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김치와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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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할 때, 파란 배추로 겉을 싸서 한 포기, 두 포기 정성스레 쟁였던 김치통이었지만 이제는 김칫국물과 다시마, 곰팡이 핀 줄기가 바닥에 깔린 김치통이 되고 말았다.
작년 김치가 맛있었다면 올해 이렇게 단호하게 김장을 안 하겠다고 했을까? 마른 행주의 물기를 짜듯, 마른 오징어의 기름을 짜듯, 마지막 한 방울까지 엄마의 사랑을 짜내 김치를 먹었다.
달고 시원했던 엄마표 김치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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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기자]
친정엄마가 해주시는 김치는 시원하고 구수하다. 속이 다 뻥 뚫린다. 그런데 작년부터 맛이 달라졌다. 익지 않고 곰팡이가 폈다. 맛도 오묘하다. 쓴맛이 다 난다. 다시마를 사다가 덮어두기도 하고 이런저런 방법을 써도 소용없다. 삼겹살 구울 때 같이 굽거나 김치찌개가 아니면 날로 먹기에 꺼림칙했다.
▲ 마지막 한 방울까지 엄마의 사랑을 짜내 김치를 먹었다. |
ⓒ 박희정 |
기름기 하나 없이 바싹 마른 얼굴이다. '왜 그렇게 일을 하냐고 젊은 사람도 힘 들어서 못하는 일을 구 십이 다 된 몸으로 왜 일을 하냐'고 퉁퉁거려도 일 안 하면 뭐 하냐고 하신다.
올해는 김장을 따로 하기로 했다. 부모님 드실 것만 하자고, 우린 이제 각자 해먹을 거라고 김치 독립을 선언했다. 김장할 때 도와드리러 올 테니, 조금만 하시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작년 김치가 맛있었다면 올해 이렇게 단호하게 김장을 안 하겠다고 했을까? 마른 행주의 물기를 짜듯, 마른 오징어의 기름을 짜듯, 마지막 한 방울까지 엄마의 사랑을 짜내 김치를 먹었다. 곰팡이 피고 쓴맛이 나고서야 드디어 마다하고 물러났다.
김치통을 비우면서, 이 통을 채울 길 없는 못난 솜씨를 탓해본다. 달고 시원했던 엄마표 김치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렇게 해서 엄마 다리에 힘이 돌아온다면, 찡그린 엄마 얼굴이 펴진다면, 김치가 문제랴? 하지만 그런 힘이 생긴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또 딸들을 챙기려 드실 게 분명하다. 비워도 비울 수 없는 자식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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