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세계로 피신하는 한국의 아이들, 온몸 흔들어야"
'꿈의 무용단' 안은미 감독. 단원 인터뷰
파리올림픽서 한·불 청소년 합동 공연 선보여
춤은 지적이고 우주적 언어, 무용 교육 확대 계기 되길
올림픽이 한창인 지난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코리아하우스 야외무대, 축제 한복판에서 한국 초등학생 열 명과 프랑스 현지 청소년 열 명이 함께 색동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2024 국제 아동·청소년 예술교육 워크숍 '프로젝트; 손'을 통해 이틀간 호흡을 맞춘 뒤 코리아하우스‘한국의 날’에 초청받았다. 이날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한 행사로 한국의 안은미 무용가가 예술감독을 맡고, 안은미컴퍼니와 프랑스 현지 비영리 무용단체 다포파(DaPoPa), 프랑스의 문화예술기관 미카당스(Micadanses)가 이번 워크숍과 공연을 위해 협력했다.
파리에서 무대에 오른 ‘꿈의 무용단’은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의 교육 철학을 모티브로 삼아 진흥원이 12년째 운영하는 ‘꿈의 오케스트라’사업을 무용 분야로 확장한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춤에 관심 있지만, 춤을 쉽게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연령층의 아동·청소년들이 매주 한 번씩 모여 무용 수업을 받았다.
안은미 감독은 “이번 파리 공연을 위해 기존 꿈의 무용단원 친구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진행, 서울을 비롯해 강릉, 논산, 안양 등 전국에서 모인 초등학생 단원 10명을 최종 선발했다”며 “무용 교육, 워크숍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에게 특별히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는 무대에서 뛰고 마음껏 놀고 아이들이 가진 상상력이 괜찮은 것이라고 말하고 응원하는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 20분의 공연에서 안 감독은 함께 ‘손을 잡고 성장한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개막식 리허설 디렉터를 맡아 매스게임을 지도했던 안 감독은 그때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기적을 이뤄낸 서사를 떠올리고, 이번 공연에서는 이를 경이로운 춤의 언어로 인상의 움직임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으로 표현하는데 포커스를 맞췄다.
그렇게 인종, 언어, 문화, 지역을 뛰어넘어 다양성과 개방성을 존중하자는 메시지가 아이들의 춤을 통해, 손에 손잡고 오륜기를 만드는 퍼포먼스로 완성됐고, 현장에서는 꼬마 예술가들의 움직임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한국에서 사전에 동작을 배우고 간 ‘꿈의 무용단’ 단원들은 현장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들에게 직접 동작을 알려주고,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며 다양한 자극을 받았다. 이루리(10) 단원은 “공연 중 무대 위에서 긴장해서 훌라후프를 놓쳤는데, 함께한 친구가 침착하게 도와줘서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며 “끝날 때가 되니 무대에서 내려오기 싫을 만큼 아쉽고,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몸으로 소통하고 연습하는 시간이 즐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함께 무대에 선 김효정(12) 단원은 “일요일마다 논산에서 서울로 가서 각 지역 친구들과 연습하는 것도 즐거웠는데, 파리에 가서 프랑스 친구들과 함께 무대를 준비한다고 하니 엄청난 책임감이 생겨서 긴장이 많이 됐었다”면서도 “그저 잘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느라, 정신없이 하다 보니 어느새 공연이 끝나있었다”라며 웃음 지었다.
이청아(11) 단원은 "공연 시간은 20분인데 의상을 4번을 갈아입어야 해서 정신없었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며 프로다운 면모를 보였고, 장세연(12) 단원은 "처음엔 우리가 동작을 익혀 가서 프랑스 친구들에게 조금씩 알려줬는데, 금방 따라 하더니 이내 다리도 찢고 더 유연한 동작을 하는 걸 보고 서로 경쟁하면서 말은 잘 안 통했지만 몸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쌓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참 뛰어놀고 움직여야 할 나이, 하지만 학교 정규 교육에 무용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안 감독은 몸의 언어, 몸을 통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는 몸을 흔드는 것을 경박하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춤은 굉장히 지적이고 우주적인 언어이고, 내가 살아 있음을 일깨우는 과정이다. 현재 무용 수업이 없는 학교가 대다수다. 사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몸으로 표현하는 상상력, 몸의 언어에 대한 이해인데…."
무엇보다 현대무용을 '가장 민주적인 교육방식'이라 역설한 안 감독은 무용을 통해 자기표현과 교감을 배울 수 있다고도 말했다. 안 감독은 "춤을 통해 타자와 교감을 갖게 되면 공격성도 덜해지고, 타인에 대해 베푸는 것이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또 궁극적으로 공연은 질서를 만든다. 아이들이 정말 말을 안 듣다가도 공연 때는 말을 듣는다. 공연의 중요성, 무대에서의 책임감과 긴장감을 어린 친구들도 오롯이 느낀다. 이게 이 아이들이 1년 치 배워야 하는 학습의 효과와 같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살다 보면 가뜩이나 세계가 좁아지는데, 몸마저 가두면 어떡하나 싶다며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단원들을 바라보는 안 감독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 자꾸 온라인, 가상 세계로 피신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몸을 써야 한다"며 "춤을 추다 보면 자기 자신도 튼튼해지고 세상에 대한 포용력이 생긴다. ‘꿈의 무용단’이 계기가 돼서 자신의 몸에 내재한 창조적 에너지를 발견하고, 또 이런 프로젝트가 우리 교육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더 큰 사업으로 그 기회가 확장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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