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소문난 마담뚜 200여 명... '미스터 뚜'도 여럿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기자]
▲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1983년 6월 30일 밤부터 11월 14일 새벽까지 138일 453시간 45분에 걸쳐 생방송한 기록물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
ⓒ KBS |
무엇보다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사건은 이해 6월 30일에 첫 전파를 탄 KBS 1TV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특집 방송이었다. 이해 11월 14일까지 방송되었던 이 프로그램은 천만 이산가족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분단의 슬픔을 경험하게 했고, 잊고 지내던 통일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땡전뉴스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가 언론의 긍정적 역할을 잠시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남북 화해와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이해 9월 1일 뉴욕에서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 영공에서 미사일 공격을 받고 폭파되어 탑승객 269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어서 10월 9일에는 동남아시아 순방에 나선 전두환 일행이 첫 방문지 미얀마의 독립운동가 아웅산의 묘소를 참배하는 도중 폭탄 테러를 당했다. 부총리 등 수행원 17명이 사망하는 참사였다. 이 사건 후 세계 60여 개 국가가 범행 책임을 물어 북한과 단교를 선언하였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이루어진 것은 이런 비극적 사건으로 반공 여론이 들끓고 있던 이해 11월이었다. 마침 12월 4일 새벽에는 부산 다대포로 침투하던 북한의 무장간첩이 발각되어, 간첩선은 격침되고 2명의 간첩이 생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남북 화해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심은 높아져 갔다.
국내 언론이 이런 사건과 사고 소식에 매몰되어 있을 때 서구인들은 21세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의 시작과 함께 많은 지성인들이 21세기에 일류가 경험할 새로운 문명을 예측하는 데 몰두하였고, 서구 세계는 21세기를 준비하는 교육개혁과 사회개혁 어젠다를 마련하는 데 분주하였다.
이런 흐름을 상징하는 단어가 '제3의 물결'이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1980년에 발간한 저서의 제목이기도 한 '제3의 물결'이라는 용어는 막연하지만 '정보 기술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를 의미하면서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세계인들이 '제3의 물결'을 둘러싼 논쟁을 벌이던 1983년, 우리나라는 '제3의 영상시대'가 주는 단맛과 쓴맛을 맞고 있었다. 즉 영상 산업이 제1의 시대 영화, 제2의 시대 TV를 거쳐, 제3의 시대 '비디오 전성시대'를 맞고 있었다.(<경향신문> 1983년 4월 9일 논단)
본래의 모습 상실하고 일탈한 다방
국산 VTR이 일반 가정에 널리 보급되고, 비디오 제작 및 판매 업체가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기업이나 제품 광고는 비디오로 제작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TV나 영화가 지닌 획일성이나 시간적 공간적 제한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상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장점을 지닌 것이 비디오였다.
문제는 비디오의 오용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디오와 다방 문화의 결합이었다. 1983년 신문의 사회면과 TV 뉴스 후반부를 가장 많이 장식한 뉴스가 심야 시간을 이용해 음란 비디오를 틀어주다 적발된 심야 다방 단속 뉴스였다. 다방은 커피 마시는 장소, 사람 만나는 장소로서의 이미지를 버리고 퇴폐와 탈선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고, 음란 비디오는 그런 필요성을 충족하는 적절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커피메이커로 내린 원두커피, 드리퍼나 사이펀으로 내린 고급 커피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나 경양식집을 찾기 시작하였다. 이 즈음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 가정용 원두커피 조리 도구들이었다. 원두를 사다, 갈아서, 끓여, 커피 고유의 풍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동아일보> 1983년 10월 22일)
백화점에서는 커피 원두나 레귤러 커피(커피원두가루), 그리고 이들을 끓이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서양인들이 퍼컬레이터라고 부르는 커피포트, 두 개의 유리 용기와 알코올램프로 이루어진 사이펀이 널리 유행하였다. 가장 손쉬운 방식은 깔때기(드리퍼)에 놓인 여과지에 커피 가루를 담고, 끓는 물을 부어서 커피를 내리는 방식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드립커피였다.
