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학원에 왕이 돌아온다? 어이없는 법원 판결

김행수 2024. 8. 2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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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재단 복귀 하나, 기로에 선 충암학원 ③] 법원 판결에 달린 운명

야구와 바둑의 학교로 알려졌다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내정) 등 정권 실세들의 모교로 유명한 충암학원에서 전 이사장과 교장의 부고가 연달아 들려왔다. 연이은 궂긴 소식과 더불어 기로에 선 충암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 글은 마지막 글이다. <기자말>

[김행수 기자]

 충암학원(사진: 정민구 기자)
ⓒ 은평시민신문
충암학원 구재단이 물러난 이후 충암학원은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자세한 내용은 1,2편 참조). 그런데 이 충암학원의 상전벽해가 '말짱 도루묵'이 될 위기에 처했다. 충암학원 내에 이미 쫓겨난 구재단이 곧 복귀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른바 '왕정복고'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소문이 떠돌게 되었을까? 바로 법원의 판결 때문이다.

구 재단 손 들어준 1심 법원의 어처구니 없는 판결

2017년 6월 서울교육청은 특별감사에서 수많은 비리가 적발된 충암학원의 이사 전원에 대해서 임원 승인 취소 처분을 내리고 그해 8월 임시이사를 파견했다. 구 재단은 임원 승인 취소와 임시이사 파견에 각각 행정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패소해 충암학원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4년의 임시 이사 체제를 거쳐 2021년 7월 서울교육청과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임시 이사 체제를 해소하고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해 구 재단, 학교운영위원회, 관할청의 추천을 받아 최종 8인의 정이사를 선임한다.

그런데 쫓겨난 구재단(당시 이사장으로 이홍식의 장녀인 이영원 외 4인)은 정이사 선임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자신들이 4명의 정이사 후보를 추천하였는데 그 중에 1명만 최종 이사로 선임한 것이 사립학교의 자주성과 자율성을 침해한 것으로 관할청(서울교육청) 및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사실상 구 재단 측 추천 이사를 이사로 임명하여 그들에게 학교를 돌려달라는 주장이다.

각종 비리로 쫓겨난 구 재단이 반성과 자숙은커녕 자신들의 추천 몫이 적다고, 자신들이 원래 주인이니 자신들에게 학교를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이 추천한 후보 4명 중 1인은 쫓겨난 전 이사장의 딸이자 임원 승인 취소 당시 법적인 최고 책임자인 전 이사장이고, 또다른 1인은 전 이사장의 법정 변호사였다. 사실상 그들의 몸통과 대리인이었다.
 쫓겨났던 충암학원 구 재단이 청구한 정이사 선임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구재단) 승소 판결을 내린 1심 판결문 일부. 이 판결은 사실상 '학교를 구재단에 돌려줘라'는 말로 들린다.
ⓒ 법원 판결문(일부)
그런데 어이 없게도 1심 행정법원은 구 재단의 손을 들어주었다. 2023년 5월 서울행정법원 제7부(재판장 정상규 판사)는 "2021.7. 학교법인 충암학원의 이사로 각 선임한 처분을 취소한다"(2021구합79957)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정이사 선임 과정에서 구 재단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상 "구 재단에 학교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윤석열 정권 눈치 보기 판결?' 정치적 판결 의심

1심 행정법원의 판결에 서울교육청은 즉시 항소하여 현재 고등법원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애초 올해 2월 변론이 종결되고 4월에 선고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재판부는 선고가 예정되었던 4월 변론 재개를 선언하고 원고와 피고 양측에 석명(釋明) 요청을 한 후 8월 28일을 마지막 변론 기일로 지정했다. 그리고 선고 기일이 잡힐 예정인데 관계자들은 10월 전후 2심 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충암 1심 법원의 판결은 교육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우며, 기존 헌법재판소 결정과 다른 법원 판결에 비추어 보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정상화 단계에서 반드시 종전이사 등이 이사회로 복귀하거나 이들에게 정식이사 선임의 주도권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정관에 명시된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이 유지되고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면 학교법인의 정체성은 의연히 유지·계승되는 것이다. 설립 목적의 영속성은 말 그대로 정관에 명시되어 있는 설립자의 의사인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 그 자체가 유지·계승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 설립자나 종전이사 등의 종전 지위를 회복시켜 주어야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설립자로부터 최초의 이사 그리고 후임 이사로 이어지는 인적 연속성에 학교법인 이사 제도의 본질이 있다고 보는 견해는 이렇게 순차 선임된 이사들이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나, 그 인적 연속선상에 있던 종전이사 등이 회계부정이나 비리 등 이사 취임 승인 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고 그로 인하여 학교 법인의 정상적인 운영에 장애를 야기하였다면 이는 학교 법인의 설립 목적을 위반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이미 그와 같은 전제요건이 상실되었음을 의미한다.

