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결의’ 담합에 발목 잡힌 유비의 촉나라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2024. 8. 2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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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담합’은 어떻게 조직을 망치는가
유비는 ‘의리’라는 담합을 통해 관우, 장비, 제갈량 등 충성도 높은 인재를 모았다. 이들은 촉나라 건국의 기틀이 됐다. 그러나 이들의 견고한 담합은 다른 인재가 촉나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결국 담합에 발목이 잡힌 촉나라는 멸망의 길을 걸었다. 사진은 삼국지 시기를 다룬 영화 ‘적벽대전’의 한 장면.
어린 시절 삼국지연의를 읽다 보면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문구가 있었다. “촉나라에는 인재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촉의 황제 유비는 관우, 장비와 같은 의형제 외에도 제갈공명, 조자룡, 황충, 마초, 위연, 이엄 등의 인재를 등용해서 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유비와 그 부하들이 나이가 들거나 사망해서 퇴장하고 난 후 촉나라에는 이들을 이어갈 인재가 없었다. 그 결과 촉은 결국 멸망한다.

물론 촉나라는 작은 나라라서 인구가 적었을 수 있다. 인구가 적으니 인재가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편인 조조의 위나라에는 인재가 항상 넘쳐흐르는 느낌이었는데 유독 촉나라에만 인재가 현저하게 적었다는 것은 인구에 비례해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위나라, 오나라와 군사적으로 상당히 대등하게 전투를 벌였던 것을 보면 촉의 인구가 무시할 정도로 적었던 것은 아니지 싶다. 촉나라 인구가 위나라의 4분의 1이라고 한다면 인재 또한 위나라의 4분의 1은 돼야 한다. 그런데 삼국지연의에는 끝까지 관우, 장비, 제갈공명 등만 나올 뿐 다른 인재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초기 개국 공신 이후의 후속 세대가 없었던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뛰어난 인재는 한 지역에 몰려 있지 않다. 머리 좋은 사람이 모두 위나라에서만 태어나고 촉나라에는 지능이 낮은 사람만 태어났을 리가 없다.

백번 양보해 만일 촉나라가 어떤 이유로 뛰어난 인재가 부족했다면 다른 지역 인재를 끌어모을 수도 있었다.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 또한 촉나라 출신이 아니고 외지 출신이었다. 촉나라가 인재를 크게 대우해준다는 소문이 중국 전역에 퍼졌다면 저 멀리 요동이나 강남 인재들도 입신양명을 하기 위해서 촉나라로 몰려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촉나라에 인재가 부족하다는 말은 촉나라의 인재 등용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촉나라 인재 등용 제도의 문제는 도원결의로 맺은 의형제의 의리로 대표된다고 경제학자로서 생각한다.

지위도 없고 세력도 없는 유비는 관우와 장비라는 능력 있는 두 장수와 도원결의를 맺음으로써 성공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 두 명 있다는 것은 유비에게 엄청난 힘으로 작용했다. 누구라도 유비를 상대로 싸우려는 사람은 유비 한 명이 아니라 관우와 장비까지 세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함부로 유비를 대할 수 없었을 테다.

경제학에서는 이처럼 의형제가 돼 마치 한 사람처럼 한마음으로 행동하는 상황을 ‘담합(collusion) 이론’으로 설명한다. 경쟁을 하던 세 기업이 담합을 해서 한마음 한뜻으로 행동하면 그 이윤이 세 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담합의 매력이다. 세 기업이 담합을 해서 이윤이 수십 배로 늘어난다면 세 기업이 나눠도 각자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 경제에서 담합이 오래 유지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담합을 하면 큰 이윤을 얻지만, 그 담합을 깨고 배신하면 더 큰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서로 믿는 친구들과 철석같은 약속을 하고 담합을 하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서로를 배신하기 시작하면서 담합이 깨진다.

그런데 유비, 관우, 장비의 의형제 담합은 평생토록 유지됐다고 하니 그 힘이 대단했을 것이다. 조조가 관우에게 큰 벼슬을 주겠다고 제안했음에도 관우는 유비를 찾아서 떠나는데, 이처럼 배신자가 나오지 않는 담합은 지속적으로 큰 위력을 발휘한다.

