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독재자 김정은 비위 안 맞춰"…'대북 전략' 분기점 된 美대선

강태화 2024. 8. 2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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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트럼프를 응원하는 김정은 같은 폭군(tyrant)이나 독재자(dictator)의 비위를 맞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18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후보직을 수락하며 “핵무기를 많이 가진 이(김정은)와 잘 지내는 것이 좋다”고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이자 미국 부통령인 카말라 해리스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 마지막 날 밤에 대통령 후보직을 수락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는 한국의 입장에선 오는 11월 5일 미국 대선은 사실상 대북 전략 원칙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정은, 아첨하며 트럼프 조정”

이날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에서 38분간 진행된 수락 연설에서 해리스는 차분한 어조로 발언하다 강조할 몇몇 대목에서 목소리를 갑자기 높이는 방식의 화법을 썼다. 그중 하나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관련 발언이었다.

해리스는 이스라엘 전쟁과 관련 “이란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테러리스트들로부터 군과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 뒤 갑자기 톤을 올려 “김정은과 결코 동조하지 않겠다”는 말을 꺼냈다.

미국 부통령이자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가 22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 마지막 날 연설을 위해 무대에 오르며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당원들의 큰 환호가 나오자 해리스는 “그들(북한)은 트럼프가 아첨과 호의로 조종하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트럼프 자신이 독재자가 되길 원하기 때문에, 그들은 트럼프가 독재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안보 원칙에 대해선 “민주주의와 독재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미국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고 있다”며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안보와 이상을 수호하는 데 결코 흔들리지 않겠다”고 했다. 김정은은 이날 연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외하고 실명으로 거론된 유일한 독재자였다.


“나토·동맹국과 굳건히 서겠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사실상 ‘금전적 거래’로 접근했던 동맹의 개념에 대해서도 완전히 다른 입장을 냈다. 그는 “분명히 말해두겠다”며 “대통령으로서 우크라이나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과 함께 굳건히 서겠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한달 전 수락연설에서 “미국은 소위 동맹국으로 간주되는 나라들로부터 오랫동안 이용당해왔다”고 주장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해리스는 이에 대해 “트럼프는 푸틴에게 우리의 동맹국을 침공하라고 부추기고, 러시아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나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포기하지 않고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20일(현지시간)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가운데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시위 도중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과 중동계가 반발하며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이스라엘 전쟁 관련 문제에 대해선 다소 애매한 입장을 펼쳤다.

해리스는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옹호하고, 스스로 방어할 능력을 갖추도록 하겠다”며 아랍계가 요구하는 이스라엘 지원 중단을 사실상 거부했다.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해선 “지난 10개월간 가자에서 일어난 일을 참혹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인질이 석방되고 가자의 고통이 끝난 뒤 팔레스타인의 존엄과 안전, 자유, 자결권이 실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친팔레스타인 시위대는 민주당 전당대회 내내 인근에서 시위를 벌였고,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50여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전당대회에서 팔레스타인계 대의원의 발언권을 요청했지만 민주당은 수용하지 않았다.


“정당 아닌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

정치 및 선거와 관련해 해리스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말은 “국민을 위해(For the people)”였다. 그는 “정당, 인종, 성별, 언어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미국인을 대신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직을 수락한다”며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이 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는 우리의 삶뿐 아니라 미국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거 중 하나”라며 “안전장치가 없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당신들의 삶을 개선하거나 국가 안보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명의 고객인 자신을 위해 어떻게 쓸지 상상해보라”고 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이자 미국 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 4일차 무대에 올라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런 뒤 “그러나 미국과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가 사회보장을 삭감하고 건강보험개혁법을 없애려던 시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공립학교를 지원하는 교육부를 없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해리스는 “검사 시절 기소를 하거나 판결을 내릴 때 ‘커멀라 해리스, 국민을 위해(Kamala Harris, for the People)’라는 다섯 마디를 늘 외쳤다”며 “나는 우리를 통합하고 경청하는 대통령,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며 상식적인 대통령, 항상 미국인을 위해 싸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내 인생의 목표”였다고 강조했다.


“나도 중산층…중산층 구축이 결정적 목표”

정책적 목표로는 중산층 구축을 제시했다. 그는 “나의 출신 배경 역시 중산층”이라며 “강력한 중산층이 미국의 성공을 위해 중요하기 때문에 강하고 성장하는 미래를 열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설계해 중산층을 구축하는 것이 대통령직의 결정적 목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부통령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가 22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에서 수락 연설을 마친 뒤 배우자인 더글러스 엠호프,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 및 배우자 그웬 월즈와 무대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반면 트럼프는 ‘부자들의 대통령’으로 규정했다. 해리스는 “트럼프는 중산층이 아니라 자신과 억만장자 친구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며 “그들을 위해 국가부채를 5조 달러까지 늘릴 또 다른 세금 감면을 제공하면서, 중산층엔 연간 4000달러의 세금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억명 이상의 미국인에 혜택을 줄 중산층 감세안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약했다.

선거의 또다른 쟁점인 낙태권과 관련해선 “트럼프는 전국적 낙태금지법을 제정하려고 한다”며 “한마디로 ‘정신 나간 짓(out of mind)’”이라고 했다. 해리스는 이어 “트럼프에게 ‘왜 여성을 신뢰하지 않는가’를 물어봐야 한다”며 “나는 의회가 생식의 자유와 관련된 법안을 통과시키면 대톨열으로서 자랑스럽게 그 법에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3분의 1이 ‘엄마 얘기’…국경문제는 단 1분

해리스는 자신을 트럼프와 다른 ‘중산층의 대통령’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과정에서 연설시간의 3분의 1인 13분여를 할애해 19세에 인도에서 미국으로 유학 온 모친과 자신의 성장기, 의붓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친구를 보고 검사가 됐다는 얘기 등을 하는데 썼다.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이 찬조연설에서 내세웠던 “뭔가를 하자(Do something)”를 연상시키는 “그 일에 대해 뭔가를 하라(Do something about it)”는 말을 언급하며 이는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고도 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이자 미국 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 4일차 무대에 올라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트럼프가 집중 공격하고 있는 불법 이민문제 등에 대한 언급은 단 1분에 그쳤다. 관련 언급은 “지난해 가장 강력한 국경법안을 만들었지만 트럼프가 선거에 타격을 줄 수 있고 생각해 공화당에 협상 파기를 명령했다”며 이민자 급증의 원인보다는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입법 실패를 강조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이날 해리스의 수락연설 시간 38분은 지난달 트럼프가 기록했던 역대 최장 기록인 93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전당대회 첫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실상 고별 연설을 하며 썼던 40분보다도 짧다. 또 해리스는 이날 트럼프의 이름을 15회 이상 언급하며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몰아세웠다. 반면 지난달 트럼프의 수락 연설엔 당시 경쟁자였던 바이든이 단 1번 등장했다. 두 사람은 다음달 10일 ABC방송사가 주관하는 첫 TV토론을 앞두고 있다.

시카고=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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