(헌법재판소 2013. 11. 28. 선고 2011헌바136, 2011헌바180(병합), 2012헌바279(병합) 결정 사립학교법 제25조의3 제1항 위헌소원, 사립학교법 제24조의2 제2항 제3호 등 위헌소원, 사립학교법 제24조의2 등 위헌소원)

사립학교의 정이사 선임과 관련하여 자주 인용되는 아주 중요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 일부이다. 이 헌재 결정의 핵심은 "학교 법인의 정체성은 종전이사에 의한 인적 연속성이 아니라 설립 목적 및 정관을 통하여 기능적으로 유지·계승되는 것"라는 점, "종전이사 등이 회계 부정이나 비리 등 이사 취임 승인 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고 그로 인하여 학교 법인의 정상적인 운영에 장애를 야기하였다면 이는 학교 법인의 설립 목적을 위반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이사 선임을 통한 인적 연속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헌재 결정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사례가 바로 충암학원의 정이사 선임 과정이다. 즉, 충암 구 재단은 심각한 비리를 저질러 승인 취소되었으므로 건학이념(정체성)을 유지·계승할 자격을 상실했으며, 인적 구성의 연속성(종전이사의 정이사 선임)을 주장할 자격도 없음이 명확하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이런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판결을 내렸다. 충암 구 재단이 심각한 비리를 저질러 임원 승인 취소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추천한 정이사 후보를 배제하기 위해서는 구 재단 추천인사들에 의한 비리의 지속성과 재발 가능성이 증명되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들고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재판에서도 없던 논리이다.

구 재단은 수 차례 반복된 불법과 비리로 인하여 충암 학원의 건학 이념을 스스로 내팽개쳤으며, 정이사 추천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문인 상황이다. 1심 법원의 결정은 사립학교법이나 시행령,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운영 규정 어디에도 명시적인 법적 근거 조항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왜 1심 재판부는 이런 결정을 했을까? 윤석열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이른 바 정권 내 충암파의 눈치를 본 판결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충암학원은 야구와 바둑으로 잘 알려진 학교이다. 최근에는 정치 명문으로 부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충암고 출신이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하여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김용현 경호처장 역시 충암고 출신이다. 이외에도 정계와 재계 곳곳에 충암 동문들이 포진하고 있다.

현재의 충암 정이사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1심 재판이 길어지고 결국에는 구 재단의 손을 들어준 것이 '충암파'로 불리는 새로운 정권 실세들의 눈치를 본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애초 올해 2월 변론 종결 후 4월에 선고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법정 밖에서 새로운 사정 변경이 생긴 것이다. 작년 말에서 올해 초까지만 해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이길 것으로 예측되었는데 정작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야당의 승리 전망이 높아지더니 결국 실제 선거에서 야당이 압승, 여당이 참패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 때문인지 예정되었던 2심 선고가 미뤄지고 석명 명령이 내려지고 변론이 재개된 것이다. 어쩌면 이 때부터 진짜 실질적인 재판이 시작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 변론을 앞두고 충암 구 재단의 복귀를 우려하는 학교의 교사, 학부모, 졸업생, 지역 교사들, 은평 구민들의 실명 탄원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 충암학원(구 재단이 아닌 현재의 정이사 체제) 관계자에 따르면 졸업생과 교사 등이 직접 작성한 자필 탄원서만 수십 장에 이르고, 지역 구민과 서울 시민 등 공동 탄원서에 서명한 시민이 1000명을 넘겼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재량권 부정한 유일한 사례
 충암 구재단 퇴출을 환영하는 피켓을 든 지역주민들(사진 : 박은미 기자)
ⓒ 은평시민신문
임시이사 파견 학교의 정이사 선임과 관련하여 최근 의미있는 자료가 공개되었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을 지냈고 올해 총선에서 당선되어 교육상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문수 의원에 의하면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정이사 선임 결정에 대해서 재량권 남용으로 무효화 한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가 충암학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문수 의원실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임시이사 체제 사립학교의 정상화 추진 현황'과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이사 선임 결정에 대해 관할청을 피고로 전현직이사협의체(사실상 구 재단)가 이사 선임 처분 취소 청구의 소를 제기한 경우의 소송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즉, 관할청으로부터 이사 승인이 취소 되어 임시이사가 파견된 학교의 대부분은 정이사 선임에 대해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거나(정이사 선임을 수용하거나), 소송을 제기하였더라도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다는 것이 물적 증거로 드러난 것이다.

실제로 김문수 의원실 자료에 의하면,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출범 후 현재까지 임시이사 파견 학교 중 정이사가 선임된 학교가 20개인데, 이 중 정이사 선임을 그대로 수용한 학교가 8개(전체의 40%)였고, 수용하지 않고 소송을 제기한 학교가 12개(전체의 60%)였다. 소송을 제기한 12개 학교 중에서도 10개에 대해서 법원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와 관할청의 정이사 선임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여 구 재단에 패소 판결을 확정하였다.

