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농구처럼!” 버저비터 우승 인헌고 농구부의 행복한 플레이
“털리려면 여기까지 왜 왔나”
연습으로 쌓은 자신감으로 맞불
“패배 극복하며 찾은 행복한 농구”
호루라기가 울렸다. 경복고의 백코트 반칙. 남은 시간 14.5초. 인헌고의 공격. 점수는 67대67.
두 학교가 맞붙은 한국 중고농구 주말리그 왕중왕전 결승전(14일 강원도 양구 문화체육관)의 마지막 순간. 경복고는 올해 3개 대회에서 모두 결승에 올라 2번 우승한 최강자다. 농구부의 역사만 96년. 평균신장이 2m를 넘는 공격수들의 슛 감각도 절정에 있었다. 인헌고는 2010년 창단한 농구부의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약체였다.
인헌고와 경복고가 겨룬 이 남고부 결승전이 화제다. ‘가비지타임 찍었다’거나 ‘슬램덩크 실사판’이라고 회자된다. 가비지타임은 2012년 단 6명의 선수로 준우승을 한 부산중앙고 실화를 그린 웹툰 제목이다. 슬램덩크는 전 세계에서 2억 부가 팔린 일본의 고교농구 만화다.
인헌고 역대 최고 성적은 8강(올해 3월 중고농구연맹전)이었다. 6월부터 열린 주말리그 지역 예선도 간신히 통과했다. 강팀과 붙었을 때에야 실력이 나오는 걸까. 결선에서는 농구 명문인 마산고 휘문고 배재고를 차례로 꺾었다. 사상 처음 진출한 결승 상대는 평균 키도 득점력도 앞선 강팀 경복고. 언론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했다.
결승전이 시작됐다. 1쿼터에서는 13대11로 인헌고가 앞섰다. 이변을 연출하는가 했으나, 2쿼터 25대 33. 긴장한 탓인지, 인헌고의 슛은 림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3쿼터. 신종석 코치는 주전 선수 3명을 빼고 1, 2학년을 투입했다. 응원하던 부모들이 술렁거렸다.
“선수들을 쉬게하려는거야, 아니면 벌써 포기한 거야?”
초조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은 선수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신 코치는 말했다.
“후배들 뛰는 걸 잘 봐라. 긴장하고 당황한게 보이지? 너희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다잡아라. 여기서 더 무너지면 끝이다.”
5분 만에 주전 선수들이 다시 코트로 들어갔지만, 점수는 더 벌어졌다. 3쿼터까지 45대 56, 11점 차.
4쿼터, 마지막 10분이 시작됐다. 인헌고의 슛은 여전히 림을 맞고 튀어 나왔다. 경복고는 계속 망을 흔들었다. 7분 10초를 남기고 자유투까지 모두 넣었다. 51대 65, 14점 차이. 인헌고 전승윤 선수가 회심의 레이업 슛을 시도했지만, 림을 넘어서지 못했다. 신 코치는 작전타임을 요청했다.
벤치에 모인 선수들에게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대로 포기할 거야? 여기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주장 김민국은 입술을 꼭 다물면서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4분8초.
‘이것이 내 고교 농구의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른다. 끝까지 뛰어보자. 그래, 그것뿐이다.’
경복고의 공격을 막았다. 인헌고의 리바운드. 속공. 원거리 슛이 전문인 최주연이 3점 슛을 쐈다. 골망을 갈랐다. 이제 11점 차이.
대추격이 시작됐다. 인헌고가 57, 60, 64점 턱밑까지 쫓는 동안 경복고는 한 골도 넣지 못했다. 64대65. 순식간에 스코어는 1점 차이가 됐다.
역전도 가능할까? 응원석이 들썩였다. 파란 유니폼을 입은 인헌고 학부모와 교사들이 내짖는 함성이 체육관을 채웠다. 경복고의 응원 소리도 커졌다. 이제 시합은 마지막 순간으로 치닫고 있었다.
경복고 10번 윤현성 선수가 빈 곳을 찔러 2점을 달아났다. 64대 67. 3점 차이로 다시 벌어졌다. 남은 시간 1분 26초.
