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한동훈, 길을 잃었다
[이충재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형법 제98조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한 뒤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 대표는 이 자리에서 검찰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무혐의 처분에 대해 "팩트와 법리에 맞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
ⓒ 남소연 |
명품백 입장 후퇴는 한동훈이 현재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며 호시탐탐 끌어내릴 기회를 노리는 친윤 세력의 위세에 눌려 옴짝달싹 못하는 게 그의 현실이다. 압도적인 지지로 당대표가 됐지만 비주류 원외 대표라는 설움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한동훈당' 구축은 언감생심이다.
한 대표 취임 한 달을 꿰뚫는 열쇳말은 조바심과 성급함이다.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모습이다.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둔 그로선 당권·대권 분리규정으로 불과 1년 남은 임기 내에 눈에 띄는 실적을 거두려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출되자마자 던진 여야 당대표 회담을 재빨리 낚아챈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차기 여당 대선 주자는 자신이라는 점을 공고히하려는 계산이 깔려있었을 터다.
한 대표가 호기롭게 나섰지만 그가 대표 회담에서 내놓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제3자 추천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은 점점 자충수로 굳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다 받을 태세인 민주당과 어느 조건을 붙여도 특검은 안 된다는 당내 주류 사이에서 한동훈은 길을 잃었다. 이 대표의 집요한 공격을 한 대표가 막아낼 방도는 없다. 거기서 "내 입장은 그대로"라고 얘기하는 건 얼마나 모양 빠지는 일인가.
이 대표가 강력히 주장하는 '25만원 지원법'도 한 대표로선 난감한 문제다. 이미 당 지도부 회의에서 "25만원법에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터라 무조건 반대만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왜 25만원만 주냐, 10억 100억씩 주지"라며 작심비판한 윤석열 대통령과 엇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혹 여야 대표가 합의한들 대통령실이 이를 수용할 리 만무하다.
계속 드러나는 미숙함... 한동훈의 비전 과연 뭔가
한 대표가 여야 대표 회담을 TV생중계로 하자고 나온 건 자신의 한계를 감안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불리한 현안은 특유의 한동훈식 화법으로 피해나가고, 이재명의 약점을 공격해 유효타를 높이자는 전략이다. 영수회담이나 여야 대표 회담은 꽉 막힌 정국에 돌파구를 얻자는 것이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토론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각한 것이다. 대표 회담을 너무 성급하게 받은 게 리더십 미숙을 드러낸다는 평이 당에서도 나온다고 한다.
한동훈에 대한 보수지지층의 요구는 당장의 치적쌓기가 아니다. 보다 긴 안목에서 한동훈만의 가치와 미래 비전, 보수혁신에 대한 구상을 보여달라는 거다. 지난 한 달동안 한 대표는 반대세력을 끌어안지도, 용산을 설득하지도,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기억나는 건 정점식 정책위원장 교체 논란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뿐이라고 실망하는 보수층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이 최근 단행한 인사에 잡음이 쏟아지지만 한 대표는 이렇다할 말이 없다. 친일 인사들 중용으로 광복절 행사가 반쪽이 되고 외교안보 라인 인사에 의문이 커지는데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런 어정쩡한 태도로 한 대표가 표방한 중도·수도권·청년(중수청) 외연 확장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한 대표 취임 후 당 지지율도, 본인의 호감도도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출마를 반대했던 측에서 제기한 주장은 현 상황에서 대표가 된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논리였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인 야당 사이에서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주장이었다. 지금 한동훈의 처지가 딱 그대로다. 국민의힘의 한 원로는 한 대표에게 "머리는 검증됐지만 가슴으로 정치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현재의 한동훈은 가슴뿐 아니라 머리도 좋은 점수를 받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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