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백의 아트다이어리] 파리와 뉴욕은 어떻게 미술의 중심이 됐나
유럽 국가들의 문화적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바로 유럽에서의 ‘천국’과 ‘지옥’ 이야기. 천국이란 ‘프랑스 사람이 쉐프이고, 이탈리아 사람이 연인이며, 독일 사람이 기계수리공이고, 영국 사람이 경찰인데, 이 모든 것을 스위스 사람이 조직하는 곳’이다. 이에 반해 지옥이란 ‘영국 사람이 요리하고, 스위스 사람이 연인이며, 프랑스 사람이 기계를 다루고, 독일 사람이 경찰인데, 이 모든 것을 이탈리아 사람이 주관하는 곳’이라는 것. 유럽을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특징들인데, 각 문화의 장·단점을 재미있게 포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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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예술인들 모여든 두 도시
‘다름’의 힘으로 문화 중심 부상
다양성과 함께 공존의 연대도
문화도시 서울도 고민할 문제
」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전공 관계상 이번 여름에도 나는 해외 미술관과 전시공간을 꽤나 헤집고 다녔다. 그러면서 유럽식 유머를 창작과 연관하여 떠올리게 되었다. ‘다름’이야말로 창작의 근거라는 것. 다름의 공존을 실천하는 도시는 그래서 위대하다. 근현대미술사 영역에서 보자면 파리와 뉴욕을 들 수 있다. 각 나라의 문화는 다른 것이고, 위계를 둘 수 없다. 특히 미술에서의 문화적 차이는 갈등 요소라기보다 창작의 근본이다. 그 사례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의 파리, 그리고 그 이후의 뉴욕에서 볼 수 있다.
파리의 아방가르드 집단은 피카소, 샤갈, 모딜리아니, 브랑쿠지, 자코메티, 리베라 등이 속했는데, 이들은 놀랍게도 모두 외국인이었다. 순서대로 스페인, 러시아, 이탈리아, 루마니아, 스위스, 멕시코 출신이다. 이들은 20세기 초 파리의 몽파르나스 거리의 돔(Dome)과 로통드(Rotonde·사진) 등의 유명 카페들에 모여 서로 다른 악센트로 맘껏 떠들며 활발한 교류를 가졌다. 오늘날에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이러한 카페들에 가면 늘 당당했던 피카소나 거구의 리베라, 그리고 비극적 미남 모딜리아니와 온화한 미소의 샤갈의 자취가 아련하다. 일종의 예술공동체로서 파리의 카페는 다양한 작가들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미적 영감을 주며 연대감을 이루게 했던 중요한 거점이었다. 차이를 수용하는 데에는 인내와 관용이 필요하다. 어떤 면에서 프랑스가 미술의 외인부대를 끌어모아 자국화한 데에는 ‘톨레랑스(tolerance, 관용)’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는 그런 면에서 미술의 수도로 불릴 만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의 뉴욕도 여러모로 파리와 닮은꼴이었다. 당시 뉴욕에는 2차 세계대전과 나치즘의 공포로부터 탈출한 유럽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이주라는 점을 빼면, 이전의 파리와 같은 다국적 예술문화를 형성했던 셈이다. 이들은 파리에서처럼 카페를 아지트 삼아 어설픈 영어로 예술의 열정을 나누며 미국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런 차이의 공존으로 인해 뉴욕은 파리에 이어 모더니즘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초기의 브르통과 뒤샹(이상 프랑스), 달리(스페인), 몬드리안(네덜란드), 에른스트(독일)뿐 아니라, 20세기 중반 ‘뉴욕 스쿨’을 구성한 고키(아르메니아), 드 쿠닝(네덜란드), 호프만(독일), 로스코(러시아) 등도 미국 출신이 아니었다. 이들이 가진 문화적 차이에 따른 미적 표현은 자신만의 독자적 언어로 드러났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만약 개성이 강한 예술가들이 제각기 자국의 차이만 발현했다면 이합집산으로 흩어져 버렸을지 모른다. 개인의 자유만으로는 부족한 법. 20세기 초의 파리, 중반의 뉴욕이 현대미술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도시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서로의 소통이 가능한 공존의 연대였다. 차이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유기적 관계가 마련되어야 했던 것이다. 파리와 뉴욕에서 활동했던 외국 작가들은 ‘아트’라는 세계공용어뿐 아니라, 각각 프랑스어와 영어를 습득하며 현지 문화 속으로 스며들었다. 국적의 차이로 인한 문화적 개성은 이러한 소통과 연대로 말미암아 풍부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
미술 창작의 관점에서 볼 때, 시류를 쫓아 작업이 동질화되거나 집단적 표현에 개별성이 매몰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몰개성은 미술의 죽음이고, 평준화는 문화의 소멸이다. 다양성과 차이의 공존이야말로 창의력의 기반이 되는 것. 문화와 직결된 미술 영역에서는 이 점이 결정적이다. 한 세기 이전의 파리와 뉴욕이 그러했던 것을 회고하며 서울도 머잖아 세계 미술의 중심 도시로 부상하기를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보듬을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만의 고유한 미적 표현과 디자인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미리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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