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열고 사는 옆집... 결국 이렇게 해결했다

전미경 2024. 8. 2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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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넣고 닫힌 문을 다시 열기까지... 더이상 거슬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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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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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meeru322813 on Unsplash
현관문을 열어놓는 옆집 소음으로 관리소에 민원을 넣은 후 옆집 문은 굳게 닫혔다. 옆집 문이 닫힌 후론 사람이 살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사라진 것도 아닐 텐데 빈집처럼 별 기척이 들리지 않는다. 열린 문으로 생활소음이 들려왔을 때를 생각하면 다행이지만 마음까지 닫힌 듯해 썩 좋지는 않다. 늦은 저녁 아주 조금씩 가끔 눈치껏 살짝 열어놓은 문을 볼 때면 괜히 미안했다. 밤 열대야 에어컨 없이 버티려면 현관문을 열어 맞바람이라도 불어야 수월할 텐데. 혼자 있을 땐 열어놔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자칫 감당할 자신이 없을까 망설였다.

소음이 직접적으로 들리기 시작한 이유는 복도 쪽에 있는 작은 방을 사용하면서부터다. 그동안 안방을 사용해 소음에 집중된 적이 없는데 공부방인 작은방을 활용하면서 열린 창문으로 이웃들 소음과 지나가는 모습. 심지어 생활 모습까지 대충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복도를 오가는 노인. 복도 창문에 매달려 밖을 내다보는 노인. 복도를 뛰어다니던 예전의 그 노인은 더 이상 안 보인다. 옆집에 매일 찾아오는 사람은 요양보호사라 하였고 집주인 노인은 몸이 불편한 듯 보조기구를 이용해 걷는다.

옆집 노인이 걸을 때는 보조기구 소리가 딱딱 들려 멀리서도 알 수 있는데 외출을 자주 하는 듯 하루에도 복도를 여러번 오갔다. 그런데 언젠부턴가 복도를 지나는데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조심히 봤는데 아마도 딱딱 소리 내지 않으려 애쓰며 힘 조절 하는 것 같았다. 혹, 소음 민원으로 무더위에 사람을 밖으로 내몬 것은 아닌지 내심 미안해 언제 한번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처음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는 인사를 하지 못했다. 감정의 날을 세우고 소음으로 서먹해진 터라 외면하고 지나쳤다. 그러나 어떡해서든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한 후론 용기내 인사를 했다. 하지만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매번 인사를 했지만 예의 반응이 없었다. 원래 표정이 그런분인가 싶기도 하고, 소음 민원을 넣었으니 반응이 없는 게 당연할 수 있겠다, 생각하니 더 미안했다. 어찌 보면 그들의 유일한 낙일수도 있는 도란도란한 일상을 움츠리게 만들고 세상인심 야박한 현실을 깨닫게 한 장본인이지 않은가.

고민 끝에 건넨 인사에 돌아온 아이스크림 두 개

하루빨리 마음을 전해야 할 텐데, 하면서도 기회를 잡지 못해 생각만 많아지던 어느 날. 환기를 시킬 겸 현관문을 열었는데 복도를 걸어오는 노인과 딱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무슨 용기로 "안녕하세요?"라고 큰소리로 밝게 인사를 했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멋쩍었다. 소음으로 민원을 넣어 문 닫게 하곤 명랑한 인사라니. 현관문을 닫고 돌아서려는데 어느새 다시 나타난 노인이 아이스크림 두 개를 건넸다. 한 개는 정 없다 생각한 거겠지.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데 예의 무표정으로 "살아 있었네요"라고 한마디 한다. 살아있다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살아있다'는 간절한 단어를,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독한 사람이라고 해석한다. 나는.

돌아서 가는 노인의 등 뒤에 대고 " 문 열놓으셔도 됩니다. 그땐 제가 너무 시끄러워서"라고 답했는데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곤 재빨리 집에 들어와 준비해 뒀던 과자를 답례로 전달했다.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노인을 보며 내내 걸렸던 마음이 비로소 풀린 듯 편해졌다. 마음은 있지만 용기 없어 망설이던 나보다 한 발 앞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마음을 먼저 내게 표현해 준 어른이 고마웠다.

그러나 소음을 공식 허락함으로써 어쩌면 나는 거슬렸던 생활 소음을 다시 들어야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일상을 막으며 굳게 닫힌 현관문을 보는 것보단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옆집이 아니어도 생활소음은 여전히 들리고 또 어찌 보면 세상 무서워 문도 못 열어 놓는 사람이 있는데 현관문을 열어놓는다는 건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 같아 오히려 너그럽게 보인다. 그리고 소음에 집중하지 않으면 더이상 소음으로 들리지 않음을 체득했다.

사람마다 고유한 정서가 있듯 열린 현관문은 이 아파트의 고유 정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다. 무더운 여름. 열린 현관문 사이로 흘러나온 풍경이 문득 정겹게 느껴진다. 순간의 착각일지 모른다. 그러나 타인을 알고 이해하게 된다는 건 인간애적인 어떤 힘이 작용하는 것 같다. 분명 상황은 같은데 감정이 달라진다. 정말 마음먹기에 달린 것일까 아님 생각을 바꾸면 달라지는 것일까. 소음이 더 이상 소음으로 들리지 않는 신기한 경험. 거짓말처럼 하나도 안 들린다. 아니 시끄럽지가 않다.

마음이 열린 다음날, 옆집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다. 살아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요양보호사의 모습이 보이고 두런두런 대화 소리가 이어진다. 툭툭 탁탁 소리가 들리지만 신기하게도 예전처럼 거슬리거나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는 이웃의 일상, 사람 살아가는 소리다. 어느 순간 멈추게 될 소리란 걸 생각하면 한없이 밀려오는 서글픔은 무슨 까닭일까. 어쩌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을 경계해야 할지 모른다. 복도마다 활짝 열린 문들을 보면서 문득 살아있음을 느끼는 하루. 옆집 요양보호사가 건넨 커피 향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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