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직전 "대한민국 만세" 박흥주의 진심은…[행복의 나라①]
대통령 참석은 사건 당일 오후 4시 반경 파악
"궁정동 비극, 민주대한 발전 활력소 되길"
영화 '행복의 나라'는 10·26 사건 가담자에 대한 재판을 다룬다.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이선균)다. 승소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 정인후(조정석)를 만나 사사건건 충돌한다.
박태주는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된 육군 대령 박흥주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박흥주는 미래 육군참모총장이라고 칭송받았을 만큼 유능하고 청렴한 군인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로 위세가 당당했던 중앙정보부 비서실장이었지만 지프차도 못 올라가는 행당동 달동네 언덕배기의 반지하 전셋집에 살았다. 이마저도 잔금을 다 치르지 못한 상태였다.
추창민 감독은 그런 그가 왜 대통령 시해 사건 관련자로 재판받게 됐는지, 정말 정보부장 김재규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는지 묻는다. 대상은 박흥주가 아니라 관객이다. 만약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냐는 화두를 던진다.
김재규를 변호한 안동일은 2017년 저서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를 출간했다. 이에 따르면 김재규는 안동일에게 몇 번이나 "내 부하들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들은 나의 명령에 복종한 죄밖에 없습니다. 과거 일본에 부하들에게 죄를 묻지 않은 판례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나보다 그들을 위해 열심히 변론해주십시오."
당부대로 박흥주는 사건 당일 저녁 7시 10분에야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와 함께 김재규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자네들 어떻게 생각하나. 나라가 잘못되면 자네들이나 나나 다 죽는 거야. 오늘 내가 해치울 테니 경호원을 처치해."
박흥주는 이때 김재규가 권총으로 무장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박선호가 "각하까지입니까?"라고 말하는 것도, 30분간 시간 여유를 달라는 말도 들었다.
재판에서 검찰관은 박흥주에게 "각하를 시해하면 국가 변란 사태가 되겠지요?"라고 물었다. 국헌문란 목적을 묻는 취지의 질문이었다. 박흥주는 짧게 "예"라고만 답했다.
이에 검찰관은 "그런데도 김재규 피고인의 지시를 따른 이유가 뭡니까? 더구나 현역 대령으로서 대통령 각하 살해를 지시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박흥주는 "그 자리에서는 대답하지 못하고 듣기만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권총을 차고 본관 비서실에 가서 담배를 피우며 생각해봤습니다. 육참총장과 정보부 2차장보가 와 있고, 준비도 다 되어 있고, 중정부장은 한국의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나라가 잘못되면 자네들이나 나나 다 죽는다고 했을 때 상당히 긴박감을 느꼈습니다."
박흥주는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피고인은 이 건 범행에 대해 잘했다고 생각하나요?"라는 검찰관 물음에 "잘못했습니다"라고 간결하게 답했다.
검찰관은 박흥주가 일련의 상황을 진술보다 일찍 파악했을 수 있다고 의심했다. 중앙정보부장이 사무실을 떠나 임무를 수행할 때 항상 곁에 있는 직책이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이기 때문이었다.
박흥주는 김재규의 지시에 따라 관계 부서에 연락하고, 휘하 부대로부터 올라오는 보고를 받아 전달했다. 네 명으로 구성된 안전팀을 배속받아 중앙정보부장의 신변 경호 임무도 수행했다.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해 누구보다 김재규를 잘 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흥주는 담당 변호사 태윤기에게 "YH 사건, 신민당 총재 사건, 부마사태, 김형욱 실종 사건 등을 자세히 모른다"고 말했다. "김재규가 그 문제로 애쓰고 있다는 정도만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박흥주는 사건이 일어난 궁정동 구관 건물과 식당을 그날 처음 가봤다. 전날까지 모임에 누가 오는지조차 몰랐다.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건 사건 당일 오후 4시 반경. 이발하려던 김재규로부터 "각하께서 일찍 오시면 시간 맞추기 어려우니 내일 하지"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재판에서 "사전 계획을 몰랐습니다. 갑자기 말을 들어 그 상황을 접하게 됐고, 상사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태윤기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해 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부장을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나요?"라고 물었다. 박흥주는 "상황을 접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랐습니다"라며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는 아무리 잘해도 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법무사의 신문에서도 변명하지 않았다. "육사를 졸업한 육군 고급 간부인데 상명하복 관계에 있어서 김재규 피고인의 명령이 중요한가요,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각하의 안전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가요?"라는 물음에 "당시는 긴급한 주위 여건상 대의명분보다 개인 안전만 생각했습니다. 잘 판단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가 고민을 많이 했으며, 심지어 가족과 함께 자결할 생각까지 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이 사건이 혁명인지, 배후에 누가 있는지, 사전 준비했는지 등을 전혀 모르지만, 김재규 단독으로 결행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는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중요임무종사미수죄를 적용해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군 작업복 차림에 수염이 텁수룩했던 박흥주는 초조하고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정면을 바라보며 가슴을 편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현역 군인이던 그는 단심제를 적용받았다. 1심 판결과 함께 형이 확정됐다. 태윤기는 마지막 법률 수단인 재심을 청구했다. 사형 집행 시기만이라도 연기해보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박흥주는 1980년 3월 6일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 야산에서 총살형 집행으로 이승에서의 생을 마감했다. 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기도 전이었다.
사형 집행 직전 그는 '대한민국 만세'를 두 번 소리 높여 외쳤다. 이유는 최후 진술에서 엿볼 수 있다. 10·26 사건 당시 행동이 가장 적절하고 정확한 행동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건이 다 끝난 오늘에 와서는 생각되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가장 적절하고 가장 정확한 판단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본인은 궁정동 비극이 발전하는 민주대한의 활력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유족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상입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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