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한은 외압 논란…“아주 무책임”vs“뭐가 문제”

정진용 2024. 8. 2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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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차례 연속 동결 결정한 한은
대통령실에 이어 여당도 ‘때리기’
“美연준, 10월 기준금리 안 내리면 누가 책임지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4.08.22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실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아쉽다’는 반응을 내놨다. 정부가 사실상 중앙은행에 외압을 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한은 독립성 훼손 논란이 계속되자 해명을 내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3일 서울 용산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본적으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의견을 존중하는 게 전제이고, 다만 추석을 앞두고 내수진작 방안을 마련하고 있어서 아쉽다는 입장을 낸 것”이라며 “한은이 독립성이 있으니까 우리가 뒤늦게 결정이 나오고 나서 아쉽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은 독립성 있는데…금리결정 이후 나온 발언들 

앞서 한은은 22일 기준금리를 현 3.50%로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2월부터 지금까지 13차례 연속 동결로 역대 최장기간 동결이다. 한은은 금리 인하가 너무 늦어질 경우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성장 모멘텀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킬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내수 부진은 금리인하 시점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시간을 갖고 대응할 수 있는 문제지만, 최근의 ‘부동산발 금융불안’은 당장 막아야 하는 과제”라고 부연했다.

논란은 금리동결 직후 나온 대통령실 발언에서 시작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은 결정을 두고 여러 언론에 “내수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행정부 최고 조직인 대통령실이 기획재정부나 국책연구기관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칠 수는 있어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의견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여당도 거들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내수 진작 문제 차원에서 봤을 때 약간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면서 대통령실과 보폭을 맞췄다. 국민의힘 5선 중진 윤상현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금통위가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를 고려해 결정했다고는 하지만, 경기침체와 내수 진작에 대응해야 할 한은이 지나치게 위축된 것으로,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했다.

기준금리 결정은 한은 금통위의 독자적 권한이다. 한은법 제3조는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하여야 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의 정치적 목표 달성 때문에 통화정책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행정부의 경기 부양 요구로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낮추고 통화 공급을 늘리면 이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 정권이 임기를 마친 이후 그 부정적 여파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야당은 즉각 비판했다.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입장문에서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어야 하지만 대통령실이 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정책결정의 혼선을 초래했다”며 “대통령실이 이러한 위험을 무시하고 금리 인하를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도 “대통령실과 여당이 동시 압박하는 모양새라 적절치 않다”며 “10월 금리 인하가 기정사실이라고 전제한 (대통령실) 해명은 더욱 문제”라고 짚었다.

독립성 훼손 갑론을박…“내리고 싶어도 못 내려” vs “결정 후 발언, 문제 안돼”

대통령실 발언이 적절한지에 대한 학계 의견은 엇갈린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통령실 발언은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은과 행정부 역할이 다르다. 각자가 각자 역할을 잘하면 된다”며 “그런데 행정부는 재정정책이라는 수단을 안 쓰고 있으면서, 옆에 가만히 있는 한은더러 뭐라고 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우 교수는 “정부가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도 미루며 가뜩이나 심상치 않던 부동산 시장에 불이 붙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은이 기준금리까지 내리면 완전히 기름을 붓는 격”이라며 “가계부채가 확 늘어날텐데 그럼 모든 책임을 다 한은이 뒤집어써야 한다”고 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또 우 교수는 “대통령실은 지금 미국이 10월에 내릴 예정이니 우리도 먼저 내리자, 이런 논리인데 그럼 미국이 안 내리면 어떡할건가. 대통령실이 책임 지는건가. 한마디로 아주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문제될 것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기준금리 결정 후 대통령실에서 의견을 말했다는 점, 그리고 금리 결정은 한은 고유 권한이라고 전제 조건을 달았다는 점 때문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인하 시점을 자꾸 미루면서 내수경기 침체를 불필요하게 유발하고 있다”며 “기준금리를 내리고 내수진작 될 때까지 1년 이상의 시차가 있다. 사실 이미 실기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대통령실 발언에 대해 “지금은 어느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평가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그런 견해들을 다 취합해 듣고 내부에서 토론을 통해 결정한다”고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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