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쌀 권리 달라' 요강 들고 시위하던 학교의 변신
야구와 바둑의 학교로 알려졌다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내정) 등 정권 실세들의 모교로 유명한 충암학원에서 전 이사장과 교장의 부고가 연달아 들려왔다. 연이은 궂긴 소식과 더불어 기로에 선 충암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 글은 그 두번째 글이다. <기자말>
[김행수 기자]
▲ 족벌세습 구재단 운영 시기의 충암학원 시설 사진. 21세기 수도 서울에 이런 학교가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
ⓒ 고 홍기복 교장 제공 |
2007년, 충암중학교 건물 5층의 창문 틀이 떨어져 지나가던 학생이 머리에 맞았다.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간 학생은 30바늘을 꿰메는 수술을 받았다. 이 학교 창문이 떨어진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2006년에도 두 번이나 창문이 땅바닥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때는 다행히 다친 사람이 없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1년 사이에 3번이나 창문이 떨어지는 학교, 이게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학교였다.
▲ 2008년 4월 7일 열린 ‘충암학원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충암 행동의 날’ 참가자들이 똥 쌀 권리를 주장하며 요강을 들고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당시 충암학원이 운영하는 중학교 남학생 건물은 700명이 사용하는데 화장실은 1개였다. |
ⓒ 윤영훈 |
▲ 2008년 4월 7일 충암학원의 교사와 학생들이 "똥 쌀 권리를 보장하라"며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
ⓒ 윤영훈 |
본관 건물 내부에 화장실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유일한 화장실은 1층에 있었는데,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학생들은 한꺼번에 2층 맨 끝쪽에 있는 계단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서 1층에 있는 화장실로 가야했다. 비라도 오는 날은 아비규환이었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충암고 별관 건물에도 지하 1층에 화장실이 딱 1개가 있었다고 한다. 대변기가 8개밖에 없는 화장실을 14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사용해야 하니 쉬는 시간마다 북새통이었다. 이러니 이 학교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학교 앞에서 '요강'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기에 이른다. 그 때 외친 구호가 "똥 쌀 권리 보장하라"였다.
[장면3] 보수정당 서울시장 후보가 학교에 왜?
2014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충암고를 방문했다. 윤석열 대통령처럼 모교라서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교육 환경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정 후보가 현장 학교를 찾아 이를 살피는 사진이 필요했던 것이다. 선거운동원뿐 아니라 많은 기자들이 대동했다.
그렇게 하여 선택된 학교가 바로 충암이었다. 2008년 서울시교육청 안전점검에서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운영하는 충암학원의 건물 5개 동은 최하 등급인 D를 받았다. 소위 '재난안전위험시설'로 분류된 것이다. 상태는 심각했다. 건물 벽 곳곳에 금이 가 있었고, 천장에서는 물이 새기도 했다.
공사용 헬멧까지 쓴 정몽준 후보가 이 학교를 직접 방문하여 학교 노후 건물의 안전 상태를 점검하고 시설 개선을 공약한 것이다.
유력 정치인이 학교를 찾아온 것이 자랑할 일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한 것이다. 특히나 정몽준 후보 자신이 사립학교 이사장 출신이고, 사학재단과 새누리당의 끈끈한 관계는 온 국민이 알고 있는 상황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사학재단 이사장 출신의 보수정당 유력 정치인이 사학의 가장 부정적인 장면을 선거 운동에 활용한 것이다. 그 보여주기식 선거운동의 희생양(?)이 바로 충암재단이었다.
최악의 교육환경, 급식 비리 '그들만의 리그'
21세기 수도 서울 한복판의 학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첫 번째는 족벌로 운영되던 충암재단이 학생의 교육환경 개선에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나마 있던 시설마저도 학생의 공간을 막아서 그들의 공간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충암중 학생들이 본관 중앙의 정식 출입구가 있었음에도 빙 돌아서 건물 뒤편의 임시 출입구로 드나들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학생이 드나들어야 하는 정식 출입구를 막아서 중앙 로비를 재단 사무실(이사장실, 법인실로 불림)과 행정실로 바꾸면서 계단까지 폐쇄해 학생들이 교실을 갈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먼 길을 돌아서 가야만 했다.
학교법인의 시설 투자 부족으로 학생들이 가장 피해를 본 분야는 급식이었다. 그 유명한 "돈 없으면 급식 먹지마"라는 막말에서 시작된 급식 논란은 전면 감사로 이어져 대규모 급식 비리 적발로 이어졌다.
2015년 서울교육청 감사 결과와 이어진 검찰 수사, 법원 판결 등에 따르면, 충암학원은 직영 급식을 위장하면서 편법 위탁 운영을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식용유, 쌀 등 급식 식자재비를 부풀리고 무단 반출하는 수법으로 횡령했다.
당시 서울교육청의 감사 결과 발표와 법원 판결문 내용은 충격적이다.
