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료 바꿔치기·서명 조작...아리셀의 대범한 수법
[한국경제TV 박근아 기자]
공장 화재로 23명이 사망한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생산업체 아리셀이 2021년 군에 처음 배터리를 납품할 당시부터 최근까지 검사용 시료를 바꿔치기 하고 시험성적서를 조작해 품질검사를 통과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아리셀이 군에 납품한 리튬 배터리가 2022∼2023년 3차례 파열 사고를 일으킨 사실도 확인되어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는 23일 오전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아리셀이 2021년부터 품질검사용 전지를 별도 제작해 이미 선정되어 봉인된 상태의 시료와 바꿔치기하는 등 수법으로 불법 행위를 해 왔다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아리셀은 2021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47억원 상당의 전지를 군에 납품한 것으로 조사됐다.
군납 제품에 대한 품질검사는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이 담당한다. 검사는 타 기관에 기능시험을 의뢰해 시험성적서를 받은 뒤 제출받거나, 제작된 전지 중 무작위로 시료를 선정해 품질을 확인한다.
경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아리셀은 선정된 시료에 한해 이 공장 내 연구시설 설비를 통해 품질검사가 이뤄진다는 맹점을 노렸다.
품질검사를 위해선 길게는 몇 주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품원은 업체가 시료를 조작하지 못하도록 검사 설비를 밀봉하고 훼손 방지를 위한 서명까지 한다.
그런데 아리셀은 몰래 봉인을 뜯어 미리 준비한 품질 검사용 전지로 시료를 바꿔치기하고 서명까지 위조하는 식으로 대범하게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시험성적서 제출 방식의 경우는 성적서 데이터를 조작해서 제출해 검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조작 행위가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의 지휘 아래 조직적으로 진행됐다고 보고 있다.
아리셀의 이러한 불법행위는 지난 4월 기품원 관계자가 밀봉 서명이 위조된 사실을 파악해 들통났다.
이에 아리셀은 4월 납품분(8만3천여개)을 재생산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회사 측은 비숙련공을 대거 투입하고, 불량 제품도 정상 취급해 양품화하는 등 무리하게 생산을 진행했다.
숙련된 기술이 요구되는 메쉬(리튬 배터리 니켈 소재의 얇은 망) 절단 공정에도 일용직 근로자들이 대거 투입되어 작두를 이용, 절단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등을 종합해보면 숙련되지 않은 근로자들이 수작업하는 과정에서 절단면에 뾰족한 형태의 잉여 부분이 발생했고, 이것이 외부에서 들어온 금속 이물질과 함께 폭발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품원 관계자는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 "서명이 조작된 것을 보고 너무나 황당했다"며 "품질 검사 통과를 위해 시료 바꿔치기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결과를 발표한 김종민 수사본부장은 "적발 후엔 다시 승인받아 납품해야 하는데 아리셀은 일단 만들어 놓고 기품원을 상대로 애원해서라도 납품시키려는 그런 시도도 있었다"고 밝혔다.
아리셀이 생산해 모회사인 에스코넥이 군에 납품한 리튬 배터리가 과거 3차례 파열 사고를 일으킨 사실도 드러났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군납 리튬 배터리 파열 사고는 총 31건이 발생했는데 사고 중 3건은 아리셀의 모회사인 에스코넥이 납품한 리튬 배터리인 'BA-6853AK'가 파열한 경우였다. 이 배터리는 재충전 불가식 일차전지로, FM 무전기 등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보관 중에 일어난 사고였다.
이 외 28건의 사고는 다른 업체인 A사가 납품한 제품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역시 대부분 'BA-6853AK'가 파열한 사고였다.
경찰은 아리셀처럼 군납 품질검사 및 납품 과정에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보고 관련 내용을 국방부에 통보했다.
또 아리셀이 검사 조작으로 기품원 및 국방부의 업무를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방해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이어 나갈 방침이다.
김 수사본부장은 "국방부가 현재 비축 중인 전지나 사용 중인 전지에 대해 전수조사를 한 뒤 그 결과를 통보해 줄 것으로 예상한다"며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수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아기자 twilight1093@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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