담합 이론 관점에서 봤을 때 도원결의를 통해 유비가 의형제를 맺었을 뿐 아니라 그 세 사람의 의리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됐기 때문에 시골에서 돗자리나 짜던 유비가 황건적의 난에서 큰 공을 세우고 예주목이라는 지방 장관 자리에까지 갈 수 있었다. 또한 제갈공명이라는 인재를 얻은 후 어떤 상황에서도 제갈공명의 전략을 믿고 따랐던 덕분에 유비는 결국 촉나라 황제 지위까지 올랐으니, 유비의 인생을 실패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만일 유비의 목표가 중국 천하를 지배하는 것이었다면 겨우 중국 변방의 촉나라를 지배하는 데 그쳤고 결국 유비의 아들 세대에서 바로 촉나라가 멸망했으니 유비의 계획이 성공했다고도 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이유는 초반기 유비의 성공의 초석이 됐던 도원결의 의형제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철석같이 의리를 지키는 담합이 참가자에게 얼마나 유리한지를 설명했지만, 사실 경제학에서 담합은 반드시 적발해 처벌해야 하는 ‘사회악’으로 간주된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수많은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오로지 담합을 적발해 처벌하는 업무에 평생을 바치고 있는 것만 봐도 경제학에서 담합을 얼마나 해로운 존재로 인식하는지 알 수 있다.

담합이 해로운 이유는 담합에 참가하는 소수에게만 유리할 뿐, 그 외 모든 이에게는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만일 아이돌 지망생들이 담합해서 자기들은 모두 아이돌은 되도록 보장하는 동시에 담합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지망생은 능력이 뛰어나도 배제한다면 담합에 참여한 아이돌 지망생에게는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지만, K-Pop 인기는 떨어질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실력으로 아이돌이 된 것이 아니라 담합이라는 꼼수를 통해서 실력이 떨어지는 지망생이 아이돌이 된 영향이다.

다시 돌아가 유비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유비는 자신이 의리를 지키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관우나 장비가 실수를 한다면 크게 꾸짖겠지만 그렇다고 둘을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의리로 맺은 의형제기 때문이다. 실수 한번 했다고 가족과 형제를 버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행히 관우와 장비는 무예가 뛰어난 실력 있는 장수들이었지만, 일반인이 볼 때 관우와 장비가 높은 벼슬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실력뿐 아니라 유비의 의형제기 때문이라고 인식했을 것이다. 즉 유비의 촉나라에 등용되기 위해서는 실력이 뛰어난 것보다는 유비와 의리로 맺어진 관계가 돼야 한다고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젊은 인재가 제갈공명보다 더 지략이 뛰어나다고 해도 촉나라에 가기는 꺼렸을 것이다. 황제인 유비가 삼고초려를 해서 얻은 인재가 제갈공명이고 유비는 한번 정을 둔 사람을 절대 버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반면, 조조는 의형제도 없고 무조건 실력 위주로 등용했으니, 인맥은 없고 능력은 뛰어난 젊은이 입장에서는 의리와 인맥을 중시하는 촉나라보다는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는 조조의 위나라로 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형제라는 담합에 이미 속해 있는 기득권 집단을 뚫는 것이 어려우니 담합 없이 자유롭게 실력으로 경쟁하는 위나라에서 성공의 확률이 높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촉나라는 인재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유비가 도원결의와 의리를 기반으로 성공해 촉나라 황제에 오른 것은 담합이 얼마나 큰 이익을 주는지를 잘 설명하는 사례다. 하지만 촉나라를 얻은 후 유비가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지 못해 결국 중국 천하를 얻는 데는 실패하는 것 또한 국가적 차원에서 담합이 얼마나 해로운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에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전략이라 해도 미래에 그 전략이 여전히 성공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상황이 변화하면 관우와 장비도 버리고 의리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운 전략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3호 (2024.08.21~2024.08.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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