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서 감자를 키운다고? 이유가 있었다

월간 옥이네 2024. 8. 2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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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동글동글 감자 이야기 - 충북 옥천 안내면 감자농가 민병용·김재수 이야기

무덥습니다. '온열질환' '폭염' 같은 걱정이 여름이 상징이 된 듯도 합니다. 그럼에도 역경을 딛고 자라나는 생명을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여름입니다. 이상기온을 뚫고 결실을 맺은 여름 농산물과 알알이 담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8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자말>

[월간 옥이네]

 동글동글 감자.
ⓒ 월간 옥이네
겨우내 얼어있던 땅이 녹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심는 감자. 3월 중순 파종한 씨감자는 석 달 정도 지나면 포슬포슬하고 맛 좋은 감자로 자란다. 하지 전후로 장마 시작 전 캐는 감자는 여름의 대표 먹거리 중 하나로 계절을 실감할 수 있는 작물. 이제는 사계절 내내 마트에서 볼 수 있는 감자이지만 그 진짜 맛을 느낄 수 있는 건 바로 지금이다. 이 감자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노고를 감자가 특산품인 안내면 민병용, 김재수 씨에게 들어봤다
[현리 민병용] 논에서 감자 나는 이유
 충북 옥천 현리 민병용씨.
ⓒ 월간 옥이네
고향인 안내면 현리에서 농사지은 지 30년이 넘었다는 민병용(65)씨. 마을의 몇 안 되는 친환경 농업인인 그가 감자 농사를 시작한 건 20여 년 전이다. 봄과 여름 대표 품종인 수미감자를 재배하는데, 얼마 전 올해 감자 농사를 마무리지었다며 보여주는 곳이 낯설다. 모가 가득한 논이기 때문. 우렁이와 개구리가 있는 이곳에서 한 달 전 감자가 나왔다니, 상상하기 어렵다.

"작년부터 논에 감자를 심고 있어요. 해가 지날수록 병충해가 심해져 고민하다 찾은 방법이에요. 봄에는 감자 농사를 짓고 여름부터는 벼농사를 지어요. 연작 피해와 병충해가 심해 친환경 농사가 어려워지면서 논에다 심어보자 했죠. 옛날에 가지과인 담배 농사도 논에서 하면 병이 안 났거든요. 담수가 된 곳이라 병충해가 적어서 올해도 같은 방법으로 재배했어요."

날로 더워지는 기후에 극심해지는 병충해를 넘기면, 또 '비'가 기다리고 있다. 정말 산 넘어 산이다. 지난해엔 이른 장마로 미처 수확하지 못한 감자가 물을 먹어 그대로 폐기했다. 그 양이 톤백으로 6개에 달한다니, 그의 말대로 '망했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충북 옥천 현리 민병용씨의 논.
ⓒ 월간 옥이네
 우렁이알.
ⓒ 월간 옥이네
"작년에는 진짜 망했죠. 비가 오기 전 수확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옛날과 다르게 날씨가 언제 변할지 모르니까 수확 시기 고민이 많아요. 다행히 올해는 시기를 잘 잡아서 피해가 없었지만 해가 지날수록 어려워요."

올해는 비 피해가 없었다지만 매년 감자 수확량은 줄고 있다. 15톤에서 10톤, 8톤. 고온다습한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아 농약이나 비료 없이 어디서든 잘 자라는 감자는 다 옛말이 됐다.

"땅이 녹고 가장 먼저 심는 게 감자인데, 겨울이 따뜻하니 파종이 빨라졌어요. 게다가 이른 장마에 수확도 빨리 마쳐야 하니, 약 일주일 정도 빨리 수확해야하죠. 지금은 일주일 정도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얼마나 더 앞당겨질지 모를 일이에요."

걱정이 가득 담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폭우가 쏟아졌다. 작업 창고 천장이 뚫릴 것처럼 내리는 비가 야속하다. 갈수록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그가 수미감자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듯하다.

"우리나라 감자 종류가 50가지가 넘는데, 수미감자만 하고 있어요. 저는 1년에 한 번만 감자 농사를 짓기 때문에 한 가지 품종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더뎅이병(황갈색 병반이 나타나는 병)에 강하기도 하고 소비시장에선 수미감자를 가장 알아줘요. 맛이 무난해서 쪄 먹거나 반찬으로 하기 좋아 많이 찾죠. 찾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만큼 판로 확보도 좋고요. 매년 강원도에서 씨감자를 구입하는데 종잣값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어요. 종잣값, 기후 등 고민거리가 많아요."
 충북 옥천 현리 민병용씨의 뒷모습.
ⓒ 월간 옥이네
이런 어려움에 매해 감자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이 생긴다. 감자농가가 줄어드는 게 민병용 씨는 안타까우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이해가 된다고. "안내에 친환경으로 감자 재배하던 농민이 10명이었는데 지금은 2명뿐이에요. 날씨도 문제이고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이나 비용은 매년 커지는데 감자는 제값 받기 힘드니까요."

"농사 정말 힘들다"라고 할 만큼 민병용 씨 또한 고민과 갈등이 많지만 건강한 제철 먹거리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한 번 더 해보자고 마음먹게 된다.

"저장시설이 좋아진 요즘 제철 먹거리 개념이 많이 줄었어요. 감자와 옥수수를 여름이 아닌 계절에도 맛볼 수 있잖아요. 그때그때 나는 농산물을 먹는 것이 소비자에게도 농민에게도 건강한데… 모두에게 건강한 제철 먹거리 문화가 확산되길 바라요. '신토불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우리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으면 좋겠어요."

