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이민호-김민하가 말하는 자이니치의 비극적 삶

이선필 2024. 8. 2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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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애플 TV 시리즈 '파친코' 시즌2에서 열연한 배우 이민호-김민하

[이선필 기자]

 애플TV+ 시리즈 <파친코>에 출연한 배우 이민호와 김민하.
ⓒ apple tv+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교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던 23일, 그 눈물엔 우승에 대한 감격도 컸겠지만 아마 재일 한국계 학생으로 그리고 자이니치로 살아온 회한도 분명 담겨 있었을 것이다. 100년이 넘는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계 학교가 처음으로 우승한 날 공교롭게도 자이니치 역사의 시작을 다룬 애플TV+ 시리즈 <파친코> 시즌2의 첫 회가 공개됐다.

서울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 23일 오후에 만난 배우 이민호와 김민하는 각각 일제강점기를 거쳐 2차 세계대전의 광풍이 불던 때 고국인 한국을 떠나 일본에 정착한 한수와 선자를 연기했다.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드라마화 한 해당 작품은 전쟁과 가난 속에서 온갖 역경을 4대에 걸쳐 이겨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22년 공개된 시즌1은 큰 호평을 받으며 여러 TV 어워즈와 평단에서 최우수드라마상을 받은 바 있다.

시즌2는 조선 땅을 떠나 일본에 정착한 지 7년 뒤를 다룬다. 한수의 아이를 출산한 뒤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선자네 가족, 그리고 이들을 지켜봐 온 한수의 끈질긴 인연이 묘사된다. 교차로 1980년대를 살아가는 노인 선자(윤여정)와 그 가족의 모습을 제시하며 운명과 인연의 굴레에 놓인 당대의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 관련 이미지.
ⓒ 애플TV
악연과 인연 사이에서

실제 원작에서 한수는 야쿠자 조직에 헌신했고 일제강점기 부역자로 살아온 악한이다. 드라마에선 선자의 큰 아들 노아의 친부이기도 하면서 미국 공습 때 피난처를 제시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 두 배우 모두 이 대서사의 무게감에 공감하면서 시즌1부터 2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점에서 고민한 흔적을 전했다.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고 봐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여지가 많은 것 같다. 시즌1이 호평받은 것도 이민자로 살면서 정체성 혼란을 경험한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신 덕이지 않나 싶다. 미국에 워낙 많은 인종, 이민자들이 살고 있잖나. 저 또한 한수를 연기하며 삶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무엇을 지켜야 하고 삶에서 무엇을 채울지 말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한수를 보며 인생 교육이 됐다. 그리고 관동대지진 같은 사건을 모르고 있었는데 덕분에 알게 됐다. 촬영 초반에 스태프분에게 당시 시대 사진을 최대한 많이 구해달라고 해서 봤다. 웃는 사람들이 거의 없더라. 그런 자료를 보며 시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받았다." (이민호)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도 촬영 때도 그랬지만, (시나리오를 완성한) 수 휴 작가님과 많은 얘길 했다. 과연 <파친코>에 등장하는 이 사람들의 희망은 무엇일까.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게 이 작품의 큰 주제 같다. 보시는 분 중에서 자기만의 어둠, 힘듦이 있는 분도 계실 텐데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셨으면 좋겠다. 저 또한 <파친코>를 통해 자이니치의 삶에 대해 처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너무 몰랐다는 생각에 충격이 컸고, 그만큼 더 소중하게 선자를 표현해야겠다 경각심도 갖게 됐다. 전쟁 후, 피폭자들 이야기가 시즌2에 나오는 만큼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고 정말 잘해내야겠다 생각했다." (김민하)

