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의 시시각각]보편 증세, 어렵지만 가야 할 길

김원배 2024. 8. 2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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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논설위원

2013년 8월 출범 6개월이 된 박근혜 정부가 세제 개편안을 내놓자 중산층·서민 증세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로의 전환을 추진했는데, 연 소득 3450만원 이상 근로자의 세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이 문제였다. 여기에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거위로부터 고통 없이 깃털을 뽑는 방식”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키웠다.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의 재무장관인 장 바티스트 콜베르의 말을 인용한 것이지만 타오르는 민심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이렇게 비판받은 이유는 박근혜 정부가 기초연금 도입 등 복지 확대를 내세우면서도 “증세는 없다”는 주장을 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증세=세율 인상’이라고 주장했지만, 납세자 입장에선 개편안을 증세로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 정부는 연 5500만원 소득의 근로자는 세 부담이 늘지 않도록 하는 수정안을 마련했다.

「 저출산 추가 부담 반대가 68%
복지 수요 느는데 재원은 한계
세금의 효능감부터 심어줘야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소득세법 개정으로 ‘세금폭탄’ 논란이 일었다. 당시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 공제에 나서며 면세자 비율은 3년 연속 40%대를 기록했다. 중앙일보

당시 세법 개정 원안은 고소득층의 부담도 늘렸지만,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은 면세자도 줄였다. 보편 증세였다. 그 이후 원안에 따라 30%대로 줄어들게 된 면세자 비율이 수정안에 따라 40%대 후반으로 늘어난 자료를 보고 ‘이게 맞는 것인가’ 자문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증세는 없다”라는 메시지 관리였다. 차라리 이렇게 설득할 수는 없었을까.
“기초연금 같은 복지 확대를 위해선 많은 사람이 함께 세금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더 많이 부담하게 됩니다.”

쉽지 않았겠지만 그렇게 원안을 관철했다면 획기적인 일이 됐을 것이다.

지난 6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의뢰한 ‘결혼·출산·양육 인식 조사 연구보고서’가 공개됐는데,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온다. 저출산 정책을 위한 추가 세금 부담 의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2011명 중 68.3%가 "그럴 의향 없다"고 응답했고, 31.7%만이 "그럴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저출산 정책이 효과가 없었다’는 응답이 90.8%라는 점을 보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깊게 깔려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저출산 대응 입법을 추진한 일본도 반대가 많았고, 효과가 없을 것이란 반응이 우세했다. 그럼에도 집권 자민당은 ‘어린이·육아 지원법 개정안’을 올해 통과시켰다. 2026년부터 1인당 평균 월 450엔(약 4050원)을 부담하는데, 가입 보험과 소득에 따라 차이를 둔다. 이를 통해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고등학생까지 확대하고 육아휴직급여도 인상했다. 한국의 경우 아동수당 지급 대상이 만 8세 미만이다.

일본방송협회(NHK)가 지난 1월 10일부터 사흘간 전국 18세 이상 성인 1,215명을 대상으로 '저출산세 월평균 500엔 징수가 타당한가'를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4%가 저출산세를 반대했다. 중앙일보


위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일·가정 양립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먼저 해야 할 것을 묻는 질문에 ‘제도 사용으로 인한 급여 삭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25.1%로 가장 많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는 지난 6월 육아휴직급여 상한을 150만원에서 160만~250만원으로 올리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예산을 확보해 내년부터 시행한다고 하는데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다. 여기에 정부·여당은 중산층 감세를 내세우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13조원이 드는 1인당 25만~3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 법안을 통과시켰다. 어떤 정책이든 적절한 재원 마련 대책이 없으면 결국 나랏빚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본처럼 특정 목적을 위한 보편 증세를 할 수는 없을까. 여론 조사에서 보듯 반응이 좋지 않을 것이다. 치솟은 물가도 부담이다. 하지만 언젠가 증세는 해야 한다. 적정 규모의 목적세로 시작하면 어떤가. 예컨대 출생아 수 급감에 대처하기 위한 부담금이라면 아동수당이나 육아휴직급여 등으로만 지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납세자에게 내가 낸 세금이 취지대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는 ‘효능감’을 줘야 한다. 반대로 받는 이들에겐 동료 시민이 소중하게 모아준 것이란 인식이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사회 연대가 작동한다. 험난하고 어렵지만 가야 할 길이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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