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흰쌀밥? 노화 풀 액셀…천천히 늙으려면 이렇게 먹어라"

서정민 2024. 8. 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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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 식사’ 전도사,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저속노화 식사법’을 출간한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는 “식사법만으로 뇌건강은 물론 천천히 늙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김상선 기자
‘마라탕후루’ 대신 ‘저속노화 식사’. 최근 2030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저속노화 식사’란 정희원(40)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임상조교수가 2023년 X(구 트위터)에 “새해에는 남들보다 뇌 늙는 속도를 1/4로 만드는 식사를 해보자”라는 글을 올린 후 화제가 된 용어다.

100세 시대라지만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9988234(99세까지 팔팔하다가 2~3일만 앓고 죽는다)’다. 식사법만으로 건강하게 심지어 천천히 늙을 수 있다니 귀가 솔깃해진다. 이런 대중의 심리를 반영한 듯 이달 출간한 정 교수의 『저속노화 식사법』(테이스트북스)은 저속노화 식사의 핵심과 실천법을 종합한 완결판답게 8월 첫째 주 예스24 건강·취미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일명 ‘저속노화 쌤’으로 유명한 정희원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 저속노화 식사를 ‘MIND 식사’라고도 하던데 기본 개념은 뭔가요.
A : “Mediterranean-DASH Intervention for Neurodegenerative Delay의 머리글자 조합이에요.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장수식으로 유명한 지중해식(Mediterranean) 식사와 고혈압을 예방하는 대시(DASH) 식사의 장점들만 뽑아 정리한 거죠.”

Q : 핵심 내용은 아주 단순합니다.
A : “초가공식품, 단순당, 정제곡물, 붉은 고기, 동물성 단백질을 줄이고 통곡물, 콩류, 푸른잎채소를 충분히 먹자. ‘이것만 먹어라’ 같은 엄격한 규칙이나 비싼 식재료도 없어요. 울타리가 넓어서 기본 원칙만 지키면 한식으로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죠.”
노화속도가 4분의 1로 느리게 진행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저속노화 식사는 특히 인지기능 강화 및 치매 위험 감소에 초점을 둔 식단이다. 튀김류·버터·마가린·치즈·페이스트리와 단 후식 등의 초가공식품과 단순당, 정제곡물, 붉은 고기 섭취 제한을 권하는데 모두 인슐린 분비를 유발하고 노화의 가속페달인 엠토르(mTOR)를 활성화하는 음식들이다. 반면 섬유질이 많은 음식과 당지수가 낮은 베리류를 많이 먹도록 권한다. 혈당 변동성을 최소화해서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줄이고, 두뇌의 인슐린 저항성 발생과 알츠하이머 병변 축적 그리고 인지기능 저하를 예방하는 효과 때문이다. 한 연구에선 약 5년 동안 저속노화 식사를 실천한 사람들이 최악의 식습관을 유지한 사람들보다 노화속도가 1/4로 느리게 진행됐다고 보고됐다.

Q : 몸이 바로 느끼는 변화가 있나요.
A : “2023년 처음 SNS에 올렸을 때는 ‘연구에 미친 나머지 미쳤다’는 악플이 많았죠.(웃음) 그러다 따라하는 분들이 생겼는데 ‘선순환이 생겼다’는 게 공통 의견이었어요. 다리 부종이 사라지고, 코골이가 없어지고, 수면의 질이 좋아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력이 높아지고, 건망증이 개선되고, 만성질환으로 먹는 약도 줄고. 뇌의 노화와 몸의 노화는 같이 가니까요.”

Q : ‘밥’만 잘 먹어도 실천이 가능하다고요.
A : “매일 흰쌀밥을 먹는 것은 가속노화 쪽으로 풀 액셀을 밟는 것과 같아요. 소화에 무리가 없는 수준에서 백미에 렌틸콩·귀리·현미 등 다양한 잡곡을 조금씩 더해 먹으면 컨디션이 좋아지는 걸 느낄 거예요.”
정 교수는 고교시절부터 20년간 ‘식단 유랑’을 했다. 재수시절 몸무게가 90㎏까지 나갔고 매일 헬스장에서 6㎞을 뛰고 계단 오르기를 하며 2개월간 드레싱 없이 양상추·오이·당근·토마토를 주식으로 먹고 10㎏를 뺐다. 대학 학부시절에는 탄수화물·가공식품·맥주 등 몸에 나쁜 음식들을 닥치는대로 먹으며 공부하다 시험이 끝나면 단기간 다이어트로 살 빼기를 반복했다. 30대 초중반 박사과정 때는 밤 9시 퇴근길에 떡볶이·순대·맥주를 사다가 급히 먹고 그대로 쓰러져 자는 날이 많았다. 박사과정 마지막해 체중은 첫해보다 10㎏ 증가, 체지방률도 20%를 돌파했다. 서른 다섯에는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시간제한 다이어트와 케톤식(저탄고지) 식사를 더해 몇 달만에 10㎏을 감량했지만 일상에서 케톤식 식사를 유지하는 건 어려웠다. 그리고 만난 게 저속노화 식사다.

