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사체 넘쳐"…올해도 900만마리 죽은 '국민 생선', 왜 [이슈추적]

안대훈 2024. 8.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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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양식 피해↑…전년 이어 또 ‘최악의 해’?


지난 22일 경남 통영시 산양읍에서 어민들이 고수온에 폐사한 조피볼락(우럭), 말쥐치, 농어 등을 옮기고 있다. 사진 경남어류양식협회
고수온으로 인한 경남 남해안 양식 어류 피해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경남도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지난 22일까지 경남 통영·거제·남해·고성의 262개 양식장에서 폐사한 양식어류는 1298만5000마리로 집계됐다. ‘최악의 해’로 기록된 지난해 1466만 마리(피해액 207억원)를 조만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어민은 물고기에게 면역증강제를 먹이는 등 피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경남에선 2012년 처음 고수온 피해가 집계된 이후, 양식장 피해는 매년 악화하는 모양새다. 2017년 343만 마리(47억원) → 2018년 686만 마리(91억원) → 2021년 1042만 마리(117억원)로 증가세를 보였다. 행정·수산 당국은 기후변화로 수온이 오르면서 고수온 피해가 지속할 것으로 본다.

현재 ‘고수온 경보(수온 28℃ 이상)’가 내려진 남해안에서는 29℃ 안팎의 고수온이 8일째 이어지고 있다. 통상 양식 어류는 28도를 웃도는 고수온에 장시간 노출되면 폐사한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남해 쪽 수온이 평년보다 2~3도 이상 높다”며 “예년보다 남해를 지나는 따뜻한 해류인 대마난류 세기도 예년보다 커 수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수온 취약한 ‘국민 생선’


조피볼락
특히 남해안에서 고수온 피해가 큰 어종은 ‘조피볼락(우럭)’이다. 이번에 경남에서 집계된 고수온 피해 물고기 중 911만5000마리(70%)가 우럭이었다. 우럭은 고수온(수온 28℃ 이상)에 취약하다. 찬물을 좋아하며, 서식 수온은 7~26℃(적정 수온 12~21℃)다. 한계 수온은 28℃이지만, 대개 26℃를 넘기면 생리 기능이 떨어지면서 폐사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상황이지만, 우럭은 국내에서 넙치 다음으로 많이 양식된다. ‘국민 생선’이라 불릴 정도다. 통계청(어류양식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우럭 가운데 10마리 중 8마리는 남해안을 낀 경남·전남 해상가두리 양식장에서 생산된다. 지난해 기준 전체 양식 우럭 1만4418t 중 1만1559t(80%)이 경남(6959t)·전남(4600t) 산이었다. 경남에서도 전체 양식 어류의 절반 가까이(46%) 차지한다.


산소발생기 돌리고, 찬물 끌어올리고, 면역제 뿌려도…


지난해 경남 사천시의 한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 고수온 피해에 대비해 산소공급기를 가동하고 있다. 사진 경남도
지자체와 어민들은 가능한 모든 대비책을 총동원한다. 뙤약볕을 가릴 검은색 차광막을 양식장에 설치하고, 면역증강제를 공급한다. 수온이 높아지면 용존산소가 줄기 때문에 산소발생기도 24시간 가동한다. 바다 표층보다 수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저층 바닷물을 끌어올리는 저층수공급장치도 돌린다.

하지만 고수온 피해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통영의 한 양식 어민(60대)은 “양식장 냉장고에 죽은 물고기만 가득 쌓여 있다”며 “썩는 냄새가 진동해도, 피해 산정을 해야 하니 당장 버릴 수도 없다”고 했다. 이 어민은 지난 22일에만 죽은 우럭·쥐치 등이 담긴 고무통(80~90㎏) 수십개를 옮겼다.


먼바다로 이동…바닷속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양식’


남해안에서 고수온 피해가 빈발하자, 먼바다로 어장을 옮기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육지와 가까운 양식장은 수심이 6~9m 정도로 얕은 탓에 고수온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수심 30m 이상의 외해(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 양식장을 설치, 평소 수심 3~5m에서 사육하다가 고수온·적조 등 재해가 발생하면 깊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는 방식이다.
중층 침설식 가두리 틀. 자료 통영시

통영시는 양식어가 1곳을 대상으로 ‘재해 대비 중층 침설식 가두리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중층 침설식 가두리는 일본에선 상용화돼 있다고 한다. 국내에선 충남 태안에서 2021년 처음 설치했다. 하지만 어류를 가둘 그물에 고정된 사각 틀이 없다 보니 수직 이동이 어려웠다고 한다. 통영시는 일본식인 사각 틀을 제작해 수면에서 수직으로 조절 가능한 시설을 설치하면 효율적으로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고수온 피해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비용이 많이 들어서다. 통영에서 진행하는 이 사업비는 10억원(국·도·시비 80%)인데, 어민 자부담이 2억원(20%)이다. 이윤수 경남어류양식협회장은 “비용도 많이 들고 대상 사업지인 욕지도 부근 수온도 높은 편이라 실용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대체 어종 개발이 시급하다”고 했다.


맛도 좋고 키우기 쉬운 우럭…대체 종 찾기 어려워


우럭 매운탕. 중앙포토
하지만 우럭을 대체할 만한 어종을 찾기 쉽지 않다. 우럭은 탱글탱글한 육질과 감칠맛이 있어 소비자가 선호하는 횟감이다. 또 찜·구이·매운탕용으로도 애용된다.

게다가 우럭은 키우기가 쉬워 수익이 많이 나는 생선이다. 기존 어류와 달리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 ‘난태생 어종’으로 치어 생존율이 높다. 그간 한반도 해역은 연중 수온이 15~18℃인 기간이 길어 어장 환경도 알맞은 편이었다.

이에 국립수산과학원은 아열대 어종인 잿방어·벤자리·긴꼬리벵에돔 등을 연구, 대체 품종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벤자리는 28℃ 이상 수온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 지방이 풍부해 여름철 횟감으로도 가치가 높다고 한다.

수과원 관계자는 “조피볼락 대체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경남수산자원연구소와 협력해 남해안 해상가두리에서 월동 가능성을 파악 중”이라며 “제주에 서식하는 잿방어·긴꼬리벵에돔 등도 양식종으로 개발하기 위해 기초 생리·생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어 “고수온 내성 조피볼락 개발도 진행 중인데, 난태생 어종을 대상으로 한 육종기술 도입은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는 만큼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대체 어종 개발을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통영=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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