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꽃과 옻칠의 결합, 상상해보셨나요?"
[구영식 기자]
▲ 신영희 재미작가가 지난 22일 서울과학기술대에서 금속공예디자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 신영희 작가 제공 |
한국인이지만 미국 군의관(치과의사)과 결혼해 20년이 넘도록 미국 등 외국에서 살았던 신영희 재미작가가 한국에서 '늦깎이 박사'가 된 것은 끈질긴 '문화예술적 소신'의 결과였다. 우수한 예술성을 지닌 한국문화예술의 뿌리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가 박사논문을 위해 만든 작품들에 '쪼음입사'와 '옻칠'이라는 전통공예기법을 이용한 것도 그런 목적에서였다. 쪼음입사란 쌀 미(米)자 무늬의 밑바탕에 패턴을 만들어 금과 은 실을 디자인에 따라 박아넣는 전통공예기법이다. 신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하와이의 여러 가지 꽃들에서 가져온 문양을 이 쪼음입사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을 만들었고, 그것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완성했다.
지난 20일 기자와 만난 신영희 작가는 "전통공예와 하와이 문양의 결합을 통해 문화적 통합을 시도했다"라고 자신의 박사논문과 작품에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하와이의 '알로하(Aloha) 문화'를 언급하면서 "서로 배척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뜻도 있다"라고 말했다. 신 작가는 앞으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입사와 옻칠 등 한국전통공예를 가르치고 그것을 이용한 주얼리 작품들을 만들어 대중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늦깎이 박사로 이끈 금속공예의 매력
- 대학(서울과학기술대)과 대학원(홍익대)에서 금속공예(주얼리 디자인)를 전공했고, 최근 모교에서 금속공예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금속공예의 어떤 매력이 '늦깎이 박사'로 이끌었나?
"제 핏속에는 금속공예에 대한 자연적 끌림이 있었던 것 같다. 제가 여고를 졸업한 다음해 은행에 다녔고, 나중에 서울산업대 미대 90학번으로 입학해서 수석으로 졸업했다. 공부하는 것이 제 연(인연)과 맞았는지 공부가 잘됐다. 중간에 제일기획에서 했던 '아락실' 광고 모델에 우연히 뽑혀서 CF를 찍기도 했다.
미대를 졸업한 뒤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미국 비자를 받지 못해 홍익대에서 주얼리디자인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우연히 아는 언니의 소개로 미군 치과의사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제가 미국에서 아이오와주립대 대학원을 다녔는데, 거기에서 홍익대 출신으로 서울과학기술대 미대 금속공예과를 만든 교수들을 만났다. 그런 인연들 덕분에 다시 한국에 와서 박사과정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끝없이 금속공예를 공부하고 연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철(금속)은 딱딱하지만 갈고 닦으면 더욱 빛이 난다. 인간의 삶도 처음에는 거칠고 모자라지만 계속 성장한다. 또 금속은 다른 것보다 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 빨리 변하지 않고 오래 지속된다. 그런 매력들을 금속공예에서 느꼈던 것 같다."
- 박사논문은 어떤 내용인가?
"학교 다닐 때 입사(入絲, 동·철 등의 금속에 선이나 홈을 파서 그 홈에 금·은·동·주석 등 다른 금속을 채워 넣는 공예기법)에 관심이 많았다. 입사가 너무 아름다워서 언젠가는 저걸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에 3년 동안 있으면서 조각을 배웠다. 그때 평면을 입체적으로 구사해보고 싶어서 2년 동안 공부했는데도 항상 갈증이 났다. 그런데 어느날 미국 메릴랜드 주얼리 쇼에 가서 조남우 선생님의 '쪼음입사'를 봤다. '바로 이거야!' 쪼음입사에 대해 조사도 하고 집에서 혼자 연습도 했다. 그래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하와이에서도 계속 학교를 다니며 공부했다. 제 교수에게 쪼음입사를 보여주면서 '이걸로 박사를 해야겠다'고 했더니 '이것은 테서렉트(Tesseract,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것으로 3차원의 정육면체가 4차원으로 확장된 초입방체를 가리킨다 ) 원리랑 비슷하다'고 했다. 공부해보니까 테서렉트 이론과 입사 이론이 거의 비슷했다. 그래서 박사과정에서 입사와 테서렉트를 접합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쪼음입사 기법을 이용했고, 문양은 하와이 식물에서 가져왔다."
