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2인자가 이끈 ‘극단적 우향우’
벤저민 타이텔바움 지음, 김정은 옮김
글항아리, 372쪽, 1만9800원
유럽을 비롯해 러시아와 미국, 남미까지 전 세계에 극우 이데올로기가 득세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권력의 중심부도 장악했다. 책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정책 조언을 해온 극우 전략가 스티브 배넌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책사로 알려진 극우민족주의자 알렉산드르 두긴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를 통해 극우 이데올로기의 뿌리를 파헤친다. 인류학자이자 북유럽 극우 정치를 연구해 온 저자는 배넌과 두긴의 사상적 공통점이 ‘전통주의’라는 것을 의심하고 장시간 직접 인터뷰를 통해 마침내 확인한다.
전통주의(Traditionalism, 대문자 T로 표기한다)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나 중세의 종교적 전통을 고집하는 사상적 흐름으로 100여년간 지하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반이민주의적 내셔널리즘과 결합하면서 극우 극단주의로 흐르고 있다. 저자는 “2016년 무렵 미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당시 트럼프 후보의 수석 전략가인 배넌이 전통주의의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슬슬 입에 담기 시작했었다. ‘배넌이 어쩌다가 전통주의를 접했을까’ ‘배넌이 미국과 전 세계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 걸까’ ‘다른 어떤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면서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배넌과 두긴의 사상적 연결을 찾으려면 먼저 전통주의의 창시자 르네 그농과 계승자 율리우스 에볼라를 살펴봐야 한다. 프랑스인 그농은 개종 무슬림으로 숙명적이고 염세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다. 현재는 암흑의 시대로 현재를 저주하고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탈리아 남작 출신의 에볼라는 인종에 따라 위계가 정해지며, 흰 피부의 아리안이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인종으로 최상위에 자리한다고 주장한다. 그 역시 옛 전통사회를 황금시대로 묘사한다.
대학 시절 명상을 접한 이후 배넌은 불교와 도교, 힌두교 등 동방종교에 빠져 있었다. 해군 시절 구축함을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닐 때 동료들이 정박지에서 밤 문화를 즐기는 동안에도 그는 서점을 찾았다. 홍콩에 정박했을 때 늘 가던 서점에서 발견해 가방에 넣은 책은 ‘인간 존재와 생성:베단타학파의 지혜’였다. 바로 전통주의의 창시자 그농이 쓴 책이었다. 이제 그는 전통주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소련 시절 두긴은 파시즘, 나치즘, 내셔널리즘, 신비주의 등을 탐닉했던 ‘유진스키 서클’이라는 이름의 지하 지식인 사회운동에 가담했다. 당국의 탄압에 서클이 해체됐지만 두긴을 포함한 몇몇 멤버들은 남몰래 독서를 이어갔다. 우연히 레닌 국립도서관에서 에볼라의 책을 발견했다. 에볼라의 책은 그들이 숭배하던 모든 것을 합친 ‘화신’이었다. 에볼라에 빠진 두긴은 저서를 직접 번역하기 위해 이탈리아어를 배웠다고 전해진다. 두긴은 이후 전통주의와 러시아 정교 내셔널리즘을 접목할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헌신하게 된다. 1997년에는 러시아가 국제 관계에서 주도권을 재탈환하고 미국과 서구 유럽 동맹국의 영향력을 축소할 방법을 제시한 ‘지정학의 기초’를 집필했다.
배넌과 두긴은 권력의 배후로 등장한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들고나온 3대 공약(해외에서 일자리 찾아오기, 이민자 줄이기, 해외 참전 중단)은 배넌의 작품이다. 트럼프 재임 기간에는 미국과 러시아가 하나의 입장이 되도록 조율했다. “러시아의 주도권을 되찾자”는 두긴의 구호는 러시아와 조지아·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또한 두 사람은 세계 곳곳의 극우정당들과 교류하며 도왔다. 헝가리 극우정당 요비크의 배후에는 두긴이 있었고, 배넌은 ‘열대의 트럼프’로 불리며 2018년 브라질 대선에서 집권에 성공한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지원했다. 그리고 배넌과 두긴은 둘이 비공개로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는 사실을 저자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저자가 전통주의자들의 득세를 우려하는 것은 그들이 “더 나은 미래, 밝은 미래를 위해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대리해 (미래와) 싸우고자 한다”는 점이다. 전통주의자는 우리 시대가 ‘파괴의 시간’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업적’을 때려 부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려한다. “만약 세계 각국의 지도자 중 결정적 소수가 전통주의자의 자문을 받는다면.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진보보다 퇴보를 추구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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