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진보 女 VS 백인 보수 男… ‘75일의 격전’ 시작

임성수 2024. 8. 2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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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22일(현지시간)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국민을 통합하고 중산층을 재건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 정당 사상 첫 유색인종 여성 후보가 돼 백인 남성인 공화당 후보 트럼프 전 대통령과 선명한 ‘진보 VS 보수’ 대결을 벌이게 됐다.

해리스는 이날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에서 수락 연설을 가족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는 19살에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과학자 출신 모친에 대해 “오늘 밤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준 이웃들을 부르며 “혈연이 아닌 사랑으로 뭉친 가족”이라고 불렀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계부에게 성폭행당한 친구 완다를 도운 경험을 언급하며 “그게 내가 검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였다”고 했다. 그는 남편 더그 엠호프의 애칭을 부르며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리스는 이날 결혼 10주년을 맞았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리스는 자신이 중산층 출신임을 강조하며 억만장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섰다. 해리스는 “중산층은 나의 출신 배경이고 강력한 중산층을 건설하는 것이 대통령 재임의 핵심 목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경쟁할 기회와 성공할 기회를 갖는 기회 경제를 만들겠다”며 “노동계와 근로자, 소상공인과 기업가, 그리고 미국 기업들을 하나로 모을 것”이라고 했다. 또 “주택, 식료품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낮추겠다”고 덧붙였다.

해리스는 트럼프를 향해선 “그들은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지명한 대법관들이 여성의 낙태권을 폐지한 것을 언급하며 “트럼프는 재생산의 자유를 박탈하기 위해 미국 대법관들을 직접 뽑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것을 자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입 사태와 관련해 “그는 미국 의사당에 무장 폭도들을 보내 경찰관을 폭행했다”며 “같은 당의 정치인들이 폭도들을 철수시키고 도움을 보내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는 불길을 부채질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드 레일이 없는 트럼프를 상상해보라”고 우려했다.

연설은 37분여간 진행됐다. 해리스는 수락 연설을 위해 연단에 올랐지만, 환호와 함성 탓에 한동안 연설을 시작하지 못했다. 해리스가 연설 중간 “우리는 뒤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자 당원들도 한 목소리로 합창했다. 해리스는 연설을 마친 뒤 연단에 올라온 남편과 입맞춤을 했다. 또 러닝메이트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 부부와 함께 손을 잡고 당원들을 향해 들어 올리기도 했다.

이날 전당대회 무대에는 해리스의 조카 미나 해리스, 의붓딸 엘라 엠호프도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은 해리스의 혼합 가족(Blended family)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J D 밴스 등 우파의 ‘자식 없는 캣 레이디(고양이를 기르는 여성)’라는 비하 발언에 대한 강력히 대응했다”고 했다.

민주당원들은 2만3500석 규모의 유나이티드 센터를 가득 메운 채 흥겨운 음악에 맞춰 성조기를 흔들면서 대형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광경을 연출했다. 당원 중에는 흰색 셔츠와 드레스를 입은 이들이 많았다. 뉴욕타임스는 “흰색은 참정권 운동가들이 입었던 색”이라며 “해리스가 당의 지명을 수락하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 선출에 도전하는 밤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전당대회는 약 10만개의 빨간색 흰색 파란색 풍선이 대회장 천장에서 떨어지면서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민주·공화 양당이 정반대의 이력과 성향을 가진 두 후보를 지명하면서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 국내 정치 뿐 아니라 국제 정치도 새로운 분기점을 맞게 될 전망이다. 해리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의 아시아계 대통령이라는 새 역사를 쓰게 된다. 트럼프가 당선돼 재선 대통령이 되면 미국은 정치·경제·외교 분야에서 또 한번 급격한 방향 전환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시카고=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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