▲ 신영희 재미작가가 박사학위 논문(<테서렉트 조형원리를 이용한 장신구 표현 연구>)을 위해 만든 작품들. 플루메리아 등 하와이안 꽃들에 가져온 문양을 한국전통공예기법인 쪼음입사로 표현했다. |
ⓒ 신영희 |
"외국에는 미술 역사(Art History) 분야 등의 박사는 있는데 작품으로 박사를 하는 과정은 없다. 주로 이론 위주다. 또 제가 우리의 전통적인 것을 배우고 싶었고, 한국에 왔어야만 했던 환경적 요인이 있었다. 우리나라 전통기법인 입사를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 금속공예의 경우 금속이라는 재료가 다루기 힘들어 작업 자체가 쉽지 않을 텐데.
"쉽지 않다. 꾸준한 인내력이 필요해서 자신과의 싸움이다. 요즘 사람들은 입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순서가 많고, 굉장히 손이 많이 간다. 이것을 컴퓨터로 할 수도 없다. 오로지 손으로만 해야 하는 작업이다."
- 사람들은 금속공예라고 하면 보통 '주얼리'를 떠올린다.
"저도 주얼리를 했다. 다만 그냥 보이는 장신구가 아니라 실용적으로 착용할 수 있는, 현대에 맞게 가변성이 있는 주얼리를 만들었다. 상황에 따라 하나의 작품으로 목걸이도 할 수 있고, 브로치도 할 수 있고, 두세 개의 작품을 결합해서 하나의 새로운 장신구가 될 수 있게 했다. 유닛형으로 만들어서 여러 가지 장신구로 착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가까이서 보고 만져보고 착용할 수 있고, 친구랑 나눠 착용할 수 있고, 그렇게 실용적으로 장신구를 만들었다."
- 서울주얼리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박사 과정 때 만든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전시회 타이틀이 '동양과 서양의 영향'이다. 어떤 의미인가?
"동양(한국)의 입사기법과 옻칠에다 미국 하와이(서양)의 문양을 섞었다. 하와이에서 다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처럼 나도 동서양 문화의 융합을 시도해본 것이다. 하와이는 다민족이지만 그것을 조화롭게 융합하면서 하나의 정체성을 만들고 주(state)를 단일화시키는데 거기서 영향을 받았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다운 전통을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전통공예와 하와이 문양의 결합을 통해 문화적 통합을 시도해본 것이다."
▲ 신영희 재미작가는 미군 치과의사 출신과 결혼해 현재 하와이에서 살고 있다. |
ⓒ 신영희 |
"하와이에는 알로하(Aloha) 문화가 있다. 다민족이 살고 있지만 서로 사랑하는 것을 것을 제1로 꼽는다. 알로하 문화는 '사랑'이다. '나, 너 사랑해.' 하와이는 '알로하 스테이트(Aloha State)'다. 특히 '알로하 데이(Aloha Day)'까지 만들었다. 하와이는 열대지방이라 꽃이 많다. 그 꽃을 주의 문화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하와이에 오는 사람에게 꽃(목걸이)을 주면서 하와이에 온 것을 환영한다. '당신은 하와이 사람입니다'라는 뜻이다. 어디서 왔든, 어리든 늙었든, 성별이 어떻든 상관없다.
하와이는 폴리네시아 부족이 세웠는데 여러 민족들이 사니까 그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게 관건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통합된 민족이 되려면 뭐가 좋을까?' 그래서 원주민을 비롯한 하와이 사람들이 알로하 데이를 만들었다. 알로하 데이를 만들어 사랑을 전하고, '너와 나는 다르지 않아, 우리는 다 같이 한 민족이야'라고 하면서 하나로 뭉쳤다고 한다. 이것을 통해 서로 배척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사회를 만드는 것을 배우자는 뜻도 있었다."
- 박사학위 작품에 사용한 하와이 식물에는 뭐가 있나?
"크게 세 가지다. 히비스커스(Hibiscus), 플루메리아(Plumeria), 몬스테라 델리시오사(Monstera Deliciosa)다."