단 하나 부산의 정선학원에서만 소송을 제기한 구 재단측이 승소하였는데, 이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판단이 재량권을 남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절차상 하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까,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정이사 선임 결정이 구 재단의 자율성을 침해한 재량권 남용으로 위법하다는 결정이 내려진 학교는 충암학원이 유일하다는 의미이다. 왜 충암학원에만 이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법리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전국 초중등사학 중 임시이사가 파견된 학교의 정이사 선임 후 구 재단의 소송 제기 현황과 결과. 사실상 판사와 교육전문가로 구성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정이사 선임 재량권을 부정한 유일한 사례가 충암학원 판결인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판결이 나왔을까?
ⓒ 김문수 의원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정치 권력이나 행정 권력의 입김에서 벗어나 중립적으로 분규 사학의 정상화를 도모하기 위해 도입된 법정 기구이다. 고도의 전문성과 중립성 보장을 위하여 대통령이 3인, 국회의장이 3인,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5인 등 11인으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정치적 입김에서 벗어나 법리적 결정을 하도록 하기 위해 대법원장이 추천한 위원(대부분이 판사 출신)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위원장 역시 대법원장이 추천한 판사 출신이 맡고 있다. 달리 말하면,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수십년의 재판 경험을 가진 고도의 법적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이 결정을 내리는 준 사법기관이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최소 5명 이상의 법률전문가를 포함하여 11명의 전문가들이 심사숙고하여 합의로 내린 결정을 '어떤 법적 근거 조항도 없이' 재량권 일탈 남용이라고 결정해버린 충암학원 1심 행정법원 판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결정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정이사 선임 결정의 근거조항인 사립학교법 시행령 제9조의7 제④항과 제 ⑤항은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각 단위의 추천을 받아서 정이사를 선임하도록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사학비리로 임원 승인이 취소된 구 재단에는 과반수 미만의 후보를 추천하도록 못 박고 있다.

그렇게 추천된 후보 중에서 누구를 최종 정이사로 임명할지에 대해서는 어떤 제한도 없다. 앞서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알 수 있듯 비리재단에 얼마의 몫을 정이사로 배정해야 한다는 어떤 근거조항도 없으며, 오히려 추천 과정에서부터 과반 이하로 받도록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

판사와 교육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고도의 전문성과 자율성에 대한 신뢰가 이렇게 표현된 것이다. 그런데, 1심 법원은 이런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과 이에 따른 관할청의 최종 정이사 선임을 "재량권 남용"이라는 논리로 간단히 뒤집고 구재단의 복귀 명분을 마련해 주었다.

서울고법 제9-3 행정부의 상식적 판결을 기대한다

충암학원 관련 2심 재판부의 결정은 단순히 구 재단의 권리(?) 구제 문제가 아니다. 수천 명 충암학원 학생들과 학부모의 교육받을 권리의 문제이며, 수백 명 교사의 교육할 권리의 문제다. 나아가 대한민국 사학이 차지하는 공교육의 절반을 바로세우는 문제이기도 하다.

비리로 쫓겨난 구 재단의 복귀로 학생들이 얼마나 고통받는지 우리는 상문학원을 통하여 똑똑히 목격한 바 있다. 아무리 큰 사학 비리를 저질러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들에게 학교를 돌려주어야 한다면 어느 사학이 학교를 교육기관으로 운영할 것이며, 어느 국민이 이런 학교에 학생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까? 이런 결정을 내리는 재판부를 어느 국민이 신뢰할 것인가?

이제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8월 28일 마지막 변론을 거치면 10월을 전후하여, 늦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 충암학원 정이사 선임에 대한 2심 재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구 재단 퇴출 전과 후로 나뉘는 충암학원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다시 비리와 전횡이 판치던 1인 독재, 세습족벌, 사학비리의 과거시대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학생과 교사의 행복을 꿈꾸는 교육기관인 미래 학교로 나아가느냐의 운명이 재판 결과에 달려있다. 서울고등법원 제9-3 행정부의 현명하고도 역사적인 판결을 기대한다. 아니 상식적인, 최소한의 법리적인 판결을 기대한다.

[비리 재단 복귀 하나, 기로에 선 충암학원]
① 전 이사장과 교장의 잇따른 부고, 충암학원에 무슨 일이(https://omn.kr/29w82)
② '똥 쌀 권리 달라' 요강 들고 시위하던 학교의 변신(https://omn.kr/29w83)
③ 충암학원에 왕이 돌아온다? 어이없는 법원 판결(https://omn.kr/29w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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