이번 감사를 통해 ... 최소 총 4억 1,035만 원의 횡령 의혹을 적발하였으며, 그 책임을 물어 관련자 파면을 요구하고 검찰에 고발(수사의뢰)했다 ... 급식 배송을 용역업체에 위탁한다는 명목으로 용역근무일지를 조작하고 실제로는 학교에서 채용한 조리종사원에게 급식 배송을 담당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 최소 2억 5,668만 원 상당의 배송용역비를 허위로 청구하여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납품 받은 식재료를 빼돌리고 종이컵, 수세미 등 소모품을 허위 과다 청구하였으며 식용유의 경우, 반복 재사용과 과다 구입 등의 방법으로 최소 1억 5,367만 원에 달하는 식재료와 식자재비의 횡령 사실도 확인하였다."(2015년 서울교육청 감사 결과)
(피고인들은) 쌀 957포 시가 합계 3,828만 원 상당과 식용유 512통 시가 합계 1,280만 원 상당을 본사 창고로 가지고 가 이를 절취... 이 사건 범행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행해진 것이고 피해 액수도 크며 특히 절도죄의 경우 그 범행의 태양이 매우 불량한 점, 이와 같은 범죄는 학교 급식 예산의 부실을 초래하여 궁극적으로는 급식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으로서 성장기에 있던 당시 충암중고 재학생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것.(서울서부지방법원 2016고단2348 가. 사기, 나. 절도 판결문 일부)
▲ 충암학원 구재단 운영 당시 학교 직원과 급식업체가 짜고 쌀, 식용유 등 학생 식자재를 빼돌리고, 인원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수억 원을 횡령했다. 당연히 성장기 학생들 급식의 질은 땅바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
ⓒ 법원 판결문(편집) |
재판부는 이런 장기적이고 악질적인 범죄로 인하여 "학교 급식 예산의 부실을 초래하여 궁극적으로 급식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으로서 성장기에 있던 당시 충암중고 재학생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더 황당한 것은 그 이후 충암학원의 대응이다. 서울교육청은 급식 비리를 포함한 수많은 적발 비리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학교장과 행정실장 해임을 요구했다. 충암학원이 수억 원의 급식비리를 알았다면 급식비리의 공범이고, 몰랐다면 급식 행정의 책임자로서 무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충암학원은 이런 서울교육청의 감사 결과를 무시했다. 자신들이 채용한 직원과 위탁한 업체에 의해서 장기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범죄에 대해서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발뺌한 것이다.
자신들은 급식 비리를 알지 못한, 선의 피해자라면서 책임을 거부하고, 관련자들에 대해서 끝까지 징계를 거부했다. 관할청인 서울교육청에 사립학교 교원이나 직원에 대한 징계권이 없기 때문에 버티면 그만이었다. 결국 서울교육청은 급식 비리, 전 이사장의 학사 개입, 인사 부정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전원에 대한 승인을 취소했다.
상전벽해, 충암은 구재단 퇴출 전후로 나뉜다
서울교육청의 이사승인 취소 이후 2017년 임시이사에 이어 2021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정상화 결정 이후 현재의 정이사 체제로 전환했다. 구 충암학원 족벌재단이 퇴출된 후 충암의 학교 시설과 급식에는 상전벽해의 변화가 있었다. 임시이사에 이어 새로운 충암학원의 임원진은 교육환경 개선과 급식의 질 개선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기존 D등급을 받았던 건물들에 대한 리모델링과 보수가 꾸준히 이어졌고, 법인실로 막혀있던 중앙 현관을 복원하여 학생들의 출입구와 공간으로 돌려주었고, 건물 곳곳에 화장실을 설치하여 학생들의 '똥 쌀 권리'를 확보해 주었다.
▲ 상) 충암학원의 급식실, 체육관 준공식 장면 중) 준공식 후 참석자들과 학생들의 기념 사진 하) 준공식 후 함께 급식을 먹고 있는 조희연 교육감과 학생들 |
ⓒ 이윤찬 충암고 교장 |
족벌과 세습으로 운영하던 충암 구재단이 물러나고 들어선 새로운 윤명화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뿐 아니라 학생과 홍기복 교장을 위시한 교사들, 학부모 그리고 조희연 교육감을 비롯한 서울교육청, 김미경 구청장을 비롯한 은평구청, 은평구를 지역구로 둔 박주민 의원 등 교육계와 정치권까지 힘을 모은 결과였다.
충암학원의 역사는 구재단의 퇴출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육관과 급식실로 대표되는 교육 환경의 변화, 급식과 횡령으로 이어진 사학비리의 척결, 고용 세습과 금수저 채용으로 대표되는 채용 비리의 근절 등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졌다. 법인실과 이사장실로 이용되던 중앙 현관이 학생 출입구로 개방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2024년 8월 그 변화의 방향이 바뀌어 원래대로 돌아가느냐, 계속 전진하느냐의 기로에 섰다. 충암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비리 재단 복귀 하나, 기로에 선 충암학원]
① 전 이사장과 교장의 잇따른 부고, 충암학원에 무슨 일이(https://omn.kr/29w82)
② '똥 쌀 권리 달라' 요강 들고 시위하던 학교의 변신(https://omn.kr/29w83)
③ 충암학원에 왕이 돌아온다? 어이없는 법원 판결(https://omn.kr/29w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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