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동해안 화력발전소들... "정부 에너지 정책이 문제"

진재중 2024. 8. 2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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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선로 확보 못 해 발전 중단... 발전업계-주민-환경 복합적 문제 노출

[진재중 기자]

▲ 강릉안인화력발전소 화력발전소에 석탄을 실어나르는 컨베이어벨트
ⓒ 진재중
'분진을 내뿜지 않아서 다행이다, 5조 원 이상이 투자된 사업인데 방치하다니, 도로를 내지 않고 차량을 사놓은 격이네' 등 다양한 말들이 쏟아진다. 올 초까지 하얀 수증기를 내뿜던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굴뚝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다. 강릉 안인화력발전소는 전기를 수송할 망(송전선로)을 확보하지 못해 멈추어 서 있다. 전력 동맥경화에 걸린 것이다.

강릉 안인화력발전소는 2018년부터 5조 6000억 원을 투입해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에 1040MW 급 발전기 2기를 건설했다. 2022년 1호기와 2023년 5월 2호기가 가동을 시작했으나, 송전선로 부족으로 인해 70%만 가동하다가, 지난 3월부터는 1호기와 2호기 모두 전력 생산을 중지한 상태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 지역에는 여러 발전소가 멈춰 있다. 총사업비 4조 9000억 원이 투입된 삼척 맹방지역의 삼척1·2호기, 2조 1000억 원이 들어간 동해시 북평동의 GS동해전력 1·2호기, 2000MW 규모의 한국남부발전 삼척 빛드림본부도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삼척 블루파워화력발전소
ⓒ 진재중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 진재중
발전이 중단된 이유는 송전망 구축이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500KV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는 원래 2021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2025년으로 연기되었고, HVDC(초고압송전선로)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도 2022년 10월에서 2026년 6월로 연기되었다. 현재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가는 송전선은 11.4GW까지만 처리할 수 있으며, 동해안 지역의 발전 용량(원전 8기와 석탄발전 8기 총 16GW)을 초과해 송전선로가 과포화 상태다. 전력시장 운영 규칙상 원전과 재생에너지에 우선적으로 송전 용량이 할당되어 화력발전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간 동해안-수도권, 호남-수도권을 연결하는 송전선로가 부족해 동해안과 호남 지역에서 생산된 풍부한 신재생에너지·원전 발전력을 수도권 소비지로 실어 나를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정부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반도체, 바이오, 데이터센터 등 신규 첨단산업의 대규모 투자를 계획한 만큼 전원과 전력 수요를 연결하는 전력망의 확충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
▲ 송전선로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에서 생산된 전력은 대부분 백두대간의 허리를 지나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 진재중
한전은 2026년 3월까지는 동해안지역 송전선로 구축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선로 길이는 동부(울진-평창) 140㎞, 서부(횡성-가평) 90㎞ 등 총 230㎞다. 건설하는 철탑 수는 총 440기다.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운반하기 위한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는 2009년 주민 반대로 지연되었고, 2023년 초에야 입지 선정을 완료했다. 현재도 산지 전용 허가 등 행정 절차가 진행 중이라 완공 시점은 불확실하다.

