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크루지?…원가 절감 덫 걸린 삼성전자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4. 8. 24. 09: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구긴 ‘품질의 삼성’
삼성전자는 최근 ‘원가 절감’이 지나치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 체제하에서 삼성 스마트폰은 원가 절감으로 소비자의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갤럭시 버즈3 프로 등의 품질 이슈까지 발생하면서 ‘품질의 삼성’이 사라졌다는 지적을 들었다. 사진은 갤럭시 S24 언팩 모습. (삼성전자 제공)
‘원가 절감의 덫에 빠졌다.’

최근 삼성전자 행보를 두고 이런 말이 나온다. 원가 절감은 말 그대로, 물품을 제조할 때 드는 재료비를 낮추는 것을 뜻한다. 적당한 수준의 절감은 비용 감소와 수익성 향상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삼성전자는 최근 몇 년 새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가전, 스마트폰, 반도체 등 사업 부문마다 원가 절감 방안을 찾아왔다. 효과는 컸다. 제조 업체라는 한계에도 높은 영업이익률을 거둬들였다. 코로나19 위기 속 다른 기업이 어려움에 허덕일 때, 삼성전자는 효율적인 재무 구조로 위기를 버텼다. 2020년대 들어 ‘VE(Value Engineering·설계 경제성 검토)’라는 원가 절감 담당 부서를 운영할 정도로 원가 절감을 경영의 핵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2022년 이후, 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던 원가 절감 정책은 부메랑이 돼버린 모양새다. 일부 제품의 품질 저하가 눈에 띄도록 심해진 탓이다. 중국 업체와 국내 기업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위탁생산(ODM)을 맡긴 가전제품은 ‘택갈이(태그만 교체한다는 의미)’ 논란에 휩싸였다. 스마트폰의 경우 소비자 몰래 스마트폰 성능을 제한시킨 ‘GOS(Game Optimizing Service) 사태’로 원가 절감이 지나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올해는 7월 공개한 갤럭시 버즈3 프로가 사실상 품질관리에 실패하며 환불·교환 사태까지 일으켰다. 여기에 이어 곧 공개할 태블릿 PC인 갤럭시탭 S10의 AP(프로세서)로 퀄컴의 스냅드래곤 대신 비교적 저렴한 대만 ‘미디어텍’ 제품이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들리자 여론은 더 불타올랐다.

원가 절감과는 거리 멀었던 삼전

2010년대 후반부터 ‘원가’ 강조

삼성전자는 본래 ‘원가 절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시절, 삼성전자는 ‘품질’에 전력투구하는 회사였다. 이때 생긴 별명이 바로 ‘품질의 삼성’이다. 이 전 회장이 직접 나서 ‘품질’을 강조하던 경영 정책 덕분이다. 200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TV, 냉장고, 스마트폰 등 삼성이 내놓은 제품은 ‘품질’만큼은 최고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2010년대 후반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속과 연이은 재판에 따른 리더십 부재, 글로벌 경쟁 격화, 각종 비용 상승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당장 회사 생존이 중요해지면서, 재무 라인을 중심으로 수익성 확보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원가 절감 기조가 본격화된 것이다.

경쟁사 대비 영업이익률이 턱없이 낮은 스마트폰사업부가 앞장섰다.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 계열사가 만든 부품 비중을 늘렸다. 자체 생산 AP인 ‘엑시노스’ 탑재도 강화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변수까지 겹치자 아예 ‘설계 경제성 검토(VE)’를 따지는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다.

VE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부품·생산

원가 절감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특정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 원가 구조가 악화했을 때 모듈을 모두 분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VE를 시행한다. 여러 소재나 부품의 대체재를 찾거나 구조를 변경하며 원가 구조를 개선하는 일련의 작업을 삼성에서는 ‘VE’라고 부른다. 특히 노태문 현 MX사업부장이 스마트폰사업부의 지휘를 맡은 이후, 삼성전자의 원가 절감 행보는 더욱 가팔라졌다. 퀄컴이 만드는 AP ‘스냅드래곤’ 가격이 계속 상승하자, 과감하게 대만 ‘미디어텍’ 제품 비중을 늘리는 등 변화를 줬다.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DA사업부도 원가 절감에 열을 올린다. 국내 라이벌인 LG전자는 물론 하이얼을 비롯한 중국산 가전 업체 도전에 수익성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탓이다. 증권가는 올해 2분기 DA사업부가 2000억원의 이익을 내는 데 그친 것으로 추정한다. 상반기 전체로도 실적이 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DA사업부는 경기 침체로 가전 교체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만큼 원가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구체적으로 중국 외주를 늘리고 제품별 디자인과 색상 등 옵션을 축소하는 방안 등이 수뇌부 사이에서 거론됐다.

