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하고 싶은 사람 모여라”…직장인을 위한 ‘틈새 소극장’ [공간을 기억하다]

박정선 2024. 8. 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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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극장으로⑩] 서울 관악구 틈새 소극장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함바집이 극장으로, 단원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틈새 소극장

1997년 관악청년문화학교 연극교실 1기 멤버로 출발한 극단 틈새는 2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직장인 극단이다. 직장인 극단으로서는 몇 안 되는 소극장을 보유하고 있는 극단이기도 하다. 이들은 2012년 서울 봉천구 봉천역 인근 지하에 틈새 소극장을 개관하고,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 극장에 터를 잡고 있다.

당초 관악청년문화학교 출신 멤버들이 시작한 극단이기 때문에 관악구에서 연습실을 두고 활동하던 이들은 신입 단원이 늘어나면서 더 넓은 장소를 찾다가 이곳에 자리 잡게 됐다. 현재 극단 틈새의 단원은 무려 7~80명에 달한다. 극장은 한 명의 대표와 8명의 운영진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매년 대표를 선출하는 식인데, 올해는 이미래 대표가 극단과 극장을 이끌고 있다.

극장은 당초 인근 공사 현장 인부들을 상대로 한 일명 ‘함바집’으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극단 멤버들은 이곳을 전문적인 인력 없이 자급자족으로 극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조명이나 전기 등의 기술적인 부분을 비롯해 무대와 좌석 등도 합판을 일일이 덧붙여가며 만든 극장이다. 다만 애초에 극장을 위한 건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천장이 낮고, 당연히 천장에 설치된 조명도 낮다. 무대와 객석의 크기도 작다. 수많은 제약 속에 있지만, 이 극장은 단원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간이었다.

이 대표가 극단 틈새에 입단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대표는 대학 시절 연극을 하다가 일반 회사에 취직했고, 얼마 전까지도 일반 회사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직장인 극단을 알아보다가 극단 틈새에 입단하게 됐다. 연극을 했던 경험 덕에 극장의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에 소극장을 보유한 극단을 찾게 된 것이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구조…매해 대표 등 운영진 선출

“극장 없는 사람의 설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아마추어 극단 중에 극장을 가지고 있는 극단은 거의 없죠. 실제 무대에서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 우리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장점이죠. 소극장 틈새는 단순히 공연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인 동시에 우리 단원들에겐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삶과 같은 공간입니다.”

다만 이 대표는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한다. 극장을 보유한 극단이 장점을 취하려면 그만큼의 경제적인 문제와 인력 문제 등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다행히 소극장 틈새는 직장인 극단이 운영하는 만큼, 단원들의 월회비로 월세나 각종 공과금 등을 충당하고 공연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제작비로 사용하는 시스템을 마련해뒀다. 극단만의 회칙도 만들었다. 직장인 극단인 탓에 사실상 티켓 수익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이 같은 시스템이 지금까지 틈새를 오랜 기간 운영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굉장히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구조로 운영되고 있어요. 한 명이 쥐고 이끌어가는 곳도 있지만 사실상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틈새는 아무리 후배라도 바꾸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죠. 매년 대표가 바뀌기 때문에 새로운 정책을 제안, 실행하기도 좋고요.”

이 대표는 올해 대표로 선출되면서 ‘잔무 최소화’라는 운영 방침을 내세웠다. 그는 “직장 생활과 극단 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며 “극단에는 오로지 열정 하나만으로 연극을 하는 단원들이 많다. 늦은 밤까지 공연 연습을 하고 다음 날 9시에 출근하면 ‘좀비냐’는 소리를 듣기도 할 정도”라고 말한다.

잔무를 최소화하면서 가능했던 건, 공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기존에 소극장 틈새에서는 평균적으로 1년에 올려지는 작품이 5편 정도에 불과했다. 각 작품을 이틀간 공연해 사실상 공연이 올려지는 건 10일이다. 이 10일 외의 기간엔 극장은 연습실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번 해에는 정기공연의 횟수를 늘리면서 전년 대비 1.5배 이상의 공연을 진행해왔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연극하고 싶은 사람들이 공연할 수 있도록”

“틈새는 공연을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 모여 있잖아요. 그런 만큼 공연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계획을 짰습니다. 저희는 공연마다 새로운 연출을 선출하고, 100% 연출자의 자율에 맡겨 작품을 선정합니다. 다만 매 공연마다 20명의 배우가 무대에 오를 수 있게 한다는 조건은 있어요. 작은 역할이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이 무대를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죠.”

극단 틈새가 탄탄하게 이어져 온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신입이 들어오면 신입 훈련을 거쳐 무대에 직접 서도록 하면서 탄탄한 배우진이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연기 훈련을 비롯해 조명과 음향 등을 비롯한 무대 연출에 대한 수업도 진행한다. 약 두 달에 걸친 훈련을 마치면 발표회를 진행하고, 신입들만 배우로 참여하는 신입 워크샵 등 단계적으로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프로 극단과 비교해도 연극에 대한 열정만큼은 뒤처지지 않은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연극이 너무 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고, 누구보다 조명을 받고 그 아래서 공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원동력이 되고요.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어줄 때 가장 감동을 느낍니다.”

연극을 통해 지역에 이바지하는 것도 이들의 큰 보람이다. 틈새는 앞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기를 가르치고 공연을 올리도록 하는 활동을 펼친 바 있고, 최근까지는 지역의 보육원을 대상으로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이 대표는 “오히려 단원들이 더 좋아한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연극으로 봉사를 할 수 있음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연극하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하고 싶은 공연을 할 수 있는, 저희 극단 틈새와 틈새 소극장의 목표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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