Q : 다양한 다이어트와 식사법을 직접 경험한 후 정착한 게 저속노화 식사네요.
A : “이후 제 삶이 정말 달라졌어요. 사람들과 즐길 때는 즐기고, 절제할 때는 절제할 수 있게 됐죠. 무엇보다 좋은 건 뭘 조금 더 먹으면 좋은지, 뭘 덜 먹으면 좋은지 스스로 점검할 기준이 생겼다는 거예요. 당연히 몸의 컨디션도 좋아졌죠. 이 놀라운 경험을 나만 하기 아까워 SNS 포스팅을 했죠.”

Q : 특히 렌틸콩 섭취를 강조하던데.
A : “5대 영양소가 모두 충분히 들어간 ‘완전식품’이고 개인 취향이기도 해요. 10여 년 전부터 여러 종류의 콩을 먹어봤어요. 박사과정 때는 경제적으로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어서 주식으로 렌틸콩만 먹은 적도 있어요. 통조림으로 먹다가 어느 순간 그것도 비싸서 렌틸콩을 삶아 그 위에 카레가루를 부어 먹기도 했죠. 그렇게 오랜 기간 먹었을 때 제일 몸의 컨디션이 좋았던 게 렌틸콩이었어요. 물론 다른 콩들을 먹어도 돼요. 핵심은 주 단백질 급원으로 콩이 좋다는 것. 값도 싸고 양질의 영양소들이 있고 지구도 구할 수 있는 식재료니까.”

Q : ‘지구를 구하는 식단’이라면.
A : “저속노화 식사에 꽂힌 또 다른 이유죠. 올 여름이 아주 더운데, 아마도 앞으로의 여름보다는 시원할 거예요. 가공을 많이 하는 초가공식품이나 투뿔등심처럼 비싼 식재료들은 이동과 생산에서 탄소가 많이 발생하죠. 일본의 오키나와 등 장수지역으로 유명한 곳의 공통점은 탄소발자국이 적고 인공적이지 않은 로컬 식재료들을 주로 먹는다는 거예요.”

Q : 기후위기 속도도 느리게 가겠군요.
A : “제 차가 현대 전기차 아이오닉 출고 1호차인데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은 오래전부터 고민해온 문제에요. 어려서 취미로 지구과학을 공부했는데 고등학생 때는 지구와 우주를 걱정하다 밤을 새운 적도 많아요.(웃음).”
로컬 식재료 활용은 지구도 구하는 식사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Q : 방송이나 책에선 기후위기 언급을 안 하시던데요.
A : “몇 년 전 직함 높은 386세대 선배님과 대화하다 크게 실망한 적이 있어요. ‘요즘 무슨 생각을 하나?’ 묻길래 ‘올해부터 엘니뇨가 시작이라니 여름이 계속 더워지겠죠. 정말 지구의 미래가 걱정돼서 잠이 안 오네요’ 했더니 정신 나간 놈 보듯(웃음) ‘그게 왜 문제지?’ 하더군요. 여전히 기득권을 가진 분들은 기후위기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고, 젊은 층 역시 소수를 제외하곤 무심하죠. 제가 ‘녹색 식단’을 주장하면 ‘의사가 무슨 오지랖이야, 너나 해라’ 이런 댓글들이 달리겠죠. 통계를 보면 현재 한국인은 밥보다 고기를 더 좋아하는데 이런 식습관은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지정학적 변수에 인구·산업구조 변화까지 더해지면 한국의 식량자급은 더 어려워질 테고 결국 로컬과 기후위기 극복이 답인데 다들 너무 무신경하죠.”

Q : ‘저속노화 십계명’ 중 10번째 ‘중용 지키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A : “건강하게 잘 늙기 위해 어느 정도 피할 것들을 정리한 건데 교조적으로 얽매이진 말자는 겁니다. ‘치팅 데이’처럼 일탈을 해도 좋은 게 저속노화 식사의 장점이죠.”

Q : 사실 직장인에게 고깃집 모임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A : “‘현재 영국인의 하루 섭취 총 칼로리 중 60%는 초가공식품’이라는 통계가 있어요. 한국도 비슷하겠죠. 2016~2019년 한 연구를 보면 3년 간 주문 양념통닭의 양념이 더 달고 더 짜졌다고 해요. ‘비만촉진환경’ ‘당뇨를 만드는 환경’ ‘가속노화를 만드는 환경’이죠. 도파민을 좇는 식품회사들의 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하면 좋겠어요. 저도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고기도 먹어요.(웃음) 대신 밥은 적게, 채소는 많이 먹으려 노력하죠. 혼자 외식을 할 때는 올리브오일을 갖고 다니다 반찬에 듬뿍 뿌려먹죠. 집에 돌아와선 고강도 유산소 운동을 하고, 채소 위주 식사를 하고. 식습관 실천은 장기전이라 ‘저속노화 십계명’ 같은 확실한 닻을 두고 언제든 다시 돌아오는 게 중요해요.”
정 교수는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도 이야기했다. “마라톤도, 글쓰기도 노력하는 과정에서 도파민을 얻는 건데 우리는 늘 과정보다 빠른 결과만을 원하죠. 돈으로 살 수 있는 영양제나 약을 더 믿고. 근력을 위해서는 근육 운동을, 뇌 기능을 좋게 만들려면 꾸준히 뇌를 움직여야 해요. 이런 노력들이 축적돼서 노화 속도계를 천천히 가게 하고 그동안 생을 농밀하게 즐기는 거죠.”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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