커피포트와 드리퍼 방식을 결합한 커피메이커도 수입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사람 중 커피포트를 들고 있으면 미국에서 오는 사람이고, 코끼리 그림이 그려진 전기밥솥을 들고 있으면 일본에서 오는 사람이었다. 다방은 더 이상 제대로 된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찾는 장소는 아니었다.
다방이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고 일탈하는 데는 1970년대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커피자동판매기의 급속한 보급도 크게 작용을 하였다, 다방을 경영하는 최모씨는 커피자동판매기 사업체 대표 문모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문씨가 운영하는 커피자동판매기로 인해 같은 건물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다방에 영업 손실이 발생했으므로 이를 배상하라는 소송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1983년 7월 16일 최씨의 청구를 '근거가 없다'고 기각하였다. 재판부의 기각 이유는 다방 사업과 커피자동판매기 사업을 경쟁업종(경업관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고급 커피를 즐기는 사람도 다방을 외면하고, 인스턴트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손쉽고 저렴한 자동판매기를 이용하는 등 다방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조선일보>, 1983년 7월 17일 자) 심야 시간을 이용한 비디오 상영으로 부정적인 수입을 올리는 다방이 증가하는 배경이었다.
▲ 1983년 3월 19일 자 <경향신문> 기사 "다시 고개드는 '마담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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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시 호텔 커피숍을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며 등장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새로운 직종이 있었다. 바로 '마담뚜'였다. '지하 중매업자'를 표현하는 단어였다. 1976년에 박완서씨가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장편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에 처음 등장한 용어였는데, 이후 언론에서 자주 인용하면서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다.
주로 특수 계층과 부유층 자제를 상대로 중매를 서주고, 상습적으로 거액의 사례금을 받는 여성들이었다. 1980년 말에 사회정화운동 차원에서 대대적인 단속이 이루어졌지만 피해 당사자들이 신분 노출을 꺼려 피해 사실 조사에 협조하지 않아 근절이 어려웠다. 잠시 주춤했던 마담뚜의 활동이 1983년 들어 크게 증가하고 있었다. 신고된 피해 사례가 134건에 이를 정도였다.
결혼 적령기의 자녀를 둔 부모, 자녀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이루고자 하는 부모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막대한 사례금이나 이권을 챙기는 것이 이들 마담뚜의 수법이었다. 철저히 신분을 위장하고 있기 때문에 사기를 당한 것을 인지한 부모가 뒤늦게 빼앗긴 금품을 돌려받고자 하여도 불가능하였다.
당시 서울 시내에 소문난 마담뚜가 200여 명 있었는데 이들 중에는 남자 중매장이인 '미스터 뚜'도 여럿 있었다.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이 호텔 커피숍이었다. 보스 밑에 10~30명의 일꾼을 둔 점조직 형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1983년 당시 활동하던 마담뚜 파벌로는 '민여사파' '불광동아줌마파' '심사장파' '오여사파' '서여사파' '유씨할아버지파' '김여사파' 등이 유명하였다.
이들이 중매 대상 남녀로 수첩에 적어놓은 사람은 미혼 남성의 경우 판사나 검사, 고시 합격자, 재벌집 아들, 의사, 교수, 5급 이상 공무원 등이었고, 여자는 대기업주의 딸, 명문대 출신인 미모의 여성, 여교수, 의사, 약사 등이었다.
1983년 한 해가 저무는 12월 29일 정부는 71개 품목을 생산하는 136개의 독과점 업체를 지정하였다. 커피를 생산하는 동서식품과 미주산업도 포함되었다. 이해부터 동서식품은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안성기를 광고 모델로 내세웠는데, 이는 안성기의 CF모델 첫선이었다. 미주산업은 프랑스에 체류 중이던 유명 배우 윤정희를 초청하여 CF를 찍었다. 이렇게 광고의 시대가 열렸고, 그 주인공은 커피였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 교수)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 푸른역사. 이길상(2023).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역사비평사.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경향신문 1983년 기사 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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