비용 아껴 수익 챙겼지만

브랜드 경쟁력 악화 ‘수렁’

원가 절감은 ‘수익성’이라는 효과를 삼성전자에 가져왔지만, 반대로 브랜드 파워 감소라는 악영향도 미쳤다.

삼성전자 가전은 2022년 이른바 ‘택갈이 논란’을 겪는다. 고급 라인업인 비스포크 등 주요 가전제품을 중국 가전 업체에 ‘위탁생산’을 맡긴 사실이 알려진 영향이다. 생산만 맡기는 OEM과 달리, ODM은 개발부터 설계 생산까지 전 과정을 맡긴다. 사실상 타 회사가 만든 제품의 상표만 바꿔 끼는 방식이다. 국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당시 국내 가전 회사들이 ODM을 맡긴 제품 리스트가 돌아다닐 정도로 파장이 컸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최상위급 라인업인 ‘비스포크’마저 ODM을 맡겼다는 사실에 강한 비난에 직면했다. 전자업계에서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LG전자와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논란이 일어난 직후 비스포크 라인 제품 상당수를 ‘직접 생산’으로 전환했지만, 한번 떨어진 이미지를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 역시 지나친 원가 절감으로 브랜드 파워가 떨어졌다. 시작은 갤럭시 S22다. 당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생산 단가를 줄이기 위해 일부 부품 크기를 줄였다. 이 때문에 높은 사양의 게임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스마트폰 온도가 위험 수준으로 치솟는 현상이 발생했다. 삼성전자 측은 제품 개선보다는 스마트폰이 과열되지 않도록 성능을 제한하는 ‘GOS’ 소프트웨어를 넣는 것으로 대체했다. 문제는 이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이 사실이 들통났고, 호된 비난을 받아야 했다.

갤럭시 S24를 내놓을 때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AP를 탑재하면서 상당한 비판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곧 내놓을 갤럭시탭 S9에도 퀄컴 스냅드래곤 대신 대만 미디어텍이 들어간다는 예측이 나오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현재 삼성전자에는 AP프로세서를 뜻하는 ‘램(RAM)’과 구두쇠 스크루지를 합친 ‘램크루지’라는 달갑잖은 별명까지 붙은 상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애플과 비교했을 때, 감성은 떨어져도 성능은 오히려 더 압도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런 평가도 GOS 사태 이후 무색해진 느낌이다. 원가 절감 기조도 좋지만, 성능 경쟁마저도 뒤처진다면 애플이 아닌 중국 업체와의 경쟁을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절감 전략, 무조건 잘못된 것 아냐

DS처럼 성공 사례도…방향성은 고민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원가 절감’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다소 억울할 만하다. 대내외적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점이다. 최저임금 상승 등의 여파로 인건비는 매년 상승세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미중 무역 갈등 심화로 무역 환경까지 불안하다. 이 여파로 원자재 가격과 운송비는 연일 치솟고 있다. 모든 비용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원가 절감 조치조차 없다면 버텨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삼성전자 외 애플 등 여타 기업도 원가 절감에 집중하기는 매한가지다.

원가 절감으로 의미 있는 실적을 내기도 한다. 반도체 사업부문(DS)의 경우 생산 공정의 원가 절감과 가동률 개선을 통해 올해 2분기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DS부문의 경우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취임한 이후 각종 비효율 문제를 개선, 원가 경쟁력을 회복하며 영업이익을 대폭 끌어올렸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원가 절감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기 힘들다. 생산 비용을 줄이려는 것은 기업 경영 활동의 일환이다. 다만, 선을 넘으면 안 된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품질과 성능이 감소하면 오히려 역효과다. 품질 논란이 일 정도로 극한의 원가 절감을 해야 하는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3호 (2024.08.21~2024.08.27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