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셈법에… 답 없는 작은학교 통폐합

이도경 2024. 8. 24.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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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학생 줄어도 방치되는 농산어촌 학교


초저출생 영향으로 학생 수가 급감하고 있지만 농산어촌 군(郡) 지역 학교 수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학교 수를 유지하는 게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그건 옛말이다. 많은 학생과 교사가 확보된, 규모를 갖춘 학교에서 양질의 교육이 가능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 교육청은 학교 통폐합 같은 적극적인 조치 대신 지역사회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하다. 결국 피해는 학생에게 떠넘겨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 줄어도 학교는 그대로

군 지역 학교는 최근 5년 새 입학 자원(입학예정 인원)이 40%가량 증발했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2017년생은 전국 82개 군 지역에서 2만6500명 태어났다. 당시 이들 지역에는 초등학교 1259곳, 중학교 680곳, 고교 403곳이 있었다. 초등학교 한 곳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입학 예정 인원은 21명이었다. 이 아이들이 도시 등으로 이사 가지 않고 초등학교를 졸업한다고 가정할 경우 입학예정 인원은 중학교 38.9명, 고교 65.7명이 된다.

2022년 이들 지역 출생아는 1만6283명으로 5년 전보다 1만217명(38.5%) 감소했다. 학교 수는 초등학교 1243곳, 중학교 666곳, 고교 396곳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 한 곳당 입학예정 인원은 13명으로 줄었다. 중학교는 24.4명, 고교는 41명 수준이다.


지역별로 보면 이대로 학교를 방치하기 어렵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강원도 11개 군에서 2017년에 출생한 아이는 2318명이었다. 이 지역 초등학교는 170곳, 중학교는 79곳, 고교는 54곳이 운영 중이었다. 강원도 군 지역 2022년생은 1638명으로 급감했는데, 학교 수는 초등학교 165곳, 중학교 77곳, 고교 53곳으로 변화가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한 곳당 입학예정 인원은 2017년 13.6명에서 2022년 9.9명, 중학교 같은 기간은 29.3명에서 21.2명, 고교의 경우 42.9명에서 30.9명으로 급감했다.

강원도 평창군만 보면 출생아는 2017년생 185명에서 2022년생 96명으로 반 토막 났다. 초등학교는 2022년 18곳이므로 학교당 5.3명씩 돌아간다. 중학교와 고교는 각각 8곳과 5곳 운영 중이므로 각각 12명과 19.2명이 돌아간다.

중·고교는 학교 규모가 교육의 질 좌우

담임교사 한 명이 모든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초등학교는 작은 학교가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 없다. 교사 한 명이 맡은 학생이 적으면 세심한 지도가 가능할 수 있다. 사회성을 기르는 점에서는 다양한 또래를 만나는 큰 학교가 유리할 수 있다. 다만 작은 초등학교는 모든 학년이 형제자매처럼 지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다.

과목별 담당 교사가 있어야 하는 중학교부터는 얘기가 다르다. 학교 규모는 교육의 질과 직결된다. 작은 학교에선 여러 학교가 교사 한 명을 공유하거나 교육청 순회교사가 학교들을 오가며 수업한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교사가 모두 있는 학교와 물리 교사 1명만 있고 다른 과목은 순회교사나 다른 학교 교사에게 배우는 학교 여건이 같을 수 없다.

대입을 준비하는 고교생으로선 학교 규모가 중요하다. 내년 고1부터 고교생이 수업을 선택해 듣는 고교학점제가 시작된다. 학생과 교사가 많은 학교일수록 다양한 과목과 수준별 수업을 개설하기 좋다. 고교 수업이 다양할수록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이 풍성해지고 대입에서도 유리하다. 중·고교생이라면 통학 버스로 장거리 이동을 하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양질의 교육을 위해 학교 통폐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작은 학교’로 포장된 무책임 행정

학교 통폐합이 힘든 이유는 ‘어른들 이해관계’ 때문이다. 학교를 만들고 없애는 권한은 시·도교육감에게 있다. 4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시·도교육감들은 학교 동문회와 지역주민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다. 교육감 후보 입장에선 ‘우리 모교 없앤 후보’ ‘우리 마을 학교를 폐교시킨 후보’라는 표 떨어지는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 비수도권 교육청 관계자는 “동문회 반대로 번번이 통폐합이 무산되는데 옛날에 학교 다닌 사람들 추억을 지켜주려고 현재 학생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육청 직원들도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 교육청은 교사 출신인 교육 전문직 중심으로 돌아가는 조직이다. 학교 통폐합은 교육 전문직이 가는 교장 자리를 줄이는 일이다. 팔을 걷어붙이고 지역주민과 동문회 설득에 나서기 어려운 것이다. 일선 교사들은 승진 가산점을 적립할 수 있는 농산어촌 작은 학교가 사라지는 게 달갑지 않다. ‘학생 감소→교육 질 저하→도시와 교육격차 확대→학생 유출’의 악순환에도 학교를 둘러싼 이해관계 탓에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정상적으로 배우고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학교가 적정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굳이 나서서 동문회와 지역주민들의 원성을 사려고도 하지 않는다. 국고 지원을 인센티브로 걸고 관망하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교육특구’를 해법으로 들고 나왔다. 시·도교육청, 지자체 등의 협력을 통해 정주 여건을 개선토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학교 통폐합 없이 교육 여건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는 뚜렷해 보인다. 예를 들어 전남은 전체 17개 군 가운데 12개 군이 교육특구로 지정됐다. 이 12개 구에서 태어난 2017년생은 3684명이었는데 2022년생은 2116명으로 무려 42.5% 감소했다. 초등학교는 173곳, 중학교는 105곳, 고교는 53곳으로 거의 같았다.

이재림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는 “학교를 없애지 않고 작은 규모라도 학교를 유지하는 걸 지역을 살리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다 망하는 길”이라며 “중학교는 최소 18개 학급, 고교는 24개 학급이 되도록 규모를 키워 경쟁력이 생겨야 지역 소멸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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