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나와 유명해진 '운사모', 이 사람이 만들었다
[이주영, 심규상 기자]
▲ 대전 운사모 이건표 회장 |
ⓒ 심규상 |
운사모를 만든 이건표(72) 회장은 2016년 8월 정년퇴임 때까지 42년 동안 초등교육 현장에서 체육 꿈나무 육성에 진심을 다해왔다. 무엇보다 돈 때문에 체육을 향한 꿈을 포기하는 학생을 한 명이라도 줄여보려 노력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제1회 대한민국 스승상 초등부문에 선정돼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지난 20일 충남 청양의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이 회장은 "사실 전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면서 체육 교육에 관심을 쏟게 된 계기를 들려줬다.
"어렸을 땐 몸이 허약해서 따돌림을 당할 정도였어요. 공주교대 재학 당시 선배의 권유로 핸드볼부에 들어간 뒤에 그야말로 인생이 180도 바뀐 셈이죠. 2년간 악착같이 훈련하니까 몸도 튼튼해졌고 운동신경이 빨라졌어요. 무엇보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체육의 핵심 정신인 '자신감'을 그때 얻었습니다."
"어른인 우리가 길 열어주고 도와주면 된다"
운동의 효능감을 제대로 느낀 이 회장은 1973년 교직에 발령받으면서 '내 제자들만큼은 마음껏 체육정신을 키워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 교사로 재직하며 운동부 학생들을 지도했다. 소년체전에 대비해 합숙훈련을 할 때는 어떻게든 잘 먹이고 싶어 결혼반지를 팔아 자금을 마련한 적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2004년 대전시교육청 소년체전 담당 장학사가 됐다. 지역에서 유망한 선수가 대회에서 활약하도록 돕는 게 그의 일이었는데, 간혹 운동을 도중에 그만두는 아이들이 있었다. 쫓아가서 알아보면 대체로 이유가 비슷했다.
"축구·야구 외에 비인기종목은 선수를 확보하려고 학생에게 등록금과 급식비 면제 등의 혜택을 줍니다. 운동에 재능 있는 애들 중엔 경제적 형편을 고려해 지원이 잘되는 운동부에 가입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들어가 보니 운동화랑 유니폼은 자기 돈으로 사야 하는 거예요. 그런 비용조차 도저히 감당 안 되니 운동을 그만두는 거였습니다.
운사모를 그래서 만들었어요. 아이들은 자기 재능을 찾아 그 길로 가도록 키워주면 성공이거든요. 체육에 탁월한 아이는 체육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줘야 해요. 경제적 어려움에 가로막힌 학생이 있다면 어른인 우리가 그 길을 열어주고 도와주면 됩니다."
▲ 2014년 충남 홍성고 재학 시절의 우상혁 선수 모습 |
ⓒ 운사모 제공 |
운사모의 지원 속에서 성장한 사례는 오상욱 선수 말고도 파리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여자 펜싱 전은혜 선수,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 등 여럿 있다. 1회 장학생인 카누 국가대표 출신 이민 선수는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아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만 운사모의 도움으로 다시 운동을 시작해 유망주로 발돋움했다. 이밖에도 실업팀에 들어가 현역으로 활약하는 장학생들도 많다.
"장학생 얼굴 보면 이 일 멈출 수 없어"
운사모를 16년째 이끌고 있는 이 회장은 매해 소년체전과 전국체전이 열리면 그곳이 어디든 찾아간다. 장학 혜택을 받는 선수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격려하기 위해서다. 회비에서 마련한 특별 장학금 10만 원을 손에 쥐여주는 일도 빼 먹지 않는다. 간혹 대회에서 근황을 알게 된 장학생 출신 실업팀 선수에겐 건강을 챙기라며 자비로 보약을 지어주기도 한다.
"가장 가슴에 남는 아이가 한 명 있어요. 보육원에서 생활하며 연식종목 선수로 뛰는 학생이었어요. 시합 전에 지도교사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이 친구가 자신감도 떨어지고 의욕이 부족하다'더라고요. 제가 학생을 직접 만나 '네 앞길은 네가 개척해나갈 수 있다'고 응원해주면서 1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넸습니다. 손을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뚝뚝 떨구더군요.
이후에 다른 선수를 격려하러 이동하는데 지도교사에게 연락이 왔어요. 제가 다녀간 다음에 어찌나 이를 악물고 뛰던지, 그 친구 덕분에 우승을 했다는 거예요. 나중엔 전국대회에서 금메달도 땄어요. 보육원 보호를 받는 청소년은 만 18세가 되면 나가야 하는데, 이 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실업팀에 스카우트 돼 무사히 자립했습니다.
현재 지원하는 15명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52명이 운사모를 거쳐 갔는데, 정말 눈물 겨운 사연을 지닌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그러나 안타까운 환경에 놓였어도 잘 도와주고 이끌어주면 유망주로 성장해요. 특히 제가 대회에 격려 방문하러 갔을 때 장학생들 얼굴에 나타나는 환희와 희망을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이 일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 회장은 오는 10월 경남 김해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도 찾아가 대회에 나서는 선수들을 일일이 격려할 계획이다. 장거리 운전과 숙소 예약 등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이면서도, 그를 반가워하며 기뻐할 장학생들을 떠올리면 한편으로 설렌다.
그는 "매달 만 원씩 보내주시는 회원님들 덕분에 제가 이런 호사를 누린다"며 "회장으로서 어떻게든 후원금을 늘리고 운사모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운사모 회원가입 주소 : https://cafe.daum.net/sports-love
[인터뷰 ①]
"20명이 매달 1만 원씩 모으면 '제2의 오상욱' 키운다" https://omn.kr/29v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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