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뒤돌아 보셨나요? 1초면 충분합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허윤경 기자]
"누구야? 좀 전에 오줌 싼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큰소리로 남편과 첫 아이를 호출한다. 들려진 변기 커버와 변기 가장자리에 떨어져 있는 노란 오줌 자국.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뒤 마무리를 깨끗하게 할 자신이 없으면 제발 앉아서 소변을 보라고 누누이 이야기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누구에게도 닿지 않은 모양이다. 보통 대변을 볼 때에는 앉아서 한번에 대변과 소변을 해결하지 않나?
남자와 여자, 신체 구조가 다르니 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주변에 묻지 않게 볼일을 보는 게 가장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흔적을 남기게 되었을 때 다음 사람을 위해서 휴지로 한번 스윽 닦아내면 좋으련만, 아쉽다.
지금은 아직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여아 둘째가 머지않아 아빠! 오빠! 하며 두 남자에게 잔소리 폭탄을 날리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때가 되면 집에서도 화장실을 남자/여자 구분해서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화장실 사용으로 곤혹스러운 건 집에서 보다는 외출해서 공중 화장실을 이용해야 할 때 더욱 그렇다. 노크를 하고 화장실이 비어있음을 확인한 후 대차게 문을 열었을 때 누군가 남겨 놓은 흔적을 발견하는 건 그리 달가운 경험이 아니다. 그 흔적이라는 것이 눈에 띄는 형태와 냄새를 지니고 있다면 더더욱.
낯선 것과의 조우로 인한 당혹스러움이 조금 가라앉을 때 쯤 다시금 떠오르는 건 의문이다. 물과 함께 떠내려갔어야 할 이 물체가 어째서 여기 이렇게 덩그러니 남아있는냐 하는. 옷 매무새를 고치고 문을 열고 나가기 전, 앉았던 자리를 한번이라도 되돌아 봤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공중 화장실에서 경험한 것과 비슷하게 불쾌한 감정을 최근 헬스장에서 경험했다. 운동을 마치고 땀에 젖은 몸을 씻기 위해 탈의실에 들어서는데 바닥이 온통 물바다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가진, 앳되어 보이는 학생 넷이 거울 앞에 서서 치장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수건을 발로 끌어와 물기를 닦으며 물었다.
"이거 학생들이 이렇게 한 거예요?"
"네. 수건이 락커에 있어서요."
▲ 헬스장 락커룸에 쌓여있는 머리카락 |
ⓒ 허윤경 |
내 두 눈은 졸지에 봉변을 당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논하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싶었다. 공공장소에서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의 구분은 상식일 것인데, 이래도 되나 보다 하는 무지함과 부도덕함에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 뿐인가. 먹던 생수병이나 커피를 '누군가 치우겠지' 하며 그냥 버려두고 가는 사람들, 사용한 수건을 회수함에 넣지 않는 사람들, 선풍기를 죄다 틀어 사용한 후 끄지 않는 사람들... 사실 어른들이라고 다르지 않으니 단지 나이가 적고 많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평소 운동을 마치고 탈의실에 들어서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비치되어 있는 무선청소기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을 빨아들이는 일이다. 결벽증이나 '청소병'이 있는 게 아니라, 샤워하고 나온 맨 발바닥에 이물질(특히 머리카락)이 묻는 게 싫어서이다.
옷을 입고 소지품을 다 챙긴 뒤 마지막으로 하는 행동 역시 처음과 같다. 다음 사람이 쌓여있는 내 머리카락을 피하려 까치발로 다니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 운동을 마치고 탈의실에 들어서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청소기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을 빨아들이는 일이다. |
ⓒ johnarano on Unsplash |
그러니까, 이건 미처 뒤돌아보지 않은 탓이다. 어딘가 머물렀다 나올 때에는 머물렀던 자리를 한번 둘러보는 데 1초면 충분하다. 더구나 내가 흘려둔 걸 치우는 건 1분이면 된다(흘려둔 게 휴대폰이나 지갑일 수도 있다, 혹은 파우치이거나).
'남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명분은 필요 없다. 일단 내 자신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자고로 한 번쯤 들어봤을 화장실의 명언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다운 법'이니까. 이 간단하고 명료한 진리는 모든 장소, 모든 순간에 필요하다, 공중화장실에서만이 아니라.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명이 매달 1만 원씩 모으면 '제2의 오상욱' 키운다"
- 전 이사장과 교장의 잇따른 부고, 충암학원에 무슨 일이
- [단독] 홍수 잦은 천변에 야구장? 대전시만 아는 '몰래 공사'
- 한국계 교토국제고 고시엔 우승... 궁금한 것 이모저모
- 65세에 잘해야 69만 4천원? 국민연금, 질문 있습니다
- 요리용 온도계를 들고 K팝 매장에 찾아간 이유
- "삼성 리스크는 이재용 아닌 실세 정현호"
- 한국계 교토국제고 고시엔 우승... 궁금한 것 이모저모
- 도서관에서 '유해자료' 빼겠다는 충남도의회, '금서 조례' 논란
- '일제 미화 영상' 교사, 수업배제라더니 병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