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쪽지] 인식의 사각지대

2024. 8. 2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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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철학박사가 또 한 명 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은 철학 아니라 철학 할아버지를 해도 인간에게는 인식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있는 인식의 사각지대가 나에게만 없을 리 없다는 이 간단한 논리가 제대로 작동되기는 어렵다.

인식의 사각지대를 얘기하다 보면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철학자가 소크라테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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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우리 집에는 철학박사가 또 한 명 있다. 철학박사 부부는 부부싸움을 어떻게 할지 상상이 되시는가. “앞말과 뒷말이 논리적으로 양립 가능해?” “당신 어디 가서 철학한다고 말도 하지 마!” 뭐 이런 대사들이 오고 간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은 철학 아니라 철학 할아버지를 해도 인간에게는 인식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꼭 사기를 당한 것만 같았다. ‘나는 분명 제법 똑똑한 사람과 결혼을 했는데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다니 결혼 전 똑똑했던 그 사람은 어디 갔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본인의 인식의 사각지대를 본인만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점점 두려워졌다. 저렇게 똑똑한 사람도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논리가 사라지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는데 ‘나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저런 인식의 사각지대가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피할 수 없었다.

모두들 자신에게는 인식의 사각지대가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나에게 의식되지 않기에 인식의 사각지대이고 바로 그래서 나에게만 안 보인다! 그러니 나에게는 인식의 사각지대가 없을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철학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논리를 타인에게만 적용하고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해놓고 내가 논리의 적용을 피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철학은 정말 형벌 같은 학문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있는 인식의 사각지대가 나에게만 없을 리 없다는 이 간단한 논리가 제대로 작동되기는 어렵다. 타인에게 적용하는 논리와 자신에게 적용하는 논리가 다른 경우 이중논리를 구사한다고 한다. 타인의 이중논리는 잘 파악하게 되지만 나의 이중논리는 그렇지 못한 법이다. 이중논리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말이 ‘내로남불’이다. 이 말이 이렇게도 유행하는 걸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이중논리를 많이 구사하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되고 남은 안 된다는 식의 이중논리만 구사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인간 사회의 많은 문제가 풀린다.

인식의 사각지대를 얘기하다 보면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철학자가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지가 최고의 지라고 말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식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말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알게 되고 나서야 지금까지 자신이 그것을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는가. 그래서 어디까지 알고 어디서부터 모르는지를 파악하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

흔히 자신에게는 인식의 사각지대가 없는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남의 인식의 사각지대를 손가락질하게 된다. 그러나 내로남불 중 최고의 내로남불은 나는 내로남불하지 않는다는 내로남불이다. 내로남불하지 않고 인식의 사각지대를 의식하려면 평소에 ‘나는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지금 여기서 내가 놓치기 쉬운 진실은 무엇일까?’ 질문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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