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해지기, 더 잘 취약해지기' 무용수가 된 변호사 김원영

유지영 2024. 8. 24. 11: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새 책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 몸을 위한 변론> 쓴 김원영 작가

[유지영 기자]

 김원영 작가가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 2023년.
ⓒ 옥상훈 작가/ KIADA 2023
"휠체어에서 내려와 자유롭게 움직이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휠체어에 두꺼운 책을 얹고, 빳빳한 바지를 늘어트려 '다리를 조각해' 큰 키를 만드는 일로 '자부심'을 느꼈던 소년은 이제 휠체어 없이 무대에 선다.

"불거지지 말 것. 기어다니지 말 것. (중략) 가슴이 나오지 않도록 하려면, 바닥을 기지 않고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호흡을 빼고 횡격막을 복근 쪽으로 잡아당겨 최대한 가슴을 안으로 붙잡기. 엉덩이를 한 점에서 떼고 다른 점으로 옮기는 거리를 최소화하기."(27쪽)

기어다니는 몸을 쉽게 보여주지 않던 시절을 지나 그는 무대에서 기고 구르고 춤을 춘다.

"바닥에서 움직이는 것만큼 제가 잘하는 일도 별로 없거든요."

장애와 매력을 탐구한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2018)을 쓴 김원영 작가가 지난 7월 무용수가 되어 새 책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문학동네)을 들고 돌아왔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쓴 전작과는 달리 새 책은 그가 자기 몸의 여러 가능성을 탐구하며 여러 차례 무대에 공연을 올린 무용수로서 썼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신간 단독 사인회를 진행했을 정도로 독자들에게도 그의 새 책은 큰 관심을 모았다.

김 작가는 지난 7월부터 서울 서대문구 소재 서울무용센터에 올해 하반기 입주 작가로 머물고 있다. 김 작가는 "이런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장애인 창작자 입주는 처음인 걸로 알고 있다"라면서 겸연쩍게 웃었다. 진부하지 않았다. 휠체어 접근성 문제로 공연 연습을 위해 대관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손에 꼽히기에 이곳에서의 활동은 그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를 지난 19일 서울무용센터의 공유주방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끼니를 인터뷰가 진행된 이곳 공유 주방에서 해결한다.

안전함을 뒤로 하고
 새 책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문학동네)
ⓒ 옥상훈 작가/ KIADA 2023
책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은 첫 장에서 그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무용원 대학원 과정에 지원하고 면접을 치르면서 마주친 일로 시작된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46명의 지원자 중 그 혼자였다. 그는 자신과는 사뭇 다른 무용원에 온 지원자의 몸을 본다.

"휠체어에서 내려온다는 건 굉장히 취약해지는 경험이긴 해요. 무용하는 비장애인 분들 사이에서 내려온다는 게 저에게는 쉽지 않았어요."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변호사였지만 연극을 좋아해서 공연에 출연하는 것으로 소개"됐지만, 이제는 변호사 일도 하지 않는다.

"이제는 어디 가서도 변호사라 소개하지 않아요. 공연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됐죠. 실제로 삶의 영역도 많이 넘어갔어요. 만나는 사람도 이전에는 장애인 정책이나 입법 등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면, 지금은 연극이나 무용하는 분들과 만나게 됐죠. 그래도 올해 들어서 간신히 제가 주로 활동하는 영역에서 무용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덜 민망해졌어요. 여전히 민망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공연하는 사람, 무용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요."

그는 왜 안정적이던 변호사 생활을 뒤로 하고 무용의 길로 들어선 걸까?

"어릴 땐 기어다니는 일이 터부시됐기 때문에 하지 못했고, 기어다닐 수밖에 없는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고 접근성이 있는 공간을 찾아다니면서 살았죠. 그런데 그것이 저의 몸의 가동 범위를 제약하는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사실 언어와 시스템과 법률가로서 살던 삶에서 무용수가 되는 삶은 제가 바닥으로 내려온 것과 굉장히 큰 관련이 있어요."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닥으로 내려오는 일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어요. 오히려 바닥으로 내려왔을 때 제가 가진 힘을 알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점점 제가 갖고 있는 힘을 인지하면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고 이제는 많은 공연을 바닥에서 하고 있죠."

그는 최근 일본에서 열린 '댄스 캠프'라는 행사에 초청돼 장애인 참가자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제가 행사에서 그랬거든요. 저는 옛날에는 휠체어에서 내려오는 게 되게 창피했지만 지금 내려올 수 있게 됐고, 한 번 내려와 보니까 너무 자유롭다, 그리고 우리 장애인 참가자들은 다들 어렸을 때 바닥에서 누구보다 오래 생활했기 때문에 다 바닥의 전문가 아니냐고(웃음). 이런 '드립'을 치면서 바닥에 내려오니까 다들 바닥으로 내려왔어요. 그건 어떻게 보면 (비장애인이 아닌) 제가 좀 더 만들어줄 수 있는 분위기니까요.

다들 바닥에 내려와서 같이 구르는 일을 했는데 여러 복합 장애를 가진 어떤 분이 점점 빠져들어서 나중에는 사람들을 이끌고 굉장한 힘을 보여주셨거든요. (사회에서는) 그분을 무능력한 존재로 볼 수도 있지만, 그분이 가진 엄청난 에너지나 표현력을 그 기회에 발견할 수 있는 거죠. 저는 그런 것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는 것 같아요. 개개인이 가진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요. 힘이 모든 능력의 전제가 되고 접근 가능한 방식으로 열린 세계가 늘어난다면 얼마나 다양한 능력이 출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있죠."
 김원영 작가의 공연 사진. 2023년.
ⓒ 옥상훈 작가/ KIADA 2023
 무대에서 공연을 진행하는 김원영 작가. 2023년.
ⓒ 옥상훈 작가/ KIADA 2023
그는 새 책을 통해 '능력'이 아닌 '힘'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이전 시대를 살았던 이사도라 덩컨, 최승희 같은 무용수를 조명했다.