소설과 다소 다르게 묘사된 한수에 이민호는 설명을 덧붙였다. 시즌1에서 원작에는 없던 한수의 어린 시절이 등장하는 것도 일종의 서사를 부여하는 장치였던 만큼 이민호는 "한수를 절대 비도덕적이라든가 절대악으로 생각하고 연기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시대에서 그를 바라보면 많이 투박하지만 선자를 생각하는 데에 섬세한 지점이 있다. 사랑했고, 그래서 선자 또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한수 입장에선 선자는 그를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고, 그래서 개인적으론 로맨티스트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민하 또한 이해하기 어려웠던 선자를 파고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전했다. 사회주의자로 몰려 모진 고초를 당하다가 숨을 거두게 된 남편 이삭(노상현)의 죽음에 한수의 영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강한 분노가 있었지만, 결국 한수의 손을 잡는다. 김민하는 "싫다고 하면서도 자꾸 왜 한수를 찾는 선자가 이해 안 되는 순간도 있었다"며 "그만큼 선자 삶에서 한수는 형용하기 어렵고 설명할 수 없는 존재, 몸에 남은 흉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이었다.

"처음엔 상처에서 빨리 낫고 싶어서 이런저런 처치를 받고, 레이저 치료까지 하잖나. 그럼에도 흉터는 남는다. 그것처럼 한수를 두고 선자는 어느 순간 자기 삶의 일부라는 걸 인정했던 것 같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증오에 가득 찼을 때도 있었는데, 증오 또한 하나의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김민하)
 애플TV+ 시리즈 <파친코>에서 선자를 연기한 배우 김민하.
ⓒ apple tv+
<파친코>가 두 사람에게 안긴 것

알려진대로 신인배우였던 김민하는 자신의 첫 주연작을 글로벌 OTT 플랫폼과 함께 하며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됐고, 작품 활동에서 다소의 공백이 있던 이민호에겐 큰 전환점이 됐다. 두 사람 모두 배우 경력에서 해당 작품이 차지하는 의미를 말했다.

"데뷔 13년 차 정도가 됐을 시점에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던 터였다. 갇히기 싫고, 자유롭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을 때 이 작품을 만나게 됐다. (연기를) 하면서 자유를 경험했다. 편안한 상태에서 연기를 쭉 밀고 가고 싶을 때까지 가보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약 13개월 가량 오디션을 보는 과정도 좋았다. 선택받기 위해 준비한 걸 쏟아내고, 열정을 태우는 그 자체가 귀한 경험이었다. <파친코>를 보면서 배우들이 연기한 게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민호)

"<파친코>라는 작품은 절 많은 분들께 알린 작품이다. 시즌2를 촬영할 때 현장에서 절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게 달라진 점이라면 달라진 점이다(웃음). 그것 외엔 선자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나 태도가 달라지진 않았다. 배우로서 큰 기점인 건 분명하다. 작품 이후 안 해본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이 작품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저에 대해 정말 많이 알게 됐다는 것이다. 선자를 연기하면서 선자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제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길 어떻게 듣는지를 배웠다. 배우만이 아닌 사람 김민하 입장에서도 너무 중요한 작품이다." (김민하)
 애플TV+ 시리즈 <파친코>에서 무기도매상 한수를 연기한 배우 이민호.
ⓒ apple tv+
이제 막 꽃을 피운 배우 입장에서도, 한창 톱스타로 활동하다가 전환점이 필요했던 입장에서도 <파친코>가 중요한 기점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민호는 "이 작품을 한국에서 제작했다면 과연 한수 역에 이민호라는 배우를 캐스팅했을지 의문"이라면서 "이번 경험 덕에 40대에도 꺼내 보일 게 많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청년이었던 드라마 속 인물은 어느새 부모가 됐고, 이들의 자녀들은 또다른 시대를 살면서 각자의 존재 의미를 찾아간다. 김민하는 "두 사람이 어느새 학부모가 돼어 마치 서로를 오랜 친구처럼 대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울컥했다"며 "결국 사랑, 가족의 이야기라 생각한다. 나의 엄마, 할머니들을 떠올리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드라마의 의미를 짚었다.

<파친코> 시즌2는 23일 에피소드1을 시작으로 애플TV+에서 8편까지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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