인헌고 김민국 선수가 3점 라인에서 1미터쯤 밖에서 공을 보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나는 공. 흔들리는 그물. 67대67. 동점, 동점이다. 2쿼터에 역전을 당한 뒤 첫 타이 스코어. 남은 시간은 52초. 이 시합의 승자가 누가 될지 이제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
경복고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드리블을 하며 공격에 나선 경복고 선수. 김민국의 압박에 뒷걸음치다 중앙선을 살짝 밟았다. 심판은 정확하게 호루라기를 불었다. 경복고의 백코트 바일얼레이션(공격팀이 공을 중앙선 뒤로 물리는 반칙).
15초가 채 남지 않은 순간. 한 팀이 24초 안에 슛을 쏴야 하는 농구 룰. 연장전으로 가면 누가 봐도 인헌고가 불리하다. 인헌고에게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경복고도 필사의 힘을 다했다. 골 밑을 절대 내주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압박했다. 인헌고가 2번 최주연→ 11번 전승윤→ 9번 하범수로 공을 돌리면서 골대 밑으로 파고들려고 했지만 빈틈을 찾기 어려웠다. 순식간에 10초가 지났다. 하범수는 드리블을 하며 공을 받을 사람을 찾았다.
코트 끝에서 최주연 선수가 달려 나왔다. 하범수가 얼른 패스했다. 3점 라인 밖에서 최주연이 공을 잡았다.
“공을 잡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어요.”(최주연)
페이크 동작으로 수비수 1명을 제친 최주연은 두 발을 폴짝 뛰어 성큼 3점 라인 안으로 들어섰다. 경복고 선수 2명이 그를 향해 달려왔다. 맹렬했다. 최주연은 미들슛에 자신이 없었다. 남은 시간은 1.4초. 패스는 불가능한 시간. 결심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최주연 선수는 무릎을 펴고 제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쐈다. 공이 수비수의 뻗은 팔들 사이로 날아갔다. 최주연이 넘어지면서 코트에 머리를 찧었다.
“손끝을 떠날 때 느낌이 좋았어요. 공이 들어가는 건 보지 못했어요. 수비수에 밀려 넘어졌거든요.”(최주연)
‘삐익!’
경기가 끝났다는 휘슬. 고개를 드니 네트가 흔들리고 있었다. 69대67. 버저비터(Buzzer Beater·슛을 한 공이 날아가는 동안 시간이 끝나고 그 뒤 골이 들어가는 것). 역전. 인헌고의 승리.
동료들이 그를 향해 달려오며 함성을 질렀다. 신 코치는 뒤돌아서서 흐느꼈다. 관중석의 학부모도 붉어진 눈가를 훔쳤다. 언더독 인헌고의 우승.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결과였다.
인헌고는 서울 관악구의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 있다. 결승전 일주일 뒤인 지난 21일 찾아간 학교 입구에 우승 축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축! 인헌고 농구부 우승!’
늦여름 관악산 자락의 짙은 숲에서 매미가 맹렬하게 울어대고 있었다. 기자를 맞은 김현 교장의 얼굴에는 우승의 여운이 가득했다. 그가 살짝 귀띔했다.
“3년 전 처음 학교에 왔을 때, 저에게 찾아와 농구부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 사람들이 여럿이었어요.”
이 학교 농구부는 2010년 생활체육으로 시작했다. 프로 농구 선수 배출보다는 학업과 병행하며 취미로 하는 활동이란 뜻. 다른 학교 농구부는 인헌고와 붙기를 바랐다. 1승 제물이었다. 지금은 엘리트 농구로 전환했지만, 선수 확보가 쉽지 않았다. 김 교장은 농구부 폐지론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농구부만 아니라 사격부 축구부 배구부 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운동하는 아이들 얼굴을 보세요.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으면서 뛰어다니잖아요. 우리 학생들이 인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슴이 뛰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면서 행복하게. 농구가 아이들에게 그걸 가르쳐 주는데, 어떻게 없앱니까.”
신 코치는 2019년 부임해 왔다.
“사실 제가 다른 학교를 코치할 때 인헌고는 가장 만만한 상대였어요. 여기로 부임해 오니 선수들 사이에 패배의식이 강했어요. 그래, 지더라도 상대를 껄끄럽게 하는 팀을 만들자고 다짐했죠.”