[동대리 김재수] '홍길동감자' 매력에 빠져보세요
 충북 옥천 동대리 김재수씨.
ⓒ 월간 옥이네
2006년 경기도 안산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김재수(63)씨가 농사를 지은 지도 벌써 17년이 흘렀다. 하지감자 수확을 마치고 가을감자를 위해 씨감자 선별 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었다는 그가 아무리 바빠도 게을리하지 않는 일이 있다. 맛있는 감자를 위해 영농일지를 작성하는 것. 하면 할수록 공부가 필요한 것이 농사라며 농사에 대한 열정을 가진 그의 첫 감자는 홍감자였다.

"2008년에 홍감자를 맛보고 이거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부드럽고 맛이 어찌나 좋은지... 게다가 당시 홍감자를 하는 곳이 많지 않았어요. 맛도 좋고 경쟁력도 있겠다 싶어서 시작했죠."

요즘 그를 더욱 바쁘게, 또 더 즐겁게 하는 감자도 있다고. 바로 그가 우연히 발견해 증식에 성공한 '홍길동감자'다. 홍감자 농사를 시작한 지 5년이 지났을 무렵 김재수 씨는 동그란 홍감자와 다른 모양의 감자를 발견했다. 길쭉한 모양의 낯선 감자는 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처음 발견했을 때 이게 뭘까 정말 궁금했어요. 홍감자 아닌 것이 밭에 덩그러니 있었으니까요. 모양은 다른데 색깔은 같아서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정확히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돌연변이가 아닐까 생각했죠."
 충북 옥천 동대리 김재수씨의 밭.
ⓒ 월간 옥이네
문득 새로운 감자 종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실험이 시작됐다. 크기가 작고 하나뿐인 이름 모를 감자를 소중히 보관했다가 다음 농사에 심어 본 것. 석 달 정도 지나고 확인한 결과물은 그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하나밖에 없는 감자라 맛도 볼 수 없어서 정말 궁금했어요. 파종 후 3개월 만에 감자를 캤는데 한 뿌리에서 홍감자 4개, 이름 모를 감자 3개 이런 식으로 열렸더라고요. 정말 신기했어요. 그래서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씨감자로 계속 모아서 심었죠."

밭에 심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이름 모를 감자는 크기가 커지고 개수가 늘었다. 가장 중요한 맛도 볼 수 있었다.

"홍감자에서 나온 감자라 맛이 같을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홍감자보다 더 부드러워서 놀랐어요. 어느 정도냐면 일반 감자 삶듯이 물에 삶으면 감자가 풀어질 정도였으니까요. 삶는 방법도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찾을 수 있었죠."

이후 병충해에 강한지, 독성은 없는지 등 더 자세히 감자를 파헤치며 특징을 연구했다. 포슬포슬하고 단맛을 가진 이름 모를 감자는 발견 6년 만에 홍길동감자('홍'감자 보다 더 '길'쭉한데 맛이 좋다고 '동'네방네 소문 날 감자)라고 이름 붙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궁금해졌어요. 2019년이 돼서야 판매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로 자랐고 수량도 확보했죠. 성분 검사로 안전성을 확인한 후 주변 지인, 친척, 그동안 홍감자를 사주신 판매자 100분께 맛 평가를 부탁드렸어요. 입맛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객관적인 평가가 궁금했거든요."
 홍길동 감자.
ⓒ 월간 옥이네
 찐 홍길동 감자.
ⓒ 월간 옥이네
홍감자보다 맛있다는 99명의 평가에 더 많은 이에게 선보여도 되겠다고 생각한 김재수 씨. 한발 더 나아가 종자로서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국립종자원 등록에도 힘쓰고 있다.

국립종자원 종자 출원 과정 중 홍길동감자에 더뎅이병이 생겨 병충해취약성 검사 준비 중이다. 검사를 위해 1년에 두 번 재배한 기록이 필요해 이번 가을부터 내년 봄까지의 농사 과정을 상세히 기록할 예정이다. 한편 국립종자원에 따르면 김재수 씨의 홍길동감자 사례처럼 개별 농가에서 증식한 종자는 출원 신청만 한 해 평균 70건이고 그 중 약 34%가 종자 등록이 된다.

"홍길동감자를 우연히 만나 10년 넘게 공부하면서 종자를 보존해왔어요. 저에게 홍길동감자는 선물과 같은데, 이런 감자도 있다고 더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어요. 맛, 병해충, 외관 등 종자로서 가치를 인정받기까지 여러 과정이 있어요. 전문성이 필요한 실험에 금전적으로, 시간상으로 많은 품이 들지만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해보고 싶어요."

홍길동감자는 지난 7월 13일에 열린 안내면 옥수수감자축제에서 많은 이의 입을 즐겁게 했다. 약 7천 명의 방문객이 다녀간 축제는 옥수수와 감자 맛을 보기 위한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김재수 씨는 가족과 함께 모든 이가 홍길동감자를 맛볼 수 있도록 하루에 몇 번이고 감자를 찌고 나르느라 정신없었지만 즐거웠다고.

"많은 분께 감자 맛을 알려서 좋았어요. 농사하면서 맛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부분에서 어떤 곳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정성 들인 만큼 맛으로 돌아오니까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홍길동감자의 맛을 더 많은 분께 알리고 싶어요."

월간옥이네 통권 86호(2024년 8월호)
글 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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