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럭비선수, 일본 전지훈련 중 열사병 사망

김서원 2024. 8. 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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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럭비선수가 지난 19일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받다가 열사병으로 숨졌다. 사진 대한럭비협회 홈페이지 캡처

고려대 럭비부 소속 학생이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받다가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23일 고려대는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학생이자 럭비부 선수인 김모(21)씨가 지난 19일 일본 도쿄(東京) 북동쪽 이바라키현에 있는 류쓰게이자이(RKU) 대학에서 전지훈련을 받던 도중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고 밝혔다.

고려대 등에 따르면, 럭비부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야외 인조잔디 운동장에서 인터벌(강한 강도의 운동과 약한 강도의 운동을 교대로 수행하는 고강도 운동) 형식의 체력 훈련을 했다. 그러던 중 오전 11시쯤 김씨가 어지럼증과 탈진, 다리 근육 경련 등 증세를 호소하며 쓰러졌다고 한다. 현장에 있던 트레이너가 응급조치를 했으나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구급차로 우시쿠아이와 병원으로 옮겼다고 고려대는 설명했다. 이 병원은 훈련장에서 약 13~14㎞ 떨어진 곳으로 차로 30분가량 걸린다고 한다.

고려대는 후송 이후 현지 의료진이 김씨의 체온이 40도까지 치솟았다가 37도 정상범위로 떨어지며 상태가 호전됐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20일 오전 12시 17분쯤 호흡 곤란 등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고, 결국 김씨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의료진은 김씨 부모의 동의를 받고 연명 치료를 중단했고, 같은 날 오후 1시쯤 사망 선고를 내렸다. 사망 원인은 열사병으로 진단했다. 고려대 관계자는 “현지 경찰이 사건성이 없다고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씨 부모 의견에 따라 부검 없이 시신은 일본 현지에서 화장됐다. 럭비부 소속 학생 약 30명은 훈련을 중단하고 지난 20일 귀국했다.

김씨의 유해는 지난 22일 오후 9시 45분쯤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유가족은 키 183㎝, 몸무게 100kg로 건장했던 김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자 오열했다. 영정사진은 지난해 고려대에 입학할 때 찍었던 빨간색 학교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었다. 김씨 부모는 조문 온 100여 명의 선·후배들을 한 명씩 끌어안으며 “(생전) 우리 아들과 잘 지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이날 오전 10시쯤 빈소를 찾아 “큰 슬픔과 참담함을 느끼며 최고의 예를 갖춰 고인의 장례식을 진행하겠다”며 “깊은 위로와 조의를 표한다”고 유가족에게 말했다.

현장에 있던 이들 사이에선 폭염 속 훈련을 강행해 예견된 사고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씨가 보였다는 근육 경련, 의식 이상 등은 대표적인 온열질환 증상이다. 훈련 당일 류가사키시의 낮 최고기온은 33.8도로, 훈련 시작 시각이었던 오전 9시에 이미 30도를 넘어선 상태였다. 군 혹서기 훈련 규정에도 기온이 섭씨 31~32도가 넘어서면 옥외훈련을 제한하거나 중지하도록 명시돼있다. 특히 럭비부가 훈련했던 인조잔디는 천연잔디나 일반 운동장보다 높은 지열을 내뿜어 열사병·화상의 위험성이 높다.

또 훈련을 인솔한 감독과 코치진이 적절한 응급조치를 즉시 하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현장에 있던 A씨는 “김씨가 쓰러진 뒤 구급차가 오기까지 최소 20분간 그늘로 옮기지도 않고 땡볕에 그대로 뒀다”며 “정신 차리라며 숫자를 세라고 시키고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B씨는 “2시간째 웃통을 벗고 달궈진 지면 위에서 푸시업 동작을 한 뒤 달리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선수들이 화상도 많이 입었다”며 “쓰러진 김씨에게 ‘포기할 거냐’고 물었다”고 했다. 이어 “김씨가 병원으로 실려간 뒤에도 나머지 학생들은 20분간 훈련을 계속했다”고 덧붙였다.

이형민 대한응급의사회장은 “열사병 환자에게도 골든타임이 존재한다”며 “주변에서 목숨이 위험한 긴급 사태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경각심을 갖는 게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폭염에 의한 온열질환이 발생하면 즉시 환자를 시원한 곳으로 옮긴 뒤 옷을 풀고 시원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체온을 내려야 한다.

이번 사망과 관련해 럭비부 감독 이모(41)씨를 만나 여러차례 해명을 요청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려대 측은 “코치 등에게 확인하니 쓰러진 직후 구급차를 불렀고 15분 만에 도착했다고 한다”며 “병원 도착까지는 45분 걸렸으며, 운동장에서부터 병원까지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이어 “감독 등에 대해 부총장 차원의 내부 조사를 발인 후에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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