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죽을 때까지 인간답게!
의존적 존재… 연약·부족함
모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인 것
여행 목적이 ‘쉼’이나 ‘재미’에만 있다면 우리 가족의 여행은 그렇게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해변이든 강원도의 시원한 계곡이든 알츠하이머 아버지와 함께하는 여행에는 제대로 된 ‘피서’가 가능할 수 없었다. 한 공간에 머물 수 없는 배회 증상 덕분에 이 명소에서 저 명소로 이동하는 과정만 완수해도 우리는 꽤 성공한 여행이라 자족했다. 그런데도 가족여행을 그만둘 수 없었다. 평생 목사로 살며 여행이라고는 교회 수련회가 전부였던 아버지에게도, 아버지 돌보느라 노년의 자유를 빼앗긴 어머니에게도 진짜 여행의 추억을 꼭 남겨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지난 5월 아버지 실종 사건을 겪으며 잠금장치가 없는 숙소 여행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숙박이 여행의 필수조건은 아니지 않은가. 더위를 피해 산책할 수 있는 나무 그늘이 펼쳐져 있고, 장애인 화장실이 잘 마련되어 있으며, 짧지만 배 타는 경험까지 할 수 있는 곳이라면 한나절이라도 여행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남이섬은 이러한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완벽한 여행지였다.
오랜만에 낯선 곳을 여행하며 기분을 전환한 우리는 남이섬 근처 닭갈비 식당에서 식사했다. 늘 그렇듯 아버지는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우리는 어린아이 대하듯 이런저런 것들로 관심을 끌어 잠시라도 다시 의자에 앉게 하거나, 그것도 어려우면 가족끼리 번갈아 가며 아버지와 식당 주변을 잠시 걷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식사를 이어갔다. 다행히 식당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식당 아주머니는 아버지를 돌보는 어머니의 노고에 안타까운 말을 건넸다.
그의 따뜻한 관심은 감사했지만 한 가지 말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볶음밥을 볶아주던 아주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시 식당 밖을 나간 틈을 타 우리에게 부모를 잘 보살핀다고 칭찬했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자식한테 폐 끼치지 말고, 건강하게 살다 가야 할 텐데.” 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얼마 전 지인한테서 들은 “늙어서 남에게 기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저축하고 운동한다”라는 말이 귓가에 다시 맴돌았다. 나는 그들의 말이 치매 환자에 대한 멸시가 아니라 자기 노년에 대한 걱정을 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개인들의 그런 걱정이 사회의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에서는 치매 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취약한 삶에 대한 걱정 이면에는 자아를 상실하고 신체에 대한 조절 능력을 상실하는 삶을 부끄럽다거나 수치스럽게 여기는 생각의 억압이 너무 쉽게 확대 재생산된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심장마비가 아니고서야 우리는 모두 죽음으로 인도되는 마지막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타인이 자녀가 될 수도 있고, 의료진이 될 수도 있고, 요양보호사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결국 잘 죽기 위해서라도 삶의 일정 시간 동안 타인의 손을 빌려서 살아야 한다. 오늘날 너무도 많은 사람이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최상의 상태이자 축복받은 삶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개별자의 주체성과 자유를 ‘인간다움’의 본질로 찬양했던 서양 근대 철학의 낡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타인과 돌봄을 주고받는 협력으로 사는 ‘상호 의존의 존재’다. 그러니 우리가 정말로 걱정하고 노력해야 할 것은 개인의 행운과 능력에 따른 ‘건강한 노년 만들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서로를 돌보는 협력의 제도와 문화를 견고하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에 맞춰져 있어야 한다. 치매 환자가 끼치는 폐가 너그럽게 환대받는 사회에서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연약함도, 기쁨도, 부족함도, 감사함도 가장 인간답게 우리에게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김혜령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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