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세금 유감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재벌가 회장의 이혼 소송을 바라보며 얼마 전 들은 고위 공직자의 말이 떠올랐다. “부부가 세금을 내지 않고 거액의 재산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는데, 바로 이혼이다.”
상속이든 증여든 손에 들어오는 재산이 일정 액수를 초과하면 세금을 내야 한다. 배우자는 최소 6억원(증여세)부터 최대 30억원(상속세)까지 공제를 받는다. 이보다 액수가 클 때 세금이 부과되는데, 소송을 하든 협의를 통하든 이혼으로 재산과 위자료를 나누면 세금은 아예 없다. 위장 이혼이 아니란 것이 전제 조건이지만, 말 그대로 합법적 방식의 절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세금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여성민우회는 1990년 국회 재무위원회에 “이혼 시 분할받은 재산은 증여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건의서를 냈다. 전업주부의 경제적 기여도를 인정하지 않던 시기였다. 여성민우회는 “부부의 재산은 결혼 생활 동안 공동으로 이룩한 것으로, 이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것은 여성을 경제적·법률적 무능력자로 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에도 혼인 및 재산 형성을 둘러싼 사회적 시각은 꾸준히 달라졌다. 헌법재판소는 1997년 남편과 이혼하며 재산을 나눠 받은 윤모씨에게 증여세를 물린 세무 당국의 처분에 대해 “증여와는 성격이 다른 재산 분할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 것은 잘못”이라며 관련 법 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이혼을 통해 이뤄지는 재산 분할은 부부가 각자의 몫을 찾아가는 것이란 취지였다.
세금의 많고 적음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1989년에 재무부(현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했던 자료를 살펴보니,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를 가장 많이 냈던 인물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었다. 액수는 176억원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한국화약을 상속받으며 상속세와 증여세로 총 277억원을 냈다.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도 장남인 조양호 2대 회장 등 세 아들에게 주식 등을 물려주며 76억원의 증여세를 냈다. 당시 고액의 세금으로 화제가 됐지만, 35년이 흐른 현재 수십조, 수백조원으로 불어난 상속 지분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리 비싼 값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상속세를 더 넉넉하게 물리면 될까.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출간한 저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 북콘서트에서 “상속세는 ‘불행세’다. 대영제국이 망한 이유 중 하나는 70%에 달했던 상속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강 전 장관이 책에 기술한 논리는 이렇다.
“세금은 기본적으로 소득의 유입(소득세·법인세), 저장(재산세·상속세), 유출(소비세)에 부과된다. 이런 흐름을 수원(水原)과 저수지, 전답으로 비유해 보겠다. 수원에서 과도하게 물을 퍼 가면 저수지의 수량이 줄고 전답은 농사가 안 된다. 또 수원이 줄면 수증기도 줄어 비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된다. 저수지를 키우고 물을 많이 채워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감세 정책이다.”
세금은 사실 내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정부가 25년 만에 손질 의사를 밝힌 상속세를 보면 볼수록 ‘내는 것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는 내년도 세법 개정안에 50%인 상속세 최고세율을 40%까지 낮춘다는 방침을 담았다. 이 혜택을 받으려면 물려줄 재산이 30억원은 넘어야 한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세 상위 1%(3950명)가 전체 상속세의 90%를 납부했다. 특히 최상위 0.03%(약 100명)가 전체 상속세의 60%를 부담했다. 정부는 자녀 1인당 상속 공제액도 5000만원에서 5억원까지 늘린다는 계획인데,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진다면 형제가 둘인 우리 집은 대략 17억원의 유산까지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상속세 걱정이 없어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세금을 내고 싶은 마음과 별개로 이미 비과세로 물려받은 재산도 많다. 대학 입학 후 받은 300만원이 입금된 내 명의의 청약통장. 사람 없는 빈방은 불을 끄고, 식당이든 어디서든 먼저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기. 받은 시점도 제각각인 부모님의 증여 재산 중 일부다. 올해 갓 태어난 쌍둥이 아이에게 어떤 주식을 미리 사줄지보다 어떤 비과세 재산을 물려줄 수 있을지 떠올리는 게 더 어려운 것은 왜 일까.
양민철 경제부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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