"장애인 연극에서 장애를 가진 배우가 몸 자체로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만났을 때, 이것이 주는 물리적 힘 같은 걸 좋아했어요. 일상에서는 이상하고 비효율적이고 기능적이지 않다는 프레임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무대에 올라가면 그 모든 것들이 완전 다른 맥락으로 이해돼요. 그 가운데 배우의 몸이 관객들과 직면하는 그 순간이 좋더라고요. 그건 어떻게 보면 춤이고 현대 무용적인 공연이지만 이전에는 저건 춤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현대 무용은 뭐가 연극인지 뭐가 춤인지 장르가 명확하게 갈라지지 않는 게 많아서 구별이 불분명한데요. 책에서도 장애가 있고 뒤틀리고 비정상적이고 기이하다고 여겨지는 몸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신체를 더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타인들 사이에서도 긍정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무용이라는 예술의 영역을 소재로 삼아 다루었어요. 그리고 제가 했던 작업도 춤으로 불릴 수 있다는 걸 알았죠.

골절 위험이 높은 장애를 가져서 어렸을 때도 운동을 본격적으로 할 수 없었고 다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몸을 쓸 수 있던 기회가 없었으니까 내 몸을 어디까지 쓸 수 있을지를 몰랐어요. 글을 쓰고 말하는 게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중에 하나지만, 글은 공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항상 몸을 쓰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어요."

무대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김원영 작가의 책은 늘 냉혹할 정도의 자기 성찰 과정을 마주하고, 그곳에서 생긴 의문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랬다. 서울무용센터 최초의 장애인 입주 작가가 된 것에 대해서도 "내 작업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무용계가 장애인에게도 열리고 있는 것이고,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지원자가 있으니 뽑아준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제가 책을 쓸 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투쟁이 한창 진행됐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매일 기었어요. 저에게 바닥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은 아주 취약해지는 것을 감수하고 해낸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극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충동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 순간 박경석이 지하철 한가운데서 바닥을 기어가는 거죠. 순간 저의 바닥을 기는 행위가 너무 하찮은 거예요.

관객들은 기꺼이 티켓을 사서 '그래, 장애인 김원영이 출연하는 공연에서 네가 뭘 하는지 내가 볼 거'라는 열린 마음으로 오잖아요. 물론 무대에서 기는 일이 제게 힘든 일은 맞아요. 그런데 출근길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는 장애인들이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이걸 쓰는 것이 민망하고 부끄러웠어요."

그는 여러 권의 책에서 "장애가 있는 청소년 시절에 한국의 장애인 운동에 영향을 받았다"라고 고백한다.

"장애인 운동에 영향을 받고 사회복지사나 개개인의 후원 등의 지원과 돌봄을 통해서 대학에 가고 그 대학을 졸업한 시기까지를 다룬 책이 <희망 대신 욕망>(2010)이거든요. 그리고 어떤 사회적인 연대나 협력이나 투쟁의 결과가 있어 시골에서 태어난 장애를 가진 소년이 교육을 받고 사회적으로 뭔가를 발언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걸 이야기하면서, 그러면 이제는 뭘 할 것인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2018)에서는 인간이 다 존엄해도, 나라는 존재가 아름답지 않으면, 즉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들에게 친구나 연인이나 가족이 되고 싶은 존재가 아니라면 아무리 어떤 권리가 있어도 무슨 소용인가, 라는 문제를 보았고요.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의 몸을 싫어한다면 그 어떤 권리가 있어도 무슨 소용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죠.

아름다움 역시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죠. 그러나 그런 것들이 배제된 상태에서 정말 몸 그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혹은 저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거죠.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사라지고, 소수자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 의식이 사라진 상태에서도 내가 뇌 병변 장애가 있든 발달 장애가 있든 어떤 장애가 있든 그 사람이 그 사람이기 때문에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고, 사회적으로 그 사람을 존중하는 그런 사고 실험 속에서 저도 그런 존재가 되면 좋겠고, 스스로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전에는 실제로 현실에서 그런 순간을 목격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연습하면서, 그리고 실제 공연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 이론적 생각을 다 벗어버리게 만드는 순간이 발생해요. 정말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어떤 존재가 무대에 있는 순간을 발견해요.

재작년 워크숍에서 비장애인 참가자가 (장애인인) 강보람 배우처럼 걸었거든요. 그 참가자가 천천히 움직이면서 강보람 배우의 대사를 했어요. '나는 지금 비틀거리는 게 아니고 나만의 방식으로 걷고 있는 거야'라고. 그 말을 하는 순간 두 사람이 정말 겹쳐지는 순간, 참가자도 아니고 강보람 배우도 아닌 어떤 새로운 존재가 만들어지는 만남이 일어났거든요. 사람들이 주의 깊게 누군가를 볼 준비가 돼 있고, 서로를 존중할 준비가 돼 있는 시공간 안에서는 일상에서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이 선명하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사람의 속도나 형태와 무관하게 선명해지면 형태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 같은 순간. 저는 무대에서 그런 걸 아직 발견하고 있어요."

그는 이 말을 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올해 그는 두 차례의 공연을 예정에 두고 있다. 11월에는 서울무용센터에서 퇴소 전 입주 작가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공연을, 12월에도 한 차례 공연을 연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