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케냐에서 마사이족 아이들을 만나고 깨달았다

유영숙 2024. 8. 24. 11: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불평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유영숙 기자]

8월 11일부터 17일까지 아프리카 케냐 오실리기 마을에 다녀왔다. 오실리기 마을은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2~3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대부분 고산 지대로 마사이족이 흩어져 살고 있다.

에미레이트 항공으로 두바이를 경유하여 케냐 나이로비까지 가는 데 19시간 35분이 걸렸다. 밤 11시 55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9시간 30분 후에 두바이 공항에 도착하였다. 두바이에서 5시간 이상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바꿔 타고 케냐 나이로비까지 가는 데 5시간이 또 걸려서 실제로 숙소에 도착하기까지는 만 하루가 걸렸다. 정말 긴 여정이었다.

이번 여행은 관광이 아닌 월드비전과 함께한 구호 활동이었다. 마사이족 소년, 소녀 가장을 만나서 촬영하고 후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교회 목사님과 성도님들, 월드비전 직원, 방송국 감독과 촬영 기사 등 11명이 함께 갔다. 가기 전에 황열병 예방 주사와 말라리아 약 복용 등 몇 가지 준비사항을 마쳤다.

한국보다 더 시원한 아프리카 케냐

두바이 공항에서 비행기로 다섯 시간을 더 가서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다. 나이로비 공항은 두바이 공항에 비해 정말 협소하였다. 입국 심사도 어려워 열 손가락 지문을 다 찍고 한 시간이 넘게 걸려 통과했다. 공항 밖으로 나가자 참 신기했다. 더울 거로 생각했던 아프리카가 한국보다 더 시원했다. 구호 활동으로 왔는데 꼭 케냐로 피서온 기분이었다.

낮에는 더웠지만, 아침과 저녁은 15도 정도까지 내려가서 시원했다. 우리나라 가을 날씨다. 케냐는 남반구로 6~8월이 건기로 겨울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케냐는 평균 해발 1700미터 고산 지대이다. 숙소는 빌라형 호텔인데 에어컨도 없었고 냉장고도 없었다. 전기가 부족해서 실내도 밝지 않았다. 대신 침대에 모기장이 있었다. 케냐에 있는 동안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 케냐 나이로비의 초원과 숙소 모습 케냐가 건기라서 넓은 초원에 초록색 풀보다는 가시나무와 누런 풀들이 많았다. 숙소에 모기장이 쳐저 있는 것도 인상깊었다.
ⓒ 유영숙
숙소에 에어컨이 없어서 잘 때 더울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추워서 자다가 일어나 양말을 신고 긴팔 옷을 입고 다시 잠들었다. 다들 아프리카에 간다고 하니 더워서 고생하겠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이렇게 시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방송으로 보았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며

도착 다음 날부터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은 오실리기의 마사이족 아이 두 명과 진행될 예정이다. 오늘 목사님께서 만날 아이는 12살 남자아이 캐더리안으로 부모가 없고 앞이 안 보이는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즉 소년 가장이다. 흙먼지가 뽀얗게 날리는 산길을 따라 1시간 정도 들어가니 집이 보였다.
▲ 소년이 사는 집 마을 사람들이 내어준 집으로 쇠똥을 반죽해서 만든 집으로 안이 컴컴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 유영숙
이곳은 마사이 마을로 10여 가구가 사는 동네라고 한다. 사는 집은 너무 열악했는데 쇠똥을 짓이겨 만든 조그만 흙집에 살고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마을 사람들이 살라고 내어준 곳이라고 한다.
물론 전기도 수도도 없고 겨우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가 좁고 꺾여있어서 어두워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들어가 사는 곳을 볼 수 있었다. 가운데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 수 있는 화덕 같은 것이 있었는데 가끔 음식을 만들어 먹는지 천장이 까맣게 그을렸다.
▲ 나무를 잘라서 숯을 만드는 아프리카 소년 무딘 칼로 마른 나무를 잘라서 숯을 만들어 팔면 삼천 원 정도의 돈을 버는데 그걸로 세 끼를 먹는다고 한다.
ⓒ 유영숙
12살 아이가 무딘 칼로 마른 나무를 잘라서 염소 똥으로 불을 피워 숯을 만들어 팔면 삼천 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나무가 말라서인지 힘껏 내려쳐도 잘리지 않아서 같은 곳을 쉰 번 정도 내리쳐야 겨우 잘라졌다. 목사님과 장로님께서 직접 잘라보았는데 잠깐 사이에 손에 물집이 맺혔다. 신발도 안 신고 맨발로 다니며 나무를 자르는 12살 소년 캐더리안을 보며 마음이 아려왔다.
숯을 만들어 먼 길을 걸어 나가서 숯을 판 돈으로 세 끼 정도 먹을 것을 살 수 있는데 다 먹지 않고 아껴두고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고 한다. 숯이 팔리면 삼 일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구할 수 있지만, 숯이 안 팔리면 굶거나 이웃에게 얻어먹을 수밖에 없다. 이웃에 있는 염소나 소를 돌보아주고 염소젖도 얻어 온다고 한다.
▲ 음식 만드는 마사이 여인들 우리가 준비해 간 감자 등 채소와 소고기를 볶아서 볶음밥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서 모인 사람들이 한 그릇씩 나눠 먹었다.
ⓒ 유영숙
정말 TV에서 보았던 그 모습을 직접 눈앞에서 보니 마음이 아려왔다. 먹고사는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숯을 만들어 팔면서 가장 노릇을 하느라 학교에 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고 한다. 캐더리안이 가장 힘든 것이 배고픔이라고 한다. 오늘은 우리가 준비해간 음식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캐더리안은 학교에 가서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이번 우리 교회 선교 후원으로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받아서 숯을 만들어 팔지 않아도 먹을 것이 해결되고 학교에도 가서 선생님 꿈도 꼭 이루길 기대해 본다.