한전은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통해 2024년부터 2036년까지 총 56조5000억 원을 투자하고, 송전선로는 1.6배, 변전용량은 1.5배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2023년 32조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이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가는 송전선로는 2010년 계획 이후 15년이 지났지만 공정률은 8%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추진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회기 종료로 지난 국회에서 자동폐기되었으며, 이번 국회에서 다시 발의되었지만 정쟁 속에 실질적인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송전선로 둘러싸고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 송전철탑 산 정상을 가로지르는 송전선로
ⓒ 진재중
송전선로가 지나는 경로에서는 여러 문제점이 발생한다. 산림 훼손과 생태계 파괴가 주요 문제로, 송전선로는 종종 산악지대나 숲을 통과하게 되어 나무를 베거나 땅을 파헤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자연 경관이 훼손될 수 있다. 또한,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있으며, 비록 연구 결과는 일관되지 않지만 장기간의 전자파 노출에 대한 건강 불안이 존재한다. 특히 강원도는 산림이 울창하고 산에 의존해 살아가는 주민들이 많아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송전선로는 전국 각지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강원도 삼척의 신기-가곡면 주민들은 자연환경 파괴를 이유로 반대 시위를 벌였고, 강원도 횡성군은 동해안 신가평 송전선로 경과대역 조정 문제로 시위를, 홍천군은 사업 승인 절차 중단과 사업계획 재논의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으며, 전남 보성어민들은 송전선로가 어민 생존권과 해양 생태계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백지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또한, 충남 금산군의 반대 추진위원들은 입지 선정위원회의 구성 문제와 주민 의견 배제 문제를 지적하며, 구성 및 운영 절차의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 백두대간, 송전선로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이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송전선로가 있어야 한다.
ⓒ 진재중
송전선로 지연 문제는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로 인해 운전 및 유지보수에 참여하는 중소 협력업체와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어 고통을 겪고 있으며, 발전소 가동을 기대하며 상가를 임대 운영하는 소상인들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척 호산에서 숙박업을 운영하는 김아무개(67세)씨는 "발전이 중단되면서 하청업체 직원들이 떠나고, 숙박업에 의존하는 우리는 생계가 어려워졌다"며 발전 중단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강릉 안인화력발전소에서 하청 일을 하던 한 근로자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예고 없이 발전이 중단되면 노동자들이 생계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문 닫은 상가들
ⓒ 진재중
 각종 플래카드가 내걸린 강릉 에코파워 정문 앞
ⓒ 진재중
발전 중단으로 인해 주변지역 지원 사업이 축소되거나 폐지될 가능성이 있다. 올해 강릉의 지역자원시설세는 77억 원에서 17억 원으로 크게 줄어들 예정이며, 맹방과 호산 지역에 화력발전소가 있는 삼척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발전업계도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수년 전부터 업계는 조속한 송전망 구축과 대책 마련을 촉구해왔으나, 여전히 해결책이 없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발전소의 가동률이 최소 60%는 되어야 건설비와 연료비를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발전 중단으로 인해 올해 강릉에코파워는 3000억 원, GS동해전력은 500억 원, 포스코 삼척블루파워는 연간 2600억 원 정도의 적자가 예상된다. 한전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이를 정부의 송전 인프라 계획(전력 수급기본계획) 대비 송전선로 확충의 차질로 인해 발생한 문제로, 정부(산업자원부)와 한전의 책임이라고 지적한다.

"혈세 인식 못 하고 에너지 정책 펴는 정부"
▲ 송전선로 한국 남동발전 삼척빛드림본부 앞 송전선로
ⓒ 진재중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에 위치한 석탄발전소들은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제대로 가동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경북 울진에 신규 대형 원전 3기가 들어선 데다, 폐쇄가 예정되었던 노후 원전 2기의 계속 운전이 예정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전과 신재생에너지가 우선적으로 가동되는데, 원전이 먼저 가동될 경우 인근 지역의 다른 발전소들은 선제적으로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개별 발전소의 가동 여부는 전력 거래시장에서 하루 전 입찰을 통해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발전량을 할당받지 못한 설비, 즉 발전소는 가동을 하더라도 송전을 할 수 없는 구조다. 이로 인해 강원도 동해안의 석탄발전소들은 가동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석탄발전소의 경제성과 환경적 측면에서 모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발전소의 운영이 불확실해지면서 수익성에 타격을 줄 수 있으며, 환경적으로는 석탄발전소의 지속적인 운영이 기후 변화와 관련된 문제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강원특별자치도의 에너지 정책과 발전소 운영 계획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동해안 화력발전소는 가동 여부와 상관없이 문제가 되고 있다. 강릉 안인화력과 삼척맹방 블루파워는 해상공사로 인해 연안 침식과 환경 훼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삼척 맹방해변은 과거 명사십리로 유명했으나, 석탄발전소 건설로 인해 많은 우려가 제기되었다.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는 탄소 배출과 연안 침식을 이유로 공사 중단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해변은 인공구조물로 뒤덮여 본래의 기능을 잃고, 흉물스러운 구조물들만 남아 있다.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인근 하시동·안인 해안사구는 환경부가 멸종 위기종과 희귀 식생대가 있는 생태보전 지구로 지정한 지역이다. 현재 하시동·안인 해안사구는 붕괴 위기에 처해 있으며, 백사장은 사라지고 검은 돌들로 덮여 있다.
▲ 맹방해변 구조물 삼척화력발전소 해상공사로 인한 연안침식을 막기 위한 흉물스런 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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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상공사로 인해서 침식된 안인, 하시동 해안사구
ⓒ 진재중
환경산업연구원 전문위원이었던 황보덕(70세)씨는 발전을 중단한 사유가 발전소에서 내뿜는 대기오염 문제라 생각했는데 송전선로 확보가 되지 않아서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숨이 막힙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이런 예산들이 결국에는 국민의 혈세인데, 혈세로 인식하지 못 하고 에너지 정책을 펴는 정부가 문제입니다" 하고 긴 한숨을 내쉰다.
탄소를 배출하는 공장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기다려온 주민들, 발전소 가동으로 상황이 나아지기를 희망했던 음식점 주인, 자영업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온 근로자들, 그리고 개발로 아름다운 해안을 잃고 상처만 남은 강릉 염전해변과 삼척 맹방해변. 이들은 한 달째 이어지는 열대야 속에서 멈춘 발전소를 바라보며 가슴이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거미줄처럼 늘어선 송전선로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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