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매트, 10층용 썼다는데…7층서 뛰어내린 남녀 사망 왜 [부천 호텔 화재]
경기 부천 호텔 화재로 7명이 숨지는 등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탈출을 위해 투숙객 2명이 소방당국이 현장에 설치한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렸다가 에어매트가 뒤집어지면서 사망해 논란이 일고 있다.
23일 경찰과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 34분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동의 9층짜리 한 호텔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은 오후 7시 39분 “810호(실제론 7층) 객실에서 연기가 난다”는 첫 신고를 접수했고 4분 만인 오후 7시 43분 현장에 도착했다.
“살려주세요” 외친 뒤 뛰어 내렸지만…126㎏ 에어매트 뒤집혔다
소방당국은 5분 뒤인 오후 7시 48분 가로 7.5m·세로 4.5m·높이 3m 크기의 에어매트를 호텔 주차장 출입구 근처에 설치했다. 무게는 공기가 주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126㎏이었다. 해당 에어매트는 10층(30m) 이하에서 뛰어내려도 살 수 있도록 제작된 인명 구조 장비다. 펌프차 등에 싣고 출동해 구조대원 4∼5명이 함께 들어 옮긴 뒤 설치한다.
7층 객실에 있던 남녀 2명은 불길과 연기가 퍼져 상황이 급박해지자 에어매트 설치 7분여 만인 오후 7시 55분 차례로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먼저 뛰어내린 여성이 에어매트 건물 방향 안쪽 가장자리로 떨어진 직후 에어매트가 마치 딱지처럼 뒤집혔다. 먼저 뛰어내린 사람이 구조된 후 다음 사람이 뛰어내려야 하지만, 곧바로 남성이 뛰어내리다가 에어매트가 뒤집히며 생긴 빈공간인 바깥쪽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촬영한 당시 영상을 보면 한 남성이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친다. 영상에는 곧장 한 사람이 에어매트로 뛰어내리자 이 에어매트가 그대로 뒤집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인근 가게 직원인 고모씨는 “에어매트로 사람이 뛰었고,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 하는 걸 봤다”고 전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비슷한 내용의 목격담이 올라왔다. 한 목격자는 “첫 번째 뛰어내린 사람이 모서리 부분으로 떨어졌고, 이 영향으로 에어매트가 크게 회전하면서 뒤집어졌다”고 전했다. 또 “매트가 뒤집힌 상황을 모르고 두 번째 사람이 뛰어내리면서 거의 맨바닥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매트가 뒤집혀 ‘119부천소방서’라는 글씨가 거꾸로 보이는 매트 사진도 잇따라 공유됐다.
소방 “모서리 쪽 떨어지면서 뒤집혀, 흔한 일 아냐” 해명
일각에선 처음부터 에어매트가 제대로 설치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소방 측은 “해당 매트는 10층용으로, 7층에서 뛰어내려도 문제가 없다”며 “여성이 떨어질 때 모서리 쪽으로 쏠리면서 에어매트가 뒤집혔고 흔하게 일어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날 화재 현장을 찾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에게 “저도 동영상을 봤지만 에어매트가 뒤집히던데 설치 사항에 오류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에어매트를) 잡아주는 사람은 없었느냐”는 질문도 했다. 이에 조 본부장은 상황을 설명하고 “당시 인원이 부족해서 에어매트를 잡아주지는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에어매트를 잡아야 하는 매뉴얼은 없다면서도, 에어매트가 뒤집히는 상황이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구조용 에어매트는 모서리로 떨어져도 뒤집어지거나 하는 등 이상이 없는 제품이어야 하고 잘 뒤집어 지지도 않는다. 소방대원들이 에어매트를 잡아야 한다는 매뉴얼도 없다”며 “설치에 문제가 있어서 뒤집어진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에어매트가 불량이었거나 관리를 안 해 문제가 생긴 건지는 조사를 해 봐야 안다”고 말했다.
실제 에어매트의 성능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이번에 뒤집힌 에어매트는 지난 2006년 지급됐다. 공기안전매트의 사용 가능기한은 7년이다. 경기소방 관계자는 “에어매트의 사용 가능 기한이 지났어도 심의를 받아 재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에어매트의 공기량, 경사가 있는 호텔 주차장 입구라는 설치 장소 등이 적절했는지 등도 따져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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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높은 위치서 떨어질수록 위험성 ↑”
이번 사건과 같이 고층에서 에어매트를 사용하는 것이 애초부터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동현 가천대 소방방재학과 명예교수는 “공기안전매트는 정확한 위치에 떨어져야 구조 효과를 볼 수 있는데 높이가 올라갈수록 뛰어내리면 정확한 위치에 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높은 건물에서는 최후의 구조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실제 현행 소방청 고시에서도 5층 높이 수준인 15m 이하 용도의 공기안전매트에 대해서만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성능인증이 이뤄지고 있다. 그 외 규격의 공기안전매트의 경우 민간시험 인증기관을 통한 자체 성능시험 등을 거쳐 판매된다. 소방청의 소방장비표준규격 역시 16m 이하 높이에서 사용되는 매트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다만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구조현장에서 그걸 쓰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고층 건물에서 화재가 났고 별다른 구조 대안이 없을 때 에어매트라도 사용해서 구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 제외·유독가스 확산에 피해 커져
해당 호텔이 소방법 개정 전인 2003년 준공돼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다는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2017년 개정된 건축 소방법상 2층 이상‧연면적 500㎡ 이상, 높이 13m 이상 건축물은 반드시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지만 이전에 건축된 건물은 해당 사항이 없다.
호텔 특성상 침구나 가구류가 불에 타면서 발생한 연기와 유독가스가 좁은 복도를 타고 순식간에 퍼지면서 대피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호 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불이 난 빈 객실인) 810호실 문이 열려 있어서 연기가 급격하게 퍼졌다”며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화재 발생 14분 뒤) 48분 정도에 복도에 연기가 가득 찼다. 호텔 특징상 복도가 좁다”고 말했다. 이상돈 부천소방서 화재예방과장도 이날 오전 3차 현장 브리핑에서 “선착대가 도착했을 때 8층에서 급격한 연소 확대가 이어지고 있었고 연기가 창문 등으로 분출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망자 7명 전원이 호텔 7~8층 투숙객이었다. 에어매트로 뛰어내린 뒤 사망한 2명 이외 나머지 5명은 객실과 복도, 계단 등에 연기에 질식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날 소방과 합동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하고 호텔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와 호텔 내부 피난구조시설을 제대로 갖췄는지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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