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부정평가 부동의 1위 ‘민생’…당정, 왜 한은에 불만 표시할까

허진 2024. 8. 2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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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대통령실이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자 양측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3일 기자들과 만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추석을 앞두고 가계와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있고, 내수 부진을 타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전날 금통위가 역대 최장인 13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하자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밝힌 데 대한 부연이었다.

이 관계자는 한국은행의 독립성 침해 논란에 대해선 “(대통령실이 금통위 결정 뒤) 뒤늦게 의견 표명한 게 그만큼 금통위가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한 걸 보여준 반증”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도 “한국은행 독립성은 법으로 이미 확립돼 있고, 금통위원 역시 다른 금통위원과 상의하지 않을 정도로 결정을 독립적으로 한다”며 “정부가 정말 금통위 영향을 끼치려 했다면 결정 전날에 미리 얘기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통화정책(한국은행)과 재정정책(정부)을 각각 수립·집행하는 양측의 긴장 관계는 중앙은행 제도가 확립될 때부터 필연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라 불리던 과거라면 모를까, 대통령실이 사실상 공식적으로 불만을 제기한 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조되는 최근에는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여권이 이런 비판을 무릅쓰고 무리수를 둔 배경은 당 관계자들의 발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당과 정부는 고위당정협의회 등 당정협의회를 거쳐 다음주 중 추석 대비 공급 등 안정 대책과 함께 소비 진작 대책을 마련해서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달 중순 닷새간의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 여러 대책을 준비하던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자 ‘찬물 끼얹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국민 체감도가 가장 높은 건 소비”라며 “소비가 살려면 가처분소득이 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가계와 소상공인의 이자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긴축재정 기조를 이어나가고 있다. 조만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할 내년도 예산안의 규모도 올해보다 대폭 늘어날 일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이다. 나랏돈을 묶어두다시피 한 상태에서 내수를 활성화할 방법은 금리를 낮추는 수밖에 없는데, 이 길이 계속 막혀있는 셈이다. 김상훈 의장이 “(금통위 결정이) 내수 진작 문제 차원에서 봤을 때는 약간의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으로 읽힌다.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으로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경기 활성화를 위해 선제적인 금리 인하가 이뤄졌어야 할 시점에 금통위의 동결 결정에 큰 아쉬움을 표한다”며 “한국은행의 ‘신중함’으로 인해 민생의 고통이 계속되는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한다”라고까지 했다.

대통령실 성태윤(왼쪽) 정책실장과 박춘섭 경제수석이 지난달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체코 신규 원자력발전소 수주 관련 브리핑에 참석한 모습. 뉴스1


이런 양측의 입장 차이는 내수 전망을 달리 보는 데서 비롯된 영향도 크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전날 “현재 우리 성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내수 부진”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내수 회복세가 더딘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내수 가운데 소비성장률은 올 하반기 1.8%로 전망되는데, 그렇게 낮은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여권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이어 한은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4%로 낮추면서도 금리를 동결한 걸 모순이라고 본다. 반면, 한국은행은 잠재성장률(2%)을 고려하면 성장률 2.4%가 여전히 낮은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제 이 총재는 “경기 부진이라는 표현은 좀 그렇다”고 했다.

이 총재가 간담회에서 ‘부동산’을 40번 넘게 언급했을 정도로 한국은행은 금리 동결의 배경으로 집값 상승 문제를 꼽는다. 그러나 여권의 접근 방식은 다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부동산 문제에서 기준금리가 중요한 수단의 하나”라면서도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가 9월에 적용되고, (주택 구입 자금용 대출인 디딤돌과 버팀목 등) 정책대출 금리도 이미 올리는 등 금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의 반응이 예민했던 건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과도 관계있다. 한국갤럽이 20~22일 조사해 이날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여론조사에서 긍정 평가는 한 달 전인 7월 4주차 조사와 비교해 1%포인트 하락한 27%를 기록했고, 부정평가는 63%로 같았다. 윤 대통령을 부정 평가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건 ‘경제·민생·물가’(15%)로 지난해 10월 이후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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