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장 "검찰 자료 보다가 폭발"
[선대식 기자]
▲ 재판이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공판에서 검찰 측이 연이어 재판장에게 공소장과 관련해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14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을 당시 뉴스타파 사무실 현관 모습이다. |
ⓒ 권우성 |
허경무 재판장이 재판 도중 검사들을 꾸짖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2시간에 가까운 재판 동안 검사들을 향한 재판장의 타박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의견서가 엉터리라면서, 이를 작성한 검사가 누구인지 묻기도 했다.
23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법정의 풍경이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1부 허경무 재판장 심리로 2차 공판준비기일이 진행됐다. 허 재판장은 검찰과 변호인들이 제출한 의견서에 입장을 내놓았다. 특히, 1차 공판준비기일에 이어 피고인들의 혐의와 관련 없어 보이는 내용이 공소장에 상당히 많이 담겨있다고 재차 지적했다.
▲ [쏙쏙뉴스] '윤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장 "검찰자료 보다가 폭발했다" ⓒ 최주혜 |
[재판장의 의문①] "이재명 공산당과 윤석열 명예훼손이 무슨 상관?"
검찰은 공소장과 관련한 의견서 내용을 설명하면서 소위 '이재명 공산당 프레임'의 기재가 공소사실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장이 지적한 부분에 대해 반박이었다. 즉, 대장동 의혹의 장본인 김만배씨가 2021년 9월 이재명 후보를 두고 '공산당처럼 민간업자들에게 돌아갈 이익을 빼앗아 간 사람'이라면서 이 후보를 대장동 개발비리와 단절시키는 이른바 '공산당 프레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허 재판장은 "근데 이재명이 공산당인 것하고 윤석열의 명예훼손 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냐? 이재명 후보가 공산당이었기 때문에 윤석열 후보의 명예가 어떻게 훼손됐다는 것이냐?"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한 아직 사실로 확정되지 않은 김만배-이재명 유착관계가 공소장에 기재된 것을 두고도 "누구와의 유착은 본류가 아니다"라며 "그것 때문에 대장동 본류 사건 결과(확정 판결)가 나올 때까지 공판기일을 추정(추후에 지정)할 수도 있다. 왜 그런 것을 검찰 스스로 유도하고 있느냐"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공소장 내용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재판장의 의문②] "이재명의 이건희 애도와 이 사건은 무슨 상관?"
허 재판장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목록 311번과 312번에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언론 기사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기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020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는 내용이었다.
허 재판장은 "제목만 보면, 이건희 전 회장을 조문하고 애도·조의를 표하는 내용이다.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인가. 이해를 못 하겠다. 사람이 죽었으면 애도를 하고 조의를 표하지 않느냐"면서 "제가 증거목록을 검토하다가 폭발해서 '이거 뭐야?' 하는 게 311, 312번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검찰은 "김만배-정영학 녹취록 내용 중에서 이재명 후보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우호적 설명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면서 (증거로) 이 기사를 설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재판장의 의문③] "대법원 판례 취지 일부 빼고 의견서 쓴 이유는?"
허 재판장은 피고인들이 먼저 윤석열 후보의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무마 의혹을 소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검찰 의견서에 발끈했다.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일 뿐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놓은 대법원 판례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는 "검찰 의견서를 쓰신 분이 누구인가?"라며 물으며 "왜 구체적인 작성자까지 물어보냐면, 판례 전체 취지에서 일부를 빼고 의견서를 적었다"라고 따졌다. "판례의 내용은 특정되지 아니한 기간과 공간에서의 구체화되지 아니한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한 검사가 "재판이 시작되면 증거를 통해 저희가 현출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 표현 하나 가지고 너무 말씀하시면 저희의 의도를..."라고 말했지만, 허 재판장은 "근데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된다는 것을) 왜 뺐느냐"라고 재차 지적했다.
검사가 "우려하시는 바가 뭔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판례 (일부)를 빼거나 그런 게 아니다"라고 반박하자, 허 재판장은 그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제가 잘못 판단했다면 의견서를 제출해달라"라고 말했다.
허 재판장은 또한 동일한 증거가 여러 차례 중복되는 점을 지적하면서 "증거를 여러 다수 당사자들한테 제시하고 그걸 인용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의도적으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근데 다만 화가 난다. 다 읽고 나면 '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이렇게 된다"라고 밝혔다.
피고인 측에도 "매정한 얘기지만, 그건 듣지 않는다"
한편, 피고인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변호인 조영선 변호사는 최근 논란으로 불거진 검찰의 통신이용자정보 조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과잉 수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허 재판장은 "이 사건 공소사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며 "매정한 얘기지만 공소사실에 있고 증거와 관련 있지 않은 이상, 듣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방청석에 있는 기자들에게 얘기하라"라고도 했다.
검찰도 "(통신이용자정보 조회는) 법에 따라서 한 것이고 이 법정에서 의도성이 있는 주장을 한다. (재판장이) 잘 막아주셨지만, (변호인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인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라고 거들었다.
3차 공판준비기일은 내달 2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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