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영호 "한·미·일, 10월 워싱턴서 北인권 주제로 첫 회의"
"한·미·일이 1.5트랙(반관반민·半官半民) 형식으로 모여 북한 인권 문제 뿐 아니라 8·15 통일 독트린도 논의할 계획입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21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10월 초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북한인권대화를 열 계획"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통일 독트린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정책을 종합적으로 논의할 것"이라는 게 김 장관의 설명이다.
한·미·일이 북한 인권을 주제로 별도의 회의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국무부, 일본 외무성과 함께 한국에선 통일부가 행사의 주축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통일 독트린과 연계한 북한 인권 개선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어서다.
이와 관련, 김 장관은 "이제는 북한 인권 문제가 곧 안보 문제"라고도 강조했다. 또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물론이고, 우즈라 제야 미국 국무부 민간안보·민주주의·인권 담당 차관이 직접 관여하는 행사"라며 "정부 당국자뿐 아니라 비정부기구(NGO) 등 민간 분야, 미국 의회에서도 관심 있는 인사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최근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북한 MZ 세대'의 탈북이 늘고 있다"며 최근 각기 강화도 교동도와 강원도 고성을 넘어 귀순한 북한 주민과 북한 군인 모두 20대라고 밝혔다. 인터뷰는 유지혜 중앙일보 외교안보부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통일 '독트린'이라고 이름 붙인 건 어떤 배경인가.
A : 독트린은 국제정치의 전환기에 국가 지도자가 대외 정책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한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전략경쟁, 북핵 위기 고도화, 북한 주민 인식 변화 등을 고려해 만든 통일 비전으로 이해해 달라.
Q : 지금 남북 관계가 중요한 전환기에 접어들었단 뜻인가.
A : 북한은 동족 관계를 부정하고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하는 등 '통일 지우기'에 나섰다. 냉전이 종식되는 시점에 남북이 합의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이 커다란 전환기 내지는 변곡점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Q : 사실상 흡수통일 지적이 나온다.
A : 흡수통일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부터 정리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도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게 아니다. 동독 주민이 자결권 행사를 통해 '가입 통일', '합류 통일'을 한 것이다. 따라서 흡수통일을 '힘에 의한 강압적 현상 변경'이라 정의한다면 그건 우리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개발해 우리를 위협하는데 '체제를 상호 인정하는 만큼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
Q : 의제 제한 없는 남북 실무대화협의체를 제안했지만, 북한이 호응할 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것 같은데.
A : 역대 어떤 정부가 제시한 대북 대화 제의보다도 유연하고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의제의 예시로 제시한) 북한 인권 문제도 개념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북한 내부 주민과 해외 북한이탈주민의 인권 문제, 그리고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등 북한이 우리 국민에 가하는 인권 문제로 나눌 수 있다. 또 가령 북한 당국이 핵·미사일 개발 자금을 마련하려 노동자를 노예 노동시키며 불법 사이버 활동을 조장한다면 이는 인권뿐 아니라 세계 평화,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Q : 김정은이 '2국가론'을 헌법에 반영하는 작업이 미뤄지고 있다.
A : 북한이 헌법 개정에 나서 선대의 유훈인 통일 등 개념을 부정한다면 북한 주민들 간에 이념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개헌 뒤 북한 정권이 주민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특히 개헌을 통해 북한이 새로운 해상국경선을 어디에 그을지도 대단히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한반도를 '상시적 분쟁지역화'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북방한계선(NLL)을 수호한다는 전제 하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대비하고 있다.
Q : 북한이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두고 모종의 도발을 할 것이란 관측도 있는데.
A : 북한도 이번 미 대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란 건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다만 북한의 어떤 도발이나 행동이 미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상당히 미지수다. 북한이 이를 염두에 두고 7차 핵실험 같은 도발을 감행한다면 상당한 오판이다. 북한은 서울을 거치지 않고선 워싱턴으로 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Q : 한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북·러 간 군사협력을 우려한다.
A : 우크라이나 전쟁이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북한이 러시아와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은 한반도는 물론 유럽과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 현재 글로벌 안보 상황이 아시아와 유럽을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큼 포괄적인 시각에서 안보 정세를 분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Q : 코로나19 봉쇄가 풀리면서 탈북민 국내 입국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는데.
A : 지난해 196명의 탈북민이 국내에 입국했는데, 절반 이상이 2030 세대다. 지난 8일과 20일에 각각 귀순한 민간인과 군인도 20대로 확인됐다. 탈북 동기에도 상당히 변화가 있다. 과거에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자녀 교육이라든지 자신의 삶과 미래 비전 같은 것들이 탈북 동기로 나타나고 있다. 또 시장화와 함께 휴대전화 보급률 증가로 인한 정보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정권보다 내 자신과 가족의 삶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적인 의식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도 탈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Q : 북한 주민을 통일의 주체로 포용한다는 전략 가능한지
A : 남북한 주민 간에는 직접 소통과 간접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탈북민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내놓는 증언이나 보고서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있고, 북한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한국 드라마와 같은 영상을 시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남북 주민 사이의 편견이 상당히 불식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세계사를 보면 권력이 문화의 전파를 차단해 성공한 사례가 별로 없다. 북한 정권이 반동문화사상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쳥년교양보장법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을 통제하는 것 자체가 그만큼 북한 내에 한류가 많이 퍼져 있다는 증거다.
Q : 김정은의 딸 주애의 후계자 가능성은
A : 2022년 11월에 처음 등장한 이후 예우 수준과 군사 현장에 방문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열어놓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나중에 다른 (자녀를 내세우는)선택을 한다면 후계구도와 관련해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선 북한이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전통이 강한데 어떻게 여성이 지도자가 될 수 있냐는 질문이 나오는데 북한은 수령중심의 전체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지도자가 결정하는 방향으로 후계자가 결정될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은 세습적 독재 권력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세습체제가 계속되는 한 피해자는 결국 북한 주민이 될 수밖에 없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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