- 가장 좋아하는 하와이 꽃이 있나?
"풀루메리아를 제일 좋아한다. 친절, 사랑, 정열 등 꽃의 의미가 굉장히 많은데 꽃도 아름답고 꽃향기도 아주 좋다.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는 꽃이다. 관광객들에게 걸어주는 꽃목걸이의 주재료도 플루메리아다. 히비스커스는 훌라춤을 출 때 귀에 꽂는 꽃이다. 그 꽃을 오른쪽에 꽂으면 결혼을 안 한 사람이고, 왼쪽에 꽂으면 연애중이거나 결혼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 하와이에서 살기는 어떤가?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은퇴하면 하와이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과 가장 가깝고, 햇볕 등 환경이 좋지 않나. 자연환경이 정말 풍부하고 아름답다. 사람들은 '하와이 물가가 비싼데 뭐가 좋냐?'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위 바이 더 웨더(We buy the weather)'라고 응수한다. '우리는 날씨를 산다', 비싼 비용을 주고 하와이에 사는 것은 좋은 날씨에 대한 대가라는 것이다."
▲ 현재 하와이에서 미군 의사출신 남편과 살고 있는 신영희 재미작가는 미대 졸업 30년 만에 금속공예박사가 됐다. |
ⓒ 구영식 |
"미국에서도 학교에 들어가 그림(추상화)을 그렸다. 날씨도, 환경도 아주 좋고 아름다우니까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금속공예를 하려면 많은 장비와 많은 공간이 필요한데, 그 한계를 극복하면서 나만의 예술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림을 시작한 것이다.
어떤 분이 카슈칠(옻나무과인 캐슈나무 열매껍질에 함유된 액을 주원료로 하는 도료로 1939년 일본의 카슈회사에서 처음 개발됐는데 납성분과 포르말린 성분이 들어 있음)로 그림을 그렸는데 굉장히 독특했다.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미국에서 카슈칠을 해봤다. 그런데 (독한)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못하겠더라. 제가 한국에 오면 전시장에 자주 간다. 어떤 전시장에 갔더니 옻칠로 만든 가구도 있고, 공예품도 있는데 정말 멋졌다. 거기서 채화옻칠 장인인 최종관, 김경자 선생을 만났다. 그때부터 옻칠에 관심을 가졌다. 옻칠이 금속과 잘 맞았다.
또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작품을 만들다 보니 철에는 부식성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철제 유물이 많이 나왔는데 그것이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옻칠 덕분이었다. 제 작품의 부식을 막기 위해 옻칠을 공부하게 됐다."
- 옻칠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나?
"옻칠은 방습, 방수, 내산성(산에 부식되지 않고 잘 견디는 성질), 방충성이 있고, 열에도 강하다. 특히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색깔이 점점 더 깊어진다. 작품의 내구성을 향상시키고, 작품의 미적 가치를 높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매력적이다."
- 남편이 미군의 군의관(치과병원장) 출신인데, 남편도 한국문화 등에 관심이 많나?
"아주 많다. 한복 등 한국의 문화에도 관심이 많고, 특히 홍어를 아주 좋아한다. 생김치가 있으면 밥도 안 먹고 김치 한 그릇을 다 먹을 정도다. (웃음)"
- 미국 쪽 가족들이 한국과도 제법 인연이 있는 걸로 아는데.
"시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1946년 일본에서 근무해서 한국에 대해 알고 있었다. 또 동서 아버지는 수의사였는데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 앞으로 한국과 미국 하와이를 오가면서 작품활동을 할 계획인가?
"그렇다. 저는 우리나라의 숨은 뿌리를 알리고 싶다. 정말 우수한 예술성이 있다. 여기 살았으면 방관했을지 모르지만 외국에 살다 보니 우리의 귀중한 뿌리가 더 크게 보였다. 그래서 한국의 전통예술 등에 많이 관심을 갖게 됐다."
- 특별히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나?
"만들고 싶은 것은 많다. 특히 삼베와 황토칠을 융합한 기물들을 만들고 싶다. 또 우리나라의 우수한 예술성을 알릴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 특히 그것을 해외에서 가르치고 싶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하와이 뮤지엄 아트 스쿨에서 클래스(강좌)를 만들어 가르쳐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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