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모든 국민 위한 대통령 될것"…75일 대선 레이스 시작(종합)
생식권 놓고 비판…"김정은 비위 맞춘 트럼프"
9월10일 TV토론서 본격 경쟁…케네디 변수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며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사퇴 이후 32일 만인 이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확정된 해리스 부통령은 이로써 미 대선 레이스 경쟁을 본격화한다.
22일(현지시간) 해리스 부통령은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모든 사람이 경쟁할 기회와 성공할 기회가 있는 '기회 경제'를 만들겠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민주당 전당대회의 마지막 순서로 해리스 부통령이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기립 박수와 함께 "USA" "카멀라"를 연호했다. 이날이 결혼 10주년 기념일인 해리스 부통령은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에게 "결혼 10주년 축하해 더기"라고 감사를 표했다. 또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감사를 표한 뒤 연설을 시작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남색 바지 정장을 입고 등장했는데, 뉴욕타임스(NYT)는 이에 대해 여성 참정권 운동 상징색인 흰색 옷을 입지 않으면서 첫 흑인·아시아계 여성 대통령이란 점에 대한 집중을 피하려고 한 의도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이민자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 후보이자 아시아계 대통령 후보인 해리스 부통령은 통합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전당대회를) 보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국민을 위해 싸우는 대통령'이라는 메시지를 줄곧 강조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자신을 "중산층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중산층 싱글맘 가정에 오클랜드 아파트에서 자란 성장 배경을 통해 뉴욕 부동산 재벌 출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정반대인 친근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과거 유세 연설에서는 학창 시절 용돈을 벌기 위해 맥도널드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 "어머니는 나와 여동생에게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면서 "그러나 이제 모든 사람이 경쟁할 기회와 성공할 기회가 있는 '기회 경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성공에 있어서 강력한 중산층은 매우 중요하다"며 "중산층 강화가 내 대통령직의 목표"라고 밝혔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유층을 대변한다며 맹공을 날렸다. 그는 "트럼프는 중산층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대신 자신과 억만장자 친구들을 위해 싸운다"며 "트럼프는 중산층 세금을 올리지만, 우리는 중산층 세금을 인하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10% 보편 관세를 부과 공약이 실질적으로 물가를 인상하는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를 '중산층 판매세'라고 지칭했다. 또 자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주택난을 종식하고 사회보장과 의료보험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중산층 대 부자에 이어 검사 대 범죄자로 자신과 트럼프 전 대통령을 대비시켰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는 여러 면에서 심각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가 다시 백악관에 복귀하는 데 따른 결과는 매우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이어 1·6 의사당 폭동 사건과 유죄 평결을 받은 사건들을 나열했다. 또 1·6 의사당 폭동 사건을 겨냥해 '평화적 권력 이양'을 강조하기도 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가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미국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지 상상해보라"며 "여러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것도, 국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것도 아니라 유일한 고객인 자신에게만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권 청사진 '프로젝트 2025'를 언급하며 "트럼프의 목표는 미국을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객석에서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것(We are not going back)"이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이날 찬조 연설을 한 민주당 인사들도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는 "자동차가 고장 나면 출근할 수 없다는 것을 트럼프가 이해할 거라 생각하는가?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며 "그의 첫 단어는 아마 '운전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우라 힐리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해리스 부통령이 검사 시절 국민을 위해 싸웠다면서 그는 대통령이 되면 같은 열정과 투지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해리스 부통령은 "오늘날 미국에서는 너무 많은 여성이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며 낙태권과 생식권 화두를 꺼냈다. 그는 "트럼프는 생식권을 빼앗기 위해 대법관을 직접 뽑았다"며 "그들이 왜 여성을 믿지 않는지 정확히 물어봐야 한다. 우리는 여성을 믿는다"고 밝혔다.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성향 대법관들이 2022년 뒤집은 것을 언급한 것이다. 이어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정신이 나갔다"며 "의회가 생식의 자유를 회복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 미국 대통령으로서 자랑스럽게 서명하겠다"고 말했다.
대선 핵심 의제 중 하나인 국경 안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바이든·해리스 행정부 단골 공격 소재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민자 국가로서 자랑스러운 유산에 부응하고 이민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다"면서 "트럼프는 의회 내 동맹들에 국경 법안을 폐기하라고 명령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안보를 놓고 정치하는 것을 거부한다"며 "양당이 합의한 안보 법안을 다시 제출하고 서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에 대해서는 바이든 대통령과 24시간 내내 일하고 있다며 인질 석방과 휴전 협정 이행을 촉구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자기 방어권을 옹호할 것"이라며 "동시에 지난 10개월간 가자에서 일어난 일로 너무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됐다. 고통의 규모가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나는 트럼프를 응원하는 김정은 같은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은 트럼프가 아첨과 호의로 조종하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트럼프가 독재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왜냐하면 트럼프 자신이 독재자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발언을 비판하면서 부통령으로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적 지원에 일조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우크라이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과 함께 굳건히 서겠다"고 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검사, 법무장관 출신으로 부통령 시절 뚜렷한 외교·안보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은 국경과 외교에서 해리스 부통령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좋은 관계를 과시했던 것을 꼬집고, 방위비를 적극 부담하지 않는 나토 회원국은 러시아가 공격하도록 부추기겠다고 언급한 발언을 지적하며 반격에 나선 것이다.
아울러 트럼프 전 대통령과 J.D. 밴스 상원의원이 선거 운동 기간 미국을 폄하하고 있다며 통합을 강조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제 어머니의 교훈은 누구도 당신이 누구인지 말하지 못하게 하고, 당신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서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대표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줘야 한다. 자유, 기회, 연민, 존엄성, 공정성, 끝없는 가능성이 그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전해진 가장 위대한 이야기의 다음 장을 써보자"고 힘주어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연설을 마치자 미국을 상징하는 색인 빨간색, 흰색, 파란색 풍선 10만개가 천장에서 떨어졌다.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포기 선언 이후 이달 초 대의원 화상 호명 투표를 통해 대선 후보로 선출됐고, 이번 전당대회에서 추인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밀렸던 지지율을 박빙 구도까지 크게 끌어올리며 민주당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일찌감치 대통령 후보가 됐다. 두 후보는 다음 달 10일 예정된 TV 토론 이후 본격적인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애리조나주 시에라 비스타를 방문해 민주당의 국경 정책을 비판했다. 또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말만 많고 행동은 없다"며 "(연설에서 제시한 공약을) 왜 3년 반 전에는 하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의 연설이 끝난 뒤 '최악의 연설'이라는 제목의 정치자금 모금 이메일을 보냈다.
이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소속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후보와 단일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18일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 지지율 47%, 트럼프 전 대통령 44%, 케네디 후보 5%를 기록했다.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박빙 승부를 펼치는 상황에서 케네디 후보 지지층의 표심 이동이 대선 결과를 결정할 수 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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