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삶을 이기는 힘은 그저 '사랑'

최혜정 2024. 8. 23.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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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문학을 읽는 즐거움] 권정생 글, 김환영 그림 <빼떼기>

우수한 아동 문학을 소개합니다. 어른에게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동 문학을 통해 우리 아동 문학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문학 속에 깃든 아이들의 마음과 어른의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기자말>

[최혜정 기자]

덴마크에 안데르센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권정생'이 있다. 안데르센의 동화에 풍부한 상상력과 아름다운 문장이 있다면, 권정생의 동화에는 가슴 저리는 삶과 그 삶을 조근조근 다독이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아이들의 책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 먹고 시작하는 첫 이야기를 권정생의 <빼떼기>로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정생의 이야기는 언제나 작은 것들의 소중함과 어둠 속의 희망을 노래한다. 우리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우리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시작으로 <빼떼기>는 적당할 뿐 아니라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갖은 고난을 겪어내고도 기어이 살아가는 대견한 빼떼기의 삶이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책 이야기를 하며 살아온 세월이 이십여 년이다. 저마다 다른 각각의 아이들이었지만 언제나 아이들은 맑고 푸르렀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들 속에는 맑은 아이들의 생각이 있었고, 푸릇푸릇 자라는 아이들의 마음이 있었다. <빼떼기> 역시 그런 이야기이다.

빼딱빼딱 걸어서 빼떼기와 순진네 가족
 빼떼기 권정생 문학 그림책 2, 권정생(지은이),김환영(그림)
ⓒ 창비
<빼떼기>는 1988년에 출간된 <바닷가 아이들>(창비아동문고 106)에 수록된 단편 동화이다. 그림책 작가 김환영의 그림과 함께 권정생 추모 10주기 그림책으로 재탄생한 것은 2017년이며, 출판사 창비의 노력 덕분이었다.

빼떼기 이야기와 강렬하고 선 굵은 김환영의 그림을 만나게 한 것은 절묘한 선택이었다. 김환영의 그림은 마치 이중섭의 그림처럼 거칠지만 묵직하고 깊이 있다. 그리고 슬프도록 한국적이다. 애절한 이야기가 담담히 이어지며 차마 담지 못한 분위기와 감정이 그림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빼떼기는 순진이네 가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병아리다. 왜 이름이 빼떼기인가 하면 똑바로 걷지 못하고 빼딱빼딱 걸어서 빼떼기이다. 빼떼기는 엄마 닭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병아리 시절에 잘못하여 뜨거운 아궁이 속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주둥이와 털이 모두 타서 문드러지고 떨어져 나갔다. 종아리도 오그라들어 펴지지 않았다. 그런 병아리를 순진이네 식구들은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살뜰히 보살핀다.

조그만 괴물 같아진 병아리를 제 어미도, 제 아비도 못 알아보고 쪼아대도 알몸이 된 빼떼기에게 옷까지 지어 입히며 보살핀다. 순진이 어머니가 불에 덴 병아리를 방으로 데리고 가 참기름을 발라주고 품어주는 모습은 불 뗀 아궁이보다 더 따뜻하다. 아이들과 아버지 역시 빼떼기를 홀대하지 않고 모두 정성으로 보살핀다. 그런 모습에 감동하여 동네 사람들까지 똑같은 말을 한다.

"빼떼기는 절대 잡아먹거나 팔아서는 안 됩니다. 언제까지라도 제명대로 살다가 죽을 수 있도록 길러야 합니다."
 그림책 <빼때기>의 한 장면.
ⓒ 창비
사랑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어떤 모습을 가졌더라도 살아있음이 용기이며 아름다움임을 깨닫게 한다.

잘 먹지 못해 잘 자라지도 못하고, 움직임도 둔한 빼떼기는 어느 날 동네 개에게 날개를 물리는 일까지 당한다. 그래도 빼떼기는 또 기어이 살아나 순진이네 가족들과의 동행을 이어간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도 어느날 갑자기 머리에 조그마한 벼슬이 생기고, 엉거주춤 목을 늘이면서 '꼬르륵' 하고 수탉 울음 소리를 낸 빼떼기, 서툴지만 수탉의 구실을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며 식구들은 모두 깔깔 웃으며 대견해한다.

다른 병아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늘 혼자 있게 되어 순진이 어머니 꽁무니나 따라 다니게 된 빼떼기가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은 '사랑'이었다. 순진이네 가족의 사랑이 없었다면 빼떼기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났을 것이다.

해가 가고 달이 가고, 다른 닭들은 모두, 자라고 팔려가고 하는 일들이 생기지만 빼떼기는 여전히 순진이네 가족들과 함께 한다. 아무도 빼떼기를 사 갈리 만무하니 가족이 되어 살아갈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던 어느날, 1950년 6월. 순진이네는 피난을 가야했다. 피난을 가기 전에 닭과 병아리들을 모두 내다 팔았지만, 빼떼기는 여전히 아이들의 품에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험한 피난길을 위해 결단을 내린다.

"할 수 없다. 본래부터 짐승을 키우는 건 잡아먹기 위한 것이니 빼떼기도 우리가 잡아먹자."

아버지는 차마 자신이 할 수 없어 앞집 태복이네 아버지를 불러 빼떼기의 목을 비틀어 달라고 부탁한다. 순진이 어머니와 순진이, 순금이는 그 모습이 보기 힘들어 부엌으로 들어가버린다. 어머니가 순진이와 순금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마지막 장면은 독자의 마음까지 울린다.

원없이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했을 것

권정생의 동화는 자주 슬프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려는 '동심천사주의'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아픈 현실 속에서도 살아내려는 의지와 함께 산다는 것의 희망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죽음'은 그저 생명의 끝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희생'에 맞닿은 '희생과 사랑'이며 삶의 또다른 발걸음이다. 민들레 꽃을 피워낸 '강아지똥'의 희생처럼.

몽골의 악기 마두금에는 유목민 소년 '수호'의 전설이 있다. 권력자의 탐욕으로 수호의 백마가 희생되었을 때 뼈와 가죽과 말총으로 마두금을 만들어 악기 소리에 사랑하는 말과의 추억을 담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끔찍해 보이는 빼떼기 이야기의 결말도 어디에도 보낼 수 없고, 내버려둘 수도 없는 순진이 가족의 간절한 마음이 깃든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마음은 본디 아이들의 마음이다. 아니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인간 본연의 마음이랄까. 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생명이 있는 것들에 대한 경외는 우리 마음 밑바닥에 언제나 쌓여있는, 때 묻지 않은 마음이다. 순진이네 가족들은 모두 이 하얀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순진이, 순금이라는 이름처럼 순수했다. 이 슬픈 사랑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이 흘러나와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은 빼떼기의 삶이 따뜻했으며, 순진이네 식구들의 사랑은 끝까지 온전했기 때문이다. 비록 전쟁이라는 암울한 현실이 그들을 덮쳐도 원없이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빼떼기일까, 순진이네 가족일까? 무엇이 되었든 함께 있음이 힘이 되고, 사랑함이 기쁨이 되는 삶을 만든다면 슬픈 이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행복할 수 있으리라.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를 외친 유치환 시인처럼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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