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음한 남자, 10일 동안 빵과 물만 먹어라”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날이 밝자 그는 교회를 찾았다. 그리고 겸허히 고백했다.
“목사님, 제가 수음의 죄를 범했습니다.”
“회개하라 주님의 어린 양이여, 너를 용서하노라, 다만 이걸 차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소년은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목사님이 건넨 속옷 안에 날카로운 칼날이 ‘그곳’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발적 ‘사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네.”
18세기 영국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이야기다. 그 시절, 자위행위는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큰 죄였다. 신의 뜻에 어긋나는 행위로 여겨져서였다. ‘자위’는 악마의 속삭임과 진배없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행동(?)이 저주를 받기 시작한 건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다. 중세부터 근세까지 유럽에서 자위는 신의 섭리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기독교가 유럽의 종교로 자리 잡은 이후 ‘정욕=원죄’와 같은 것이었고, 성적 욕망이란 어떻게 해서든 통제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중세 시절에는 동시에 자위행위가 ‘필수 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다음은 독일 보름스 지역의 신학자였던 부르카르트가 11세기 편찬한 ‘교령집’ 내용이다.
“수음한 남자는 10일에서 20일간 빵과 물만 먹는 참회 고행을 해야 한다.”
열흘 동안 두 가지만 먹는 게 고역이라면 고역이겠지만, 대수롭지는 않은 처벌이었다.
죄로 규정된 다른 행위의 처벌 강도만 봐도 그렇다. 구강성교에는 3년의 참회 고행이 따랐고, 부부관계 시 정상위(남성이 위로 가는 성행위)가 아닌 자세로 해도 마찬가지로 3년이었다. 자위행위가 중세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용인될 행위로 봤다는 방증이다.
‘자위’ 용인이 영원했던 것은 아니다. 기독교 사회가 점점 보수화되기 시작하면서다. 중세 초까지만 해도 자위는 성당의 말단 신부가 처리할 정도로 작은 죄였다. 하지만 14세기가 되는 중세 중기 이후부터는 자위가 심각한 죄로 여겨졌다.
1380년대 프랑스에서는 ‘대주교’가 직접 나서 자위 고해를 직접 듣고 참회 고행을 지도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그만큼 이를 심각하게 봤다는 의미다. 파리 대학 학장이던 신학자 장 제르송은 자위행위자로부터 고해성사를 듣는 방법에 관해 저술을 남겼다. 그는 자위를 “혐오스럽고 역겨운 범죄”라고 규정했다(오만과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 같으니). 서유럽 인구의 3분의 1 인구를 앗아간 흑사병의 창궐이 보수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배경이 됐다. “성적으로 문란한 인류를 하나님이 심판한 것”이라는 기독교적 해석이 먹혀들어갔다.
마침내 유럽에 계몽주의가 찾아왔다. 이성이 종교의 맹목적인 믿음을 밀어내던 시기다. 자위행위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저주에도 드디어 볕이 들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오히려 더 짙은 암흑 속으로 들어갔다. ‘자위행위’를 비난하는 일련의 책들이 유럽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1712년, 영국에서는 ‘오나니아- 혹은 극악무도한 자기오염의 죄’라는 책이 큰 이슈였다. 한 외과의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에는 자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그득하다.
“자위행위를 즐기는 이들은 간질, 히스테리, 턱관절 질환에 시달릴 것이다. 정자가 퇴화된 나머지 병든 아이를 낳거나, 자살하게 된다.”
책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 갔다. 특히 가톨릭의 성적 방종을 비판하면서 태동한 개신교 국가에서 더욱더 큰 인기를 얻었다. 종교개혁의 아버지인 루터는 “자위는 낙태와 같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책은 1730년까지 1만5000부가 팔려 국제적 ‘베스트셀러’로 발돋움했다.
성경 속 오나니즘은 정확히 말하면 ‘질외○○’을 의미하지만 이 저작 때문인지 자위행위를 일컫는 말이 됐다. 티소 박사는 이렇게 선언한다.
“자위는 소화기와 호흡기의 약화, 불임, 류머티즘, 종양, 임질, 음경 지속 발기증, 실명, 정신 이상의 원인.”
한 환자의 뇌를 관찰한 뒤에는 이렇게 진단을 내렸다.
“뇌가 말라버려 썩은 호두알처럼 굴러다니는 소리가 난다. 자위로 인한 정액의 과도한 유실 때문이다. 정액 1온스의 손실은 혈액 40온스의 손실과 같다.”
티소 박사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유명 친구들이 그의 저작을 ‘추종’하기 시작했다. 당대의 유명한 계몽 철학자 루소와 디드로였다. 디드로는 ‘백과전서’의 저자다. 그는 저서에 “수음은 손을 통한 범죄”라고 명시했다. 자위는 과학적으로 몹쓸 짓으로 낙인찍혔다. 루소 역시 ‘에밀’과 ‘고백론’에서 “자위는 정신적 강간”으로 규정했다.
미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자위행위’는 끔찍하고 교정돼야 할 것이 돼버리고 말았다. 성적으로 보수적인 청교도들이 세운 미국, 그중에서도 더 보수적인 이들이 모였다는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은 법령으로 ‘자위행위자를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들에게 자위행위는 ‘신성모독’ 혹은 ‘동성애’와 같은 중죄였던 셈이다.
유럽에서 자위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정조대’가 끊임없이 개발되던 것도 이 시기다. 코르셋 모양으로 성기를 조여주는 게 있는가 하면, 날카로운 칼날이 성기를 둘러싼 제품도 있다. 음탕한 생각을 원천 봉쇄하자는 취지다.
청소년 자위를 막기 위한 사회적 운동도 이뤄졌다. 우리도 잘 아는 ‘스카우트’에서다. 스카우트 설립자 로버트 베이든 포웰은 1914년 스카우트 소년을 위한 책자에서 자위행위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구절을 ‘기어이’ 적어 넣었다. 그는 “신체 활동을 왕성히 함으로써 유혹에서 도망칠 수 있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 구절은 16년 후인 1930년이 돼서야 비로소 삭제된다.
자위행위에 대한 일련의 저주를 걷어낸 이들은 역시 과학자였다. 생물학자 해브록 엘리스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897년 “건강한 개인이 어느 정도 자위행위를 한다고 해도 심각히 해로운 결과가 반드시 뒤따르지는 않는다”고 선언했다. 과학자 알프레드 킨지는 그 유명한 현대인의 성생활을 조명한 1948년 ‘킨제이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자위행위는 남성과 여성에게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일련의 발표가 있은 뒤에서야 자위행위는 더 이상 병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미국의학협회도 자위행위를 “정상적인 것”으로 선언한다. 1972년이 돼서야 이뤄진 ‘자위 해방’이다. 로마제국 멸망 이후 인류는 1700년 동안이나 눈치를 보며 자위를 한 셈이다. 1995년에는 ‘국제 자위의 날(5월 7일)’이 제정되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 현대인은 죄책감 없이 ‘손장난’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3호 (2024.08.21~2024.08.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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