 상태다. 동영상 캡처


그리고 국방부는 간만에 방향을 잘 잡았다. 그렇다고 안주해선 안 된다. 늘 연구하고 더 개선하길 바란다.


중앙일보 유료콘텐트 '더중앙플러스'를 구독하면 더 자세한 '전투식량을 부탁해(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97)' 시리즈를 볼 수 있습니다.

몇 입만 먹어도 뱃속서 부푼다, 특전사들이 먹는 ‘벽돌’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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