다음 날은 여덟 살 소녀 가장 엔카코를 만나는 날이다. 엄마는 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고, 쌍둥이 남동생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한다. 엔카코가 이웃집 염소를 돌봐주고 염소젖과 음식을 얻어와서 먹는다고 했다.
▲ 마사이 소녀가 물 긷는 웅덩이 개구리밥 같은 물풀을 밀어내고 물을 떠서 집까지 힘들게 가져가서 먹는다고 한다.
ⓒ 유영숙
하루에 두 번씩 5㎞ 이상 떨어져 있는 물웅덩이에 가서 물을 길어오면 하루가 다 간다. 물 길어오는 곳이 산속 계곡이라 물통을 들고 산기슭을 거슬러 올라가야 해서 정말 힘들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곳은 가뭄에도 늘 물이 있다고 한다. 물웅덩이에는 개구리밥 같은 녹색 풀이 덮여 있어서 풀을 걷어내며 물을 물통에 담았다.
우리도 물을 떠보았는데 물에서 냄새도 고약하게 났는데 그 물을 그냥 먹는다고 했다. 건기다 보니 계곡이 모두 말라서 물을 뜰 곳이 몇 군데 없었다. 사람도 먹고 동물도 함께 먹을 수밖에 없다.
▲ 물통 운반하는 당나귀와 사람들 당나귀가 있는 집은 당나귀에 실어 물통을 운반하지만, 당나귀가 없는 집은 물통을 들고 나른다.
ⓒ 유영숙
당나귀가 있는 집은 당나귀를 데리고 와서 물도 먹이고 물통에 물을 떠서 당나귀에 싣고 가는데, 엔카코는 물통을 굴려서 언덕을 올라간다고 한다. 오늘은 우리가 물을 떠서 한 통씩 들어다 주었다. 엔카코에게 목사님이 물 실어 나르는 당나귀를 사주고 싶어 하셨다. 이번 선교 활동으로 엔카코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엔카코 꿈도 선생님이라고 하니 그 꿈이 꼭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 월드비전에서 설치해 준 수도 시설 아주 먼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이곳에서 물을 길어가고 아프리카 소와 동물들도 하루에 한 번 이곳에 와서 물을 먹고 간다. 물 마시려고 기다리고 있는 소떼가 인상적이다.
ⓒ 유영숙
월드비전에서 설치해 준 수도 시설을 보러 갔다. 수도는 태양열로 전기를 만들어 작동시키고 있는데 흐린 날에는 작동이 안 된다고 한다. 다행히 케냐는 맑은 날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물만 공급해 주어도 마사이족 사람들의 생활 형편이 많이 나아질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멀리서 이곳에 물을 뜨러 와서 물통을 줄 세워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정말 많은 소가 물을 마시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모습도 진풍경이었다.

이젠 우리가 어려운 지구촌을 도와주자

이번에 케냐에 다녀오며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여행으로 왔다면 몇 군데 유명한 곳에 가서 사진 찍고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는 정도였겠지만, 월드비전과 함께 한 구호 활동이라 마사이 아이들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TV에서만 보았던 마사이족 마을과 월드비전에서 지어준 학교를 방문하여 함께 음식도 만들어 먹고 마사이 전통춤도 추고 수건돌리기 같은 놀이도 하였다. 특히 이번에 함께 온 분들이 후원할 아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서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나도 한국에 돌아가서 후원할 네 살 여자아이 라피테도 직접 만나 안아주었다. 이번 여행은 잊지 못할 것 같다.
▲ 후원할 네 살 여자 아이와 엄마 이번 여행에서 중요한 일 중 한 가지가 후원할 아이를 직접 만나고 오는 거였는데 직접 만나고 보니 가슴이 뛰었다. 적은 도움이지만 아이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유영숙
우리나라도 한국 전쟁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도움을 받았다. 우리나라처럼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이젠 우리가 받은 만큼 어려운 나라에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이 지구촌의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케냐 오실리기 마사이족 마을에 다녀오며 우리가 얼마나 잘 먹고 잘사는지 느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불평하지 말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고 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 목적도 다시 생각해보고 지구촌 이웃도 돌아보며 살자고 했다. 이번 아프리카 케냐 여행으로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