명지대와 첫 연습경기를 하는데 학부모들이 몰려왔다. “이 학교 부모님들은 연습경기에도 이렇게 열심히 오시나 봐요?” 신 코치가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대학팀과 연습경기가 1년 만에 처음이에요!” 깜짝 놀랐다. 이것이 현실이구나. 신 코치는 선수들에게 당부했다.
“연습경기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를 또 불러주고, 계속 시합을 할 수 있다. 져도 괜찮다. 최선을 다해라. 네 자신의 플레이에 자신감을 가져라.”
경복고와 중앙대, 프로농구팀에서 뛴 신 코치는 모든 연줄을 동원해 연습경기를 만들었다. 시합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하라고 주문했다. 자신의 플레이를 만들려면 훈련과 연습뿐이었다.
“선수들은 힘들어했죠.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기는 경험이 쌓여야 자신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거든요.”
인헌고는 조금씩 승률을 높여갔다. 농구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인헌고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금 주장인 김민국 선수도 제주도에서 혼자 상경했다. 오벨레존은 나이지리아에서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다.
마침내 지난해 전국 대회에서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했다. 올해 목표는 8강이었는데 3월에 일찌감치 달성했다. 마음을 놓아서 그랬는지, 4월 대회에선 패배의 연속.
“아무래도 입시가 있다 보니, 8강에 들어가 대학 농구 상위 팀에 지원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컸겠죠. 차라리 8강에 안 들어갔으면 너희가 더 절실하게 뛰지 않았을까. 그런 얘기까지 했어요.”(신 코치)
지금 돌아보면 쓴 약이 된 셈이었다. 주말리그도 권역별 예선에서는 1승 3패에 그쳤다. 대회 규칙이 바뀐 덕분에 겨우 결선에 진출했다.
“비록 4월부터 6월까지 진 경기가 대부분이었지만, 결선에선 자신이 있었어요. 대진표를 보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연습경기에서 이겨본 팀들이 많았거든요. 다 같이 결승까지 가보자, 이렇게 목표를 정했어요.”(김민국)
연습경기. 자신감. 어느새 인헌고 선수들은 신 코치의 주문을 그대로 터득하고 있었다. 준결승에서 배재고를 꺾고 결승까지 올랐다. 목표를 이룬 셈.
강팀 경복고와의 결승전 당일. 신 코치는 어떻게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투지를 불어넣어야 할지 고민했다.
“너희들, 지금까지 고생했다. 우리는 목표를 이뤘다. 경복은 강하다. 누가 봐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히 질 것처럼 뛰어서 준우승하는 건 의미가 없다. 지금 너희는 농구 감각이 최고치까지 올라왔다. 자신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하자. 지더라도 우리의 플레이를 보여주자.”
코트로 가기 위해 일어서는 선수들에게 신 코치는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나는, 이기고 싶다.”
코트로 뛰어가면서 선수들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고 한다.
‘이왕 결승까지 올라왔으니, 끝까지 싸우자. 털리려면 왜 왔냐!’(김민국)
짜릿한 우승의 감격은 잠깐이었다. 인헌고 농구부는 다시 이달 말 시작되는 추계연맹전 준비에 한창이었다. 고교 선수들은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 모든 선수가 다 대학이나 프로팀으로 갈 수는 없다. 청춘을 바치는 농구, 프로가 되지 않아도 의미가 있을까. 기자의 질문에 신 코치는 “나도 초등학생 때 공짜 빵 먹으려고 농구를 시작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중학생 때 농구를 그만두려고 했는데, 고등학교까지는 하라고 주변에서 격려해줬어요. 그러다가 대학에까지 가서 버티고 프로까지 갔어요. 인생에서 진짜 힘들 때 2%만, 딱 2%만 더 노력하면 된다는 거, 그 고비만 이겨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경험을 아이들이 했으면 좋겠어요.”
김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운동을 하면 자기 몸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자기 몸을 스스로 컨트롤하는 법을 배운다. 시합에서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이기고 지는 데 익숙해진다. 승패를 수없이 연습한다는 건 대단한 정신 단련이다. 게다가 운동을 하는 아이들은 이미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았다. 지금도 고등학교 교실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지 못해서 책상에 엎드린 채 시간을 허비하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 농구부 선수들은 앞으로 농구를 하든 안 하든, 인생을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더 크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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