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 민원 넣어주세요" 오영철 소장이 포체투지 나선 이유

김준하 2024. 8. 2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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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인터뷰] 오영철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김준하, 김현진 기자]

 오영철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포체투지하며 시민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 김현진
"시민 여러분, 항의해주십시오! 서울시에 민원을 넣어주십시오!"

오영철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엎드려 시민들에게 외친 말이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가 23일 서울시 지하철 7호선 열차에서 '포체투지'를 진행했다. 오 소장을 비롯한 전장연 활동가들은 열차에 올라 시민들에게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를 열어달라"라고 호소했다.
포체투지(匍體投地)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전장연이 벌이는 시민불복종 운동이다. 불교에서 두 팔꿈치, 두 무릎, 이마를 땅에 대고 절하는 것을 '오체투지(五體投地)'라고 한다. 포체투지는 오체투지를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 기어가면서 하는 저항 행동이다. '기어가다'라는 뜻의 '匍(포)' 자를 담은 것이다.
전장연은 6월 3일부터 평일 오전에 지하철에서 포체투지를 이어가고 있다. 포체투지는 24일 현재까지 58일 동안 이어지고 있다. 다 합쳐 100일 동안 포체투지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장연은 밝혔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없애고, 탈시설 정책 폐지하는 오세훈 시장
 오영철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포체투지하며 시민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 김준하
열차에 올라 포체투지를 한 오영철 소장은 "서울시는 세계 최초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도입했지만, 세계 최초로 폐지하기도 했다"고 말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직장에서 누군가가 아무 이유 없이 해고 당하면 그걸 정당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면서 "오세훈 시장은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박탈해버렸다"고 주장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기능·실적 중심의 장애인 일자리에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DP)'의 권고에 따라 '장애인 권리생산'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일자리 사업이다. 서울시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이 사업을 진행했지만, 2024년이 되자마자 폐지했다. 사업에 참여한 중증장애인 노동자 400명은 모조리 해고됐다.
 지하철 바닥에 붙여진 전장연 스티커. '지하철 엘리베이터 100% 설치 약속 2차례 미이행 사과하라', '오세훈 서울시장 UN장애인권리협약 위반 멈춰라!'
ⓒ 김현진
서울시가 '약자와의 동행'을 하고 있다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발언도 있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2년 취임 이후 "모든 정책이 '약자와의 동행'을 최우선 가치로 두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 소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약자와의 동행'은 완전한 위선"이라면서 "장애인이 예산을 받아누릴 권리를 무시하는 오세훈 시장에게 항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열차를 탄 시민들에게 민원을 넣어 서울시에 이 상황에 대해 항의해달라고 호소했다.
탈시설 조례를 폐지하려는 서울시를 비판하기도 했다. 2022년 7월부터 서울시에서는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생활하도록 하는 '탈시설 조례'를 시행해왔다. 하지만, 지난 6월 25일 탈시설 조례는 서울시의회에서 폐지됐다. 오 소장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시설에 갇혀 돌봄을 당하는 삶에는 자유도, 꿈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교통공사 철도 보안관이 전장연 활동가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리고 있다.
ⓒ 김현진
 백인혁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정책실장은 서울교통공사로부터 고발당했다. "열차 내 바닥에 불법 부착물을 붙였기 때문"이었다.
ⓒ 김준하
오 소장이 발언을 이어가던 도중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철도 안전법 47, 48, 49조의 조항을 근거로 지시를 내린다"라며 "불법행위 하지 말고 열차에서 하차해라"라고 명령했다. "퇴거 요청에 응하지 않을 시 강제 퇴거 조치 가능하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오 소장과 전장연 활동가들은 다음 역에서 내려야 했다. 지하철 바닥에 '오세훈 서울시장, UN장애인권리협약 위반 멈춰라!', '오세훈 서울시장 약자동행은 약자약탈이다' 등의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붙인 백인혁 전장연 활동가는 서울교통공사에 의해 고발당했다.

"포체투지, 썩 내키지 않았지만 연대 위해 결심"

열차에서 포체투지하며 발언할 때 오 소장은 무슨 심정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발언을 듣던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고 한다. 시민들은 무심하게 앉아 있기도 했고, "한번 떠들어봐라"라고 말하는 듯한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 소장은 "그분들도 속으로 '쟤는 도대 체 무슨 얘기를 할까' 궁금해하지 않았겠나"라며 "만약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듣고 서울시에 민원을 넣는다면 정말 의미 있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사실 오 소장이 포체투지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포체투지 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라고 말한 오 소장은 그간 포체투지를 직접 하는 것에 대해 심리적인 부담을 느껴왔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기어가는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압박감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마음을 달리 먹었다. 그는 "동료들이 포체투지하고 있는데 나만 참여하지 않으면 연대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포체투지 하겠다고 했고 그 게 바로 오늘이다"라고 말했다.
 오영철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포체투지를 그리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사람들에게 장애를 드러내는 행위에 대한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 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포체투지를 감수했다고 했다.
ⓒ 김현진
예전에 장애인 시설에서 지낼 때 오 소장은 수동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시설에서 지낼 때엔 그를 억압하는 말들을 수도 없이 들었다. 시설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하면 "어차피 여기서 살다가 죽을 건데 뭘 자꾸 나가려고 하냐"라는 핀잔을 들었고, 조금만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면 "뭣하러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품냐"라는 면박도 있었다. 목표도, 의지도 가지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1990년대 초에야 비로소 시설에서 나와 살 수 있었다. 시설에서 나와 생활하다보니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관점도 달라졌다. 장애인 집회에 나가 적극적으로 시위하기도 하고 오늘처럼 포체투지할 수도 있었다. 오 소장은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조차 벌벌 떨면서 두려워했던 예전 모습에 비하면 얼마나 당당해진 모습인가"라며 "투쟁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있다"라고 밝혔다.

처음 활동할 때 오 소장의 마음가짐과 지금의 마음가짐은 전혀 다르다. 이전에는 "그냥 열심히 투쟁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어떻게 더 잘 투쟁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라며 "그 고민이 없으면 그냥 살아가는 것일 뿐"이라고도 의견을 드러냈다.

이런 고민 때문에 그는 더 다양한 소통의 창구를 활용해 장애인의 목소리를 퍼뜨리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 현재 전장연은 주로 페이스북을 활용해 활동 소식을 알리고 있는데 유튜브 라이브 방송, 인스타그램 스토리 등을 투쟁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의 무한한 공간에서 장애인의 문제를 더 널리 알리고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때 시설에 갇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오영철 소장은 이제 거리에서, 열차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하철에서 포체투지하며 시민들에게 호소하던 그의 목소리는 열차에 쩌렁쩌렁 울렸다. 과거에 남들 앞에서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게 사실인가 싶을 정도였다. 앞으로 오영철 소장을 비롯한 전장연의 투쟁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 알 수 없지만, 그 여정은 현재 진행중이다.

덧붙이는 글 | 현장취재: 김준하, 김현진 오영철 소장 인터뷰: 김현진 기사 정리: 김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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