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로 50번 살렸다…'하트세이버' 소방관 치명적 조언
지난 16일 오전 5시쯤 경기소방재난본부 119종합상황실 구급상황관리팀으로 “아빠를 살려달라”는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아빠가 깨워도 일어나지도 않고 숨소리도 이상하다”고 했다. 이 전화를 받은 이연숙(54) 소방위는 쓰러진 A씨(44)가 심장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는 ‘심근경색’이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A씨는 심장 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었다.
이 소방위는 신고자에게 “깍지를 낀 손으로 계속 가슴을 압박(심폐소생술)하라”고 한 뒤 인근 소방서에 출동 요청을 했다. 또 A씨 가족에게 “아파트 관리실에서 제세동기(심장충격기)를 가져와 작동시키라”고 주문했다. 계속된 심폐소생술과 심장충격기 충격에 파랗게 질렸던 A씨의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의식을 되찾은 A씨는 도착한 구급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A씨는 이 소방위가 심폐소생술로 살린 50여 번째 환자다. 그는 2008년부터 심정지 환자를 신속한 응급처치로 살린 사람에게 인증서와 배지를 수여하는 ‘하트세이버’로 16차례 선정됐다. ‘생명을 소생시킨 사람’이란 뜻의 하트세이버는 심폐소생술을 받은 환자가 병원 도착 전 심전도를 회복하고, 병원 도착 전·후 의식을 차린 뒤 72시간 이상 생존해 완전히 회복해야 심사 후보자가 된다. 여기에 상황실 근무 구급대원은 환자 인지 후 구급대 출동 지령까지 60초 이내에 진행하고 신고부터 심폐소생술까지 120초 이내에 안내해야 하는 등 추가 조건이 붙는다.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이 소방위처럼 16차례에 걸쳐 하트세이버에 선정된 사례는 전국에서도 드물다고 한다.
이 소방위는 현재는 A씨를 비롯한 6명의 환자를 구해 추가 하트세이버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구하는 구급대원이 꿈이었다”는 이 소방위는 1997년 7월 임용된, 경력 27년의 베테랑이다.
처음 심정지 환자를 구한 건 임용 이듬해 현충일이었다. 외부 기관에서 순회근무를 하고 있는데 옆 스포츠센터 직원이 달려와 “사람이 쓰러졌다”고 했다. 쌕쌕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50대 환자를 본 이 소방위는 구급대원이 되기 전 일했던 병원에서 본 심근경색 환자를 떠올렸다. 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서 심장충격기를 작동시켰다. 이 소방위는 “지금도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며 “나중에 그 환자가 완쾌해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에도 아이들과 놀아주다 쓰러진 세 아이의 엄마,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중 의식을 잃은 20대 청년, 화장실에 가다 갑자기 주저앉은 60대 남성 등을 직접 또는 심폐소생술 등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구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는 상황실 구급대원의 하트세이버 선정은 1년에 2건으로 제한돼 인정받지 못한 사례도 많다고 한다.
그는 “심정지는 나이는 물론 장소도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며 “환자의 숨소리가 이상하고 꼬집어도 반응이 없다고 하면 호흡을 확인한 뒤 빨리 심폐소생술을 하라고 주문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모든 환자를 구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늦은 신고로 골든 타임을 놓쳐 환자가 숨지거나 장애를 얻은 경우도 있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엔 타인과의 접촉을 기피하는 분위기 때문에 환자를 발견해도 신고만 하고 응급처치를 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이 소방위는 “급성 심근경색이나 심정지의 골든타임은 4분이라서 환자가 발생하면 옆에 있는 가족이나 목격자가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일부 ‘환자가 잘못되면 어쩌냐’며 피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러면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다. 나만 믿고 따라해 달라. 그러면 반드시 살릴 수 있다’고 설득한다”고 말했다.
사건 현장을 직접 담당하는 구급대원은 각종 트라우마로 부서를 옮기기도 한다. 이 소방위도 한때 부서 이동을 원했다. 그러나 결론은 구급대원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가족들이 격려를 많이 해준다”며 “이제 정년도 몇 년 남지 않았으니 나만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등 멘토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 몸 튀겨진다" 사드 춤 췄다…가발까지 쓴 표창원·손혜원 | 중앙일보
- 100만원 '황제주' 돌아오나…미국까지 도와주는 이 종목 | 중앙일보
- DJ소다 "내가 당한 성추행, 일본서 AV로 제작돼…너무나도 수치" | 중앙일보
- 노래방 단골 남성이 숨졌다, 그런데 시신은 여성이었다 | 중앙일보
- 현영 성형한 코 어떻길래…이정민 의사 남편 "재수술 필요" | 중앙일보
- '베이징 비키니' 영국도 골치…"근육질이어도 벗지 마" [세계한잔] | 중앙일보
- "이선균 비극 잊었나…한국, BTS 슈가 보도 도 넘었다" 외신 쓴소리 | 중앙일보
- 금수저 버리고 태평양 건넌 20세…해리스 키워낸 엄마였다 | 중앙일보
- "손흥민, 토트넘서 방출해야"…영국 매체 잇따라 혹평, 무슨 일 | 중앙일보
- 임현식 "모친상·아내상 때도 일했다"…'수퍼 노인